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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 개정 논란]시름 깊어지는 오너가…이사회 논의 변화에 주목②합병과 분할, 자본거래뿐 아니라 배당정책과 주가관리, 계열사 거래 등도 도마 위

이돈섭 기자공개 2025-03-06 08:07:14

[편집자주]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주주 전체로 확대할 수 있을까. 22대 국회에서는 현재 야당이 추진하고 있는 상법 개정안을 두고 논쟁이 뜨겁다. 시장에서는 현행 상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기업 이사회 활동에 상당한 변화가 일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theBoard는 이번 상법 개정 움직임과 관련, 찬반 논거를 각각 살펴보고 향후 기업 이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본다.

이 기사는 2025년 02월 27일 14시03분 THE BOARD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주주 전체에 이사의 충실의무를 지우는 내용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의 여파는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랜 기간 상당수 기업 이사회는 기업과 최대주주의 이익을 하나로 묶어 생각해 왔는데, 상법 개정으로 소액주주 입장에서도 의사결정을 되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문제가 됐던 자본거래뿐 아니라 기업의 주가 관리와 배당 정책, 계열사 간 거래 행위까지 이사회 의사결정 전체가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상법 개정안으로 시름이 깊어진 곳은 소위 '오너'가 있는 기업들이다. 상당수 최대주주는 이사회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며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데, 이 과정에서 최대주주 이익에 부합하는 결론을 끌어내기 위해 일반주주 이익을 편취할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사회에 올라오는 안건이 기업의 분할과 합병, 자본거래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있는 만큼, 주주 전체 이익을 고려할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최근 우리나라 자본시장에서 주주 전체 이익이 화두에 오른 사례로는 빙그레 지주사 전환 시도가 꼽힌다. 빙그레는 지난해 11월 지주사 체제 전환 안건을 이사회에서 결의하고 한국거래소에 해당 안건 관련 분할 재상장 예비심사 신청서를 제출했다. 빙그레는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사를 설립한 뒤, 기존 주주 대상으로 현물출자 유상증자를 단행해 지주사의 그룹 계열사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거래소 측은 빙그레를 두 회사로 나눠 상장하면서 발생하는 가치할인 이슈를 포함해 자사주 소각과 현물출자 과정에서 오너가 지배력이 크게 확대할 수 있는 점을 우려했다고 전해진다.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일반주주 이익을 편취할 가능성을 제기한 것. 빙그레는 일련의 잡음을 해소하기 위해 자사주 전량 소각 방안 등을 내걸기도 했지만, 시장 분위기를 고려한 끝에 결국 지주사 전환 계획 자체를 자진 철회했다.
빙그레 서소문 사옥 [이미지=빙그레]
상법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빙그레의 지주사 체제 전환 등과 같은 시도는 아예 도전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과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전 에버랜드)의 경우 시장 잡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추진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지만, 상법 개정으로 이사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 전체로 확대할 경우 사외이사들이 시장 반발과 향후 처벌 가능성을 고려해 해당 안건에 반대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상장사 사외이사는 "금융회사 등과 같은 소유 분산기업보다는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최대주주가 명백히 존재하는 상장사에서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크다"면서 "지금까지는 회사의 이익을 최대주주 이익과 합쳐 생각해 왔지만, 앞으로는 나머지 일반주주의 이익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의사결정 난이도가 높아진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중요한 것은 주주 간 충돌 가능성을 이사회가 내다볼 수 있는지 여부"라고 말했다.

문제가 될 내용은 다양하다. 대표적인 것이 주가 관리다. 꾸준한 이익을 바탕으로 현금성자산을 다량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신규 사업과 설비 투자 등에 소극적인 경우 이사회 결정이 구설수에 오를 수 있다. 오너 일가 내에서 주식 증여라도 이뤄질 경우 그간 이사회 결정이 특정 주주를 위한 것이었다는 비판을 제기할 수 있는 것. 사외이사 입장에서는 선관의무 위반에 따른 처벌 가능성도 두루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재계 관계자는 "배당 정책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상법 개정이 이뤄진 후 전년도와 같은 배당 수준을 유지한다고 하면 그것이 과연 주주 전체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지가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면서 "그렇다고 배당을 높이면 기업 입장에선 부담이 될 수도 있는데 이 경우는 그럼 누구의 손을 들어야 하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기업 의사결정 구조에 질적인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계열사 간 거래에도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기업집단 내 계열사는 다른 계열사와 거래를 트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해당 거래가 해당 기업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주가 상승에 기여해 모든 주주에 유리했는지 따져볼 수 있다. 일부 기업의 경우 오너가 비상장사를 설립한 뒤 해당 기업을 상장 계열사 간 거래로 성장시켜 이 기업 주식을 승계 재원으로 활용하는데, 앞으로 이사회가 이 거래 행위를 승인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현재 시장에서는 상법 개정안에 따른 이사회 역할에 대한 논의가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분위기다. 각종 이익 단체와 협회 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세미나 등이 전개될 예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협회 담당자는 "상법 개정이 이뤄질 수 있다고 예상했지만, 논란이 큰 내용이기 때문에 당장 통과될 것으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통과가 되든 통과가 되지 않든 모든 경우의 수를 감안해 대비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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