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본 이재용 회장 2년]과감한 빅딜의 실종, 만만찮은 현실의 벽[M&A]소극적 행보 이면에 사법리스크, 미중 갈등·유동성 문제도 발목
김경태 기자공개 2024-10-29 08:12:12
[편집자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022년 10월 27일 회장이 됐다. 4대그룹 오너 경영자 중 가장 늦었다. 이제 취임 2년차다. 기대와 우려는 여전하다. 가장 큰 우려는 사법리스크다. 올해 2월 삼성물산 관련 합병 소송의 1심에서 ‘전부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검찰에서 곧바로 항소하고 새로운 소송도 더해졌다. 이런 상황에 반도체사업 위기를 맞이했다. 그룹 재건과 M&A를 통한 덩치 불리기 과제로 나아가야 하는데 기반이 돼야 할 영업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다. 그 속에서 지배구조 재편과 인사도 마쳐야 한다. 이 회장 2년차를 맞이한 삼성을 6개 키워드로 돌아보고 향후 행보를 가늠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10월 24일 13:1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성전자는 하만 인수 이후 과감한 빅딜(Big Deal)에 나서지 않았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조 단위 딜에 적극 나서는 것과 대비된다. 이재용 회장 시기에 이르러 경영 행보가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배경 중 하나다.실제 사유로도 이 회장이 처한 현실이 콕 집어 지목된다. 최종 의사결정권자인데 하만 인수 시기부터 사법리스크를 겪고 있다. 적극적으로 나서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내부 사정을 좀 더 들여다보면 이외에 현실적 고민이 될 만한 지점들이 많다.
대표적인 게 미중 갈등이다. 해외 기업 인수를 하려면 현지에서 기업결합신고를 해야 하는데 쉽지 않아졌다. 반도체사업 부진으로 유동성 관리를 예전보다 타이트하게 할 수밖에 없다. 최후의 수단으로 '무차입경영 파기'가 거론되는데 이 역시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국내 자본시장을 흔들고 다른 기업들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이다.
◇이재용 회장, IFA 참관 후 하만 인수…글로벌 기업결합신고 '빡빡'
이 회장은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독일에서 열린 IFA를 방문했다. 그는 2006년과 2007년 IFA를 찾았다. 당시 그가 LG 부스에서 자동차용 오디오·VD 제품을 유심히 살펴보자 취재진이 그 이유에 대해 묻는다. 당시 상무 직급이던 이 회장은 "우리 회사(삼성)가 만들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 후 이 회장은 2012년 5월부터 피아트크라이슬러그룹(FCA) 지주회사인 엑소르(EXor) 사외이사를 맡는다. 이건희 선대회장의 와병으로 이 회장이 실질적으로 그룹을 이끌던 2016년 11월에는 삼성전자는 하만 인수 계약 체결을 발표한다. 당시 환율 기준으로 한화 약 9조3400억원에 달했다. 국내기업의 해외 M&A 중 역대 최대 규모였다.
이 회장이 글로벌 시장을 돌아다니며 미래 성장 산업을 직접 목도하고 초대형 M&A를 추진한 셈이다. 하지만 2016년 하반기부터 정치적 격변에 휘말리면서 하만 M&A조차 위기에 처했었다. 이 회장은 2017년 1월 국정농단 특검에 피의자로 소환돼 밤샘 조사를 받고 2월에 법정구속됐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같은 해 3월 하만 M&A가 완료됐다.
이 회장의 국정농단 소송에 관해서는 특별사면을 받았다. 하지만 이와 연계돼 시작된 삼성물산 합병 관련 소송의 2심이 진행 중이다. 여기에 국민연금에서 지난달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전자가 과감한 빅딜 의사결정을 쉽사리 내리지 못하는 배경이다.
M&A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기업결합신고도 삼성전자가 과감한 빅딜에 신중한 이유로 지목된다. 조단위 매물을 인수하는 경우 사업을 펼치는 세계 각지의 경쟁당국에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이 갈등을 겪으면서 기업결합신고 문턱을 넘는 게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실제 글로벌 빅테크들도 최근 수년간 빅딜 추진이 무산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엔비디아의 ARM 인수 무산이다.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 불발, 퀄컴의 NXP 반도체 인수 무산 등도 있다. 최근 불거진 퀄컴의 인텔 인수설에 관해서도 월스트리트의 분석가들은 기업결합신고 문제로 어렵다는 평가를 내놓은 바 있다.
◇별도 기준 실탄 감소, 자본시장 흔들 최후 수단 '무차입경영 파기'
곳간 관리가 과거보다 타이트해졌다는 점도 삼성전자가 빅딜 추진이 어려운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사업에서 부진하면서 지난해말 연결 기준 현금성자산이 91조7989억원으로 감소해 100조원 선이 깨졌다. 올 들어서는 반전에 성공했고 상반기말 100조7955억원을 나타냈다. 순현금은 84조3141억원이다.
본사의 여력을 볼 수 있는 별도 기준 현금성자산의 경우 2022년말에는 39조2173억원이었는데 작년말 6조1115억원까지 감소했다. 올 상반기말에는 11조6377억원으로 증가하기는 했지만 2년 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삼성전자가 대규모 실탄을 마련하는데 마지막 카드가 남아있기는 하다. 바로 '무차입경영 파기'다. 삼성전자는 원화채권의 경우 2001년 이후 발행하지 않았다. 글로벌 본드는 2012년 5년 만기로 발행한 것이 마지막이다.
무차입경영은 M&A 추진에도 적용되는 원칙이다. 통상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뿐 아니라 일반 기업들도 M&A를 하면 금융권에서 자금을 조달한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하만을 인수할 때도 전액 자체 현금을 동원했다. 이 때문에 당시 금융권에서 인수금융 관련 딜 기회를 잡지 못해 허탈해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반도체사업 부진으로 상황이 예전과는 다르기는 하다. 삼성전자는 작년 자회사 삼성디스플레이에서 21조9900억원을 빌렸고 별도 기준으로는 순차입금 상태다. 여기에 매출채권담보대출 등을 활용해 단기차입금이 일부 증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별도 기준 차입금 의존도는 올 상반기말 10.3%, 연결 기준은 3.4%에 불과하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무차입경영을 쉽사리 끝낼 수 없는 이유도 있다. 국내 IB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국내외 회사채, 인수금융 등의 시장에 등장하는 경우 '블랙홀'이 될 수 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사업에서 부진하고 있기는 하나 재무적인 체력 등이 다른 기업들과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우량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자본시장에서 자금 조달에 나서면 상대적으로 실탄 확보가 급박한 다른 국내 기업들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삼성 역시 이런 점을 인지하고 있어 쉽사리 자본시장에 등장하지 못하는 이유로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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