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금융 새 길을 묻다]몸 사리는 금융지주…독과점 '멍에' 벗을 순 없나[금융지주 체제]③대다수 전문가 "국내 금융산업 경쟁 과점 시장으로 보기 어려워"…금융 안정성도 고민해야
서은내 기자공개 2023-08-30 07:26:00
[편집자주]
인공지능이 금융상품을 추천하는 시대가 열렸다. 빅테크들이 금융업에 진출하고 애플 통장까지 나왔다. 애플 통장엔 석달만에 100억달러, 12조원의 자금이 몰렸다. 이종산업간 결합은 물론 영역과 경계가 무너지면서 금융 패러다임이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 한국 금융은 어디로 가는가. 여전히 규제와 관치의 테두리 안에서 더딘 변화를 보이지만 조금씩 새 길을 찾아가고 있다. 더벨은 주요 금융사 및 연구소 협회의 브레인들을 찾아 한국 금융 산업의 현 주소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묻고 그들의 고민과 변화 방향과 속도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이 기사는 2023년 08월 24일 15:1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최근 은행 지주회장 간담회를 열고 경쟁촉진, 과점완화를 당부하며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 등의 은행권 제도 개선방안을 내놓았다. 이는 금융당국에서 올초부터 TF를 통해 은행 독점체제를 해소하기 위해 고심해 온 결과물이었다. 독과점 논란의 주요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5대 금융지주들은 몸을 사리는 분위기다.국내 금융지주 독과점 논란을 바라보는 금융 전문가들의 해석은 어느 쪽으로 기울고 있을까. 더벨이 금융연구소장단과 각 금융기관연합회를 대상으로 인터뷰, 설문조사한 집계에 따르면 전문가 15명 중 과반 이상은 국내 금융산업의 경쟁 상태를 과점 시장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치상 KB·신한·하나·우리·NH 등 5대 은행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60~70%라는 점에서 과점의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은행산업 시장집중도는(총자산 기준 CR3)는 일반은행 기준 23위, 시중은행 기준 18위로 OECD 34개국 중 중하위권 수준으로 분석되고 있는만큼 과점 구조가 경쟁을 저해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금융위원회의 '은행업 경쟁도 평가(2022년 12월)'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국 대비 국내 대형은행 시장지배력은 강하다고 보기 어렵고 계좌이동서비스·인터넷전문은행·오픈뱅킹·마이데이터 등의 정책으로 은행산업내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고 언급된 바 있다. 한국은행의 '은행산업 경쟁도 현황 및 금융안정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 역시 "국내 은행산업은 완전경쟁에 가까운 과점 또는 독점적 경쟁"이라고 분석했다.
◇ 5대 지주 독과점 논란에 "과점 판단 신중해야"
국내 금융지주사들은 그동안 상품 출시나 자산 운용 등 전반에서 당국의 입김에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 규제 산업으로서 금융업의 성격이 강했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변수가 발생하는 구조 하에서 금융지주의 독립적인 결정이 쉽지 않았다. 회사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택하기보다 소극적으로 차선을 택해왔다는 뜻이다.
은행 핵심 역량의 근간이 이뤄지는 지배구조 문제 역시 외풍을 많이 탔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외부 출신 인사가 회장직을 맡게 될 때 매번 관치 논란이 나왔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업에 있어서도 금융지주들은 당국의 주장을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예대금리차를 놓고도 당국의 대출금리 인하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최근의 독과점 논란 역시 그 연장선상이다. 소수 금융지주사들이 독과점적인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전문가들의 해석은 다양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관계자는 "독과점 정도를 보여주는 CR3(상위 3개 은행의 시장점유율)나 HHI(Herfindal Hershman Index) 측면에서 국내은행의 집중도는 높은 편이 아니다"라며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CR3는 주요 36개국 중 34위로 하위권에 해당하며, HHI 적용시에도 1002로 집중도가 낮은 시장"이라고 분석했다.
통상 HHI는 1000 미만이면 비집중적인 시장, 1000~1800은 어느 정도 집중된 시장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과점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절대적인 시장점유율이 아닌 상품 금리, 상품간 대체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하는 문제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모습이다.
조혜경 금융경제연구소장은 "정부에서는 은행들이 경쟁이 없어 과도한 수익은 얻는다고 지적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라며 "국내 은행의 과당 경쟁이 오히려 대출금리를 낮추는 효과로 이어지고 있으며 미국 은행은 4000개가 넘는데에도 예대마진은 우리나라보다 더 높다"고 말했다.
◇ 지방은행 시중은행 전환 실효성 '물음표'
당국에서 내놓은 지방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한 금융지주 고위 관계자는 "신규 은행 인가를 통해 새 금융생태계가 구축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다만 분명한 것은 은행의 숫자를 늘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이며 단순 금리 경쟁으로 이어지지 않게 신규 은행이 혁신적인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줄 필요가 있어 보인다"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플레이어의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진입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가 중요하다"라며 "잠재적인 진입자들이 들어올 수 있어야 하며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각종 보조 프로그램을 대폭 축소해야 실질적인 경쟁이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순한 경쟁 촉진이 자칫 '금융 안정성'을 위태롭게 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이론상으로 볼 때 은행산업 내 경쟁 확대가 소비자 편익을 증가시키는 것이 일반적지만 '금융 안정성' 측면에서는 반대의 시선도 존재한다. 진입장벽을 낮춰 경쟁자의 진입을 늘린다고 할 때 그 수준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여신금융연구소 관계자는 "은행이 추가로 설립되면 경쟁 촉진으로 금리 마진이 줄어들고 금융소비자 후생에 긍정적 영향이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나 해외 SVB사태에서 보듯 금융기관의 수와 경쟁도를 높일 경우 금융안정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금융소비자 입장에서 더 큰 부정적 효과를 받을 수 있다"고 짚었다.
◇도움 주신 분들(가나다순)
△금융경제연구소 △보험연구원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여신금융협회 여신금융연구소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은행연합회 △금융투자협회 자본시장연구원 △저축은행중앙회 △하나금융경영연구소 △한국금융연구원 △현대경제연구원 △BNK경제연구원 △DGB경제연구소 △NH금융연구소 △KB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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