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 50년 비포&애프터]다 된다는 '턴키' 전략 고수, 부진 끝낼 열쇠되나④메모리부터 패키징까지 '유일무이' 제공, 인텔 생산조직 분리 추진
김도현 기자공개 2024-10-10 08:14:35
[편집자주]
삼성의 몸통으로 여겨지는 반도체 사업이 50주년을 맞았다. 오너가의 도전적인 결단과 전폭적인 지지로 그룹을 넘어 대한민국 경제의 한 축으로 거듭났다. 미국과 중국의 고래 싸움에서 살아남게 한 버팀목이 되기도 했다. 그랬던 삼성 반도체가 전례 없는 위기다. 새 먹거리인 파운드리는 물론 주력인 메모리까지 흔들리고 있다. 다만 한편에선 과도한 우려라는 평가도 나온다. 엄중한 분위기 속에서 분투 중인 삼성 반도체의 현주소와 미래를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10월 07일 14:3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성전자는 종합반도체기업(IDM)이다. 반도체 설계와 생산을 모두 하는 업체를 일컫는다. 더 나아가 메모리와 시스템반도체, 패키징까지 자체 처리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SK하이닉스, 인텔 등도 IDM으로 불리지만 각각 D램, 중앙처리장치(CPU)에 특화돼 있다.'무엇이든 가능한' 삼성전자는 자신감이 넘쳤다. 아무도 따라할 수 없는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모든 과정을 책임진다는 '턴키' 방식으로 새 먹거리인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고객을 대거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랬던 삼성전자의 현주소는 다소 초라하다. 파운드리사업부의 대형 고객 유치는 요원하고 압도적인 선두였던 메모리사업부는 추격을 넘어 역전을 허용할 신세다. 그럼에도 삼성전자는 턴키 전략을 고수할 방침이다. 이를 원하는 고객들이 있고 결국에는 통할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달라진 반도체 생태계, 삼성전자 생존할 수 있나
과거 반도체 산업은 '팔방미인'이 지배했었다. 한 공장에서 전체 공정을 해결해야 비용은 줄이고 생산성은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 규모가 대폭 커지고 다뤄야 할 품목이 많아지면서 하나의 기업이 소화하기에 벅찬 수준에 이르렀다. 분업화가 활발해졌고 설계와 생산은 점차 나뉘었다. 생산 시설을 줄이는 '팹라이트'에서 멈추지 않고 아예 생산라인을 꾸리지 않는 '팹리스'까지 도달한 것이다.
대신 이들의 공장 역할을 하는 파운드리가 뜨기 시작했다. 1987년 설립된 TSMC가 대표적이다. 4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TSMC는 유수의 팹리스가 개발한 칩을 제조하고 있다. TSMC 브랜드로 반도체를 만들지 않으면서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모토를 유지하고 있다.
해당 사업의 가치를 알아본 삼성전자도 파운드리사업부를 신설하는 등 관련 분야에 힘을 쏟기 시작했으나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이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경쟁사와 협력사를 오가는 삼성전자에 대한 의구심을 온전히 지울 수 없었던 탓이다.
더불어 수율(완제품 중 양품 비율), 성능 등 주요 지표에서 TSMC에 밀리면서 글로벌 팹리스가 삼성전자를 택할 명분이 부족한 상황이다. TSMC의 대안 구실을 못한 셈이다.
이같은 위기 속에서 삼성전자가 빼 든 카드는 턴키 서비스다. 메모리, 설계 지원 등 TSMC가 미비한 영역을 공략하겠다는 복안이었다. IDM의 장점을 되살리는 묘수였다.
실제로 복수의 고객들이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표면적으로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고 특정 업체의 의존도를 낮출 수 있어서다.
문제는 개별 부문의 실력이었다. 업계 최초로 극자외선(EUV) 노광 기술, 게이트올어라운드(GAA) 트랜지스터 등을 도입하면서 첨단 공정 위주로 사업 전개하려 했으나 정작 완성도를 빠르게 끌어올리지 못하면서 신규 수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장점으로 꼽히던 메모리마저 인공지능(AI) 시대에 접어들면서 부진하고 있다. AI 반도체와 합을 이루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에서 2인자였던 SK하이닉스에 뒤처지게 된 것이다. 두 제품을 연결하는 패키징 기술력에서도 우위를 보이지 못했다.
부정적인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으나 삼성전자에 기회가 없는 건 아니다. 빅테크들이 인텔 CPU나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범용 반도체가 아닌 자체 칩 개발에 나서면서다. 독점 구조를 형성한 이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면서 본인들이 원하는 최적화 칩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다만 반도체 경험 및 인력이 풍부하지 않은데다 공급망이 구축돼 있지 않아 어려운 부분이 존재한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삼성전자는 설계 지원부터 패키징까지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는 점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고 있다. 지속 협력을 모색하고 있어 신뢰가 생긴다면 대형 프로젝트를 연이어 수주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삼성전자가 '탈인텔', '탈엔비디아' 등 최대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작년 초부터 삼성전자는 파운드리포럼 등에서 턴키 전략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고객 니즈에 맞춰 필요한 부분만 지원하는 원포인트 서비스도 세분화하는 추세다.
삼성전자 출신 빅테크 관계자는 "핵심 칩을 내재화하는 과정에서 모든 단계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삼성전자의 가치를 발휘할 기회가 충분하다"며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진 못한 건 사실이나 레퍼런스가 하나둘씩 쌓인다면 전세가 역전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파운드리 분사 다시 수면위로…"시간 더 필요할 듯"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이 예상보다 부진하자 전담 사업부를 분사해야 한다는 의견이 재차 등장하고 있다. 최근 인텔이 파운드리 독립을 결정하면서 삼성전자 행보에 관심이 커졌다.
관건은 고객과의 충돌 여부다. 생산만 전담하는 TSMC와 달리 삼성전자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이미지센서, 인텔은 CPU·GPU 등을 개발한다. 각각 애플과 소니, AMD와 엔비디아가 경쟁사라는 뜻이다.
이들은 TSMC의 메인 고객들이기도 하다. 자사 노하우 유출 우려로 TSMC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 구도다.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을 다시 시작한 뒤 한계를 느끼고 분사를 결정한 배경이다. 예상보다 합종연횡이 활발한 점도 한몫했다.
삼성전자 역시 수년 전부터 분사설이 흘러나왔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선을 그었다. 아직 홀로서기에는 부족한 측면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앞서 삼성전자는 2025년이면 파운드리사업부가 자체 투자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수익성에 도달할 것으로 관측했으나 적자를 벗어나진 못한 현시점에서 사실상 불가능해진 미션이다.
이에 따라 파운드리사업부는 한동안 메모리사업부, 시스템LSI사업부와 한지붕에서 지낼 확률이 높다. 시스템LSI사업부를 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비슷한 요인으로 분사가 쉽지 않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삼성전자는 턴키라는 양날의 검을 당분간 내려놓지 않을 방침이다. 언제 물꼬를 틀 수 있느냐에 따라 전략 변화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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