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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장과 '팬심'의 상관관계 [thebell note]

서은내 기자공개 2024-10-08 11:24:37

이 기사는 2024년 10월 07일 07:3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기업 경영에서 손을 떼면서부터 20년간 세계 거장들의 그림을 모았다는 한 헤비 컬렉터를 만났다. 뒤늦게 미술에 빠져든 그는 육십이 넘어 미대에서 미술사를 공부했고 예술에 사로잡혔다. 신진작가 레지던시(창작공간)와 전시를 후원하는 비영리공간도 열었다. 스무명 넘는 작가가 이곳을 거쳤고 그 중 세계적인 작가도 나왔다.

여든이 넘은 그는 미술품의 매력에 대해 마약 같다고 말했다. 신진작가를 키우는 예술사업에 대해 '영혼이 속아야 하는 일'이라고 표했다. 그에게 그림은 자식같기도 했고 친구같기도 했다. 침실에 들어갈 때마다 눈 앞에 걸린 요시토모 나라의 그림 속 못난 소녀가 자신에게 눈을 흘긴다고 했다.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해 결국 미술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기사화하지는 못했다. 인터뷰를 거절한 이유에 대해 "자랑하고 싶은 작품은 많으나 자기 자신은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라고 했다. 이같은 컬렉터가 한둘이 아닐 듯 하다. 미술품은 어떻게 이렇게 무한한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지난 9월 서울옥션 요시토모 나라 특별전시에 소개된 요시토모 나라의 대형 원화 작품.

미술시장은 오묘한 곳이다. 미술품의 수요와 공급 두 요소 모두 일반적인 형태의 수요, 공급과 특성이 다르다보니 여타의 시장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지점이 생겨난다. 일단 기본적으로 해당 작가, 작품에 대한 이해에 기반한 미술품 수요에는 깊은 '팬심' 혹은 '덕심'이 깔려있다.

공개 경매에서 어떤 작가의 작품이 유찰될 상황에 놓이자 한 컬렉터는 예정에도 없던 응찰에 참여해 작품을 낙찰받았다고 한다. 통상 현장 경매 출품작들이 수천 수억원대에 이르는 걸 생각하면 일반인들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소비다. 본인이 아끼는 작가의 작품이 유찰 이력을 남기게 하지 않겠다는 팬심이 작동한 결과다.

돈이 많다고 작품을 다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치가 높은 작품의 경우 구매자에게 수준 높은 자격이 요구된다. 작품에 걸맞는 자격이 확인돼야 구매 후보 리스트에 오른다. 구매자에 대한 추천서가 필요할 때도 있다. 구입에 수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공급의 제약도 기본 특성이다. 작가의 작업 역량에 한계가 있고 작고 작가라면 더 그렇다. 팬층이 두터워질수록 투자 목적의, 팬심에 올라탄 대중적 수요도 불어난다. 공급은 한정적인데 수요는 시간이 갈수록 증가하니 가격은 자연스레 올라간다.

경매 낙찰총액 등 수치상 보여진 미술시장의 분위기가 어둡지만 컬렉터들이 몰리는 작가군은 더 선명해진다. 경매에서 늘 치열한 경합을 벌이는 작품이 있다. 해당 작가의 낙찰총액은 더욱 불어나고 활동 반경은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우량주 같은 작가이든 스타트업 같은 신진작가이든 그들을 키우는 건 '영혼을 뺏긴' 팬심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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