[하이테크 소부장 리포트]동진쎄미켐, 한일 무역분쟁 '응전'이 만든 변곡점①교수 꿈꾸던 이부섭 회장 창업, 삼성전자 신뢰 속 'EUV PR' 국산화 성공
김경태 기자공개 2024-08-19 07:26:11
[편집자주]
반도체, 디스플레이를 비롯한 첨단산업의 생태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런 밸류체인 속에서 최종적으로 제품을 만드는 기업보다 때로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곳들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이다. 반도체 분야에서 ‘슈퍼 을(乙)’로 불리는 ASML이 대표적이다. 국내에도 각 분야에서 독·과점적 지위를 가지거나 나름의 강점을 기반으로 선전하는 소부장업체들이 다수 존재한다. 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고 있는 소부장 기업들의 창업스토리와 사업 현황, 실적과 재무, 지배구조와 향후 전망 등을 더벨이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8월 12일 16:4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동진쎄미켐은 약 57년 전 이부섭 회장이 창업한 국내의 대표적인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이다. 이곳은 소부장 산업의 발전 과정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다. 소부장 산업의 변곡점이던 '한일 무역분쟁'에서 맹활약하면서 국내 첨단산업 생태계가 더욱 탄탄해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창업주인 이 회장의 정력적인 활동 외에 동진쎄미켐의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는 데 기여한 곳은 삼성전자다. 동진쎄미켐은 현재도 삼성전자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탄탄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학구파' 열정 지닌 이부섭 회장, '강한 소부장' 동진쎄미켐 일궈
동진쎄미켐을 설립한 이 회장은 '화학 외길'을 걸은 뚝심 있는 경영자다. 그는 1953년 당시 최고 명문인 경기고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재학 시기 화학반 활동을 했다. 넘치던 호기심을 각종 실험하면서 시행착오를 겪고 증명하는 단련을 했다. 이어 1956년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하면서 보다 전문적인 길을 걷게 된다.
이 회장은 처음부터 기업 경영자를 꿈꾸지 않았다. 그는 대학 재학 시기에는 교수가 되려는 목표를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지도교수가 포토레지스트(PR·Photoresist, 감광액)를 연구해 보라 권유했고 훗날 동진쎄미켐의 사업으로 이어졌다.
현실은 그에게 학자의 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 회장의 집안 형편이 넉넉치 않았던 탓이다. 결국 그는 고연봉을 받을 수 있는 한국생산성본부 기술부장으로 일했다. 당시 일반 직장인의 7배 수준의 봉급을 받을 수 있어 선택했다. 그 후 적성에 맞지 않아 6개월 만에 그만두고 한국사진필름의 공장장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창업을 하게 된다. 한국사진필름 공장이 다른 주인에 넘어가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했는데 고심 끝에 집안 연탄공장에서 동진화학공업(현 동진쎄미켐)을 창업했다. 지금으로부터 반세기도 넘은 1967년의 일이다.
동진쎄미켐의 성장 과정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설립 직후에 PVC와 고무 발포제를 국내 최초로 개발, 국산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1973년 공장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당시 피해액 전액과 손해를 보상받는 보험에 가입했던 덕분에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었다.
1980년에는 부산항 선적품에 화재가 발생했는데 발화점이 동진쎄미켐의 발포제로 지목되면서 고난을 겪기도 했다. 1979년 2차 오일쇼크 때는거래처의 부도가 나면서 동진쎄미켐도 절체절명의 순간에 몰렸다. 당시 이 회장은 채권자들을 직접 설득해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회생을 이뤄냈다.
◇EUV PR 사업, '한일 무역분쟁' 한복판 개발…삼성전자, 전폭 지원
동진쎄미켐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 때는 2019년이다. 2018년부터 한일 양국의 갈등이 본격화된 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19년 7월 1일 반도체, 디스플레이 제조 핵심 소재의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당시 일본은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화수소(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패널용 필름)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를 했다. 3개 품목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공정에 반드시 필요한데 일본의 점유율이 압도적이다. 한국 산업 생태계의 아킬레스건을 제대로 건드린 셈이다.
이 중 포토레지스트 분야에서 동진쎄미켐의 진가가 빛나기 시작했다.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웨이퍼 표면에 회로 패턴을 형성하도록 도포하는 코팅 액체다.
동진쎄미켐은 1989년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재료 산업에 뛰어들어 포토레지스트를 국내 최초이자 미국, 독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자체 개발했다. 동진쎄미켐은 1994년 삼성전자에 4메가 D램용 포토레지스트를 공급하는 데 성공했다.
다만 한일 무역분쟁 과정에서 중요했던 것은 훨씬 고난도의 기술력이 요구되는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였다. 반도체 공정이 미세화되면서 EUV 포토레지스트의 중요성이 커졌는데 일본 JSR, 스미토모화학 등이 시장 점유율 90% 이상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때 동진쎄미켐이 EUV 포토레지스트 개발에 착수했다. 이 회장의 차남인 이준혁 동진쎄미켐 부회장이 관련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2020년 김영선 전 ASML코리아 대표를 부회장으로 영입했고 이듬해 초에는 EUV PR 연구개발(R&D) 인력을 추가 확보했다.
그 후 동진쎄미켐은 수개월 동안 검증 작업을 거친 뒤 삼성전자에 EUV PR를 납품하는 데 성공했다. EUV PR은 포지티브, 네거티브 제품이 있다. 동진쎄미켐은 각각 2022년, 2023년 삼성전자에 공급을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동진쎄미켐 지분을 지속적으로 보유하면서 긴밀한 협력관계를 이어갈 뜻을 내비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7년 이 회장이 보유한 동진쎄미켐 주식 118만여주와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발행된 신주 128만여주를 매입해 지분 4.8%를 확보했다. 삼성전자는 작년부터 현금 확보를 위해 다수의 투자 지분을 매각했는데 동진쎄미켐은 예외였다. 올 1분기보고서에 따르면 같은 지분율이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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