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부동산 풍향계]책준신탁 모범규준, 계정대 변제순위 조정 두고 '이견'신탁업계 "후순위 투입, 미준공 아닌 미분양 리스크 보장해주는 구조"
이재빈 기자공개 2024-11-25 08:06:16
이 기사는 2024년 11월 22일 07:2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신탁사 책임준공 모범규준 도입이 임박했다. 최근 신탁사와 금융기관, 시공사 등이 참여한 비공개 간담회가 개최됐고 초안이 대부분 확정돼 연내 발표될 예정이다. 신탁사들이 입을 모아 요구했던 책준 지연 시 대출원금과 이자를 배상해야 한다는 조항은 삭제가 사실상 확정됐다. 신탁계정대 변제순위 조정과 손해배상 시점 등에 대해서는 막바지 조율이 진행되는 중이다.22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연내 발표를 목표로 신탁사 책준확약 토지신탁 상품 관련 모범규준을 작성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도입이 논의됐던 안건으로 최근 정부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하면서 공표 시기가 연말로 결정됐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모범규준만 발표하는 것으로는 시장의 혼란을 잠재우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PF 제도개선 방안과 발맞춰 모범규준을 도입하기 위해 공표 일정을 조율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모범규준이 마련되는 배경에는 현행 신탁사 책준확약 상품의 기형적인 손해배상 구조가 자리한다. 신탁사 책준신탁은 시공사가 기한 내 준공에 실패하면 신탁사가 대신 책임준공을 제공하고 공사를 마무리짓는 상품이다. 신용등급이 부족한 중소형 건설사들이 시공을 맡은 현장 위주로 신탁사 책준 약정이 제공됐다.
계약서 상에는 신탁사가 책준기한을 준수하지 못 하면 대출원리금과 이자를 포함한 일체의 손해를 배상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사실상 신탁사가 연대보증을 제공한 셈이다. 하지만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신탁사는 연대보증이나 인수약정 등 신용보강을 제공할 수 없다.
신탁사들이 높은 수수료를 노리고 다수의 책준형 신탁을 수주한 상황에서 건설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다수의 중소형 시공사가 회생절차를 밟으면서 공사중단 현장이 속출한 여파다. 이는 책준기한 도과로 이어졌고 대주단은 계약서 상에 기재된 문구를 근거로 대출원리금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앞으로는 이같은 소송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당국이 책준신탁 모범규준에서 손해배상 대상 중 대출원리금과 이자를 제외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해당 조항은 준공기한 지연에 따른 실체적인 손해에 대해서 배상하도록 변경된다.
금융당국은 책준기한 도과 시 대출원리금과 이자를 포함한 손해배상 조항이 금융기관이 져야 할 사업성 리스크를 신탁사에 전가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책준신탁 상품은 미준공 리스크에 대한 안전장치인데 공사지연을 이유로 대출원리금 회수를 요구하면 사업성 부족으로 인한 미분양 리스크를 신탁사에 떠넘기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새롭게 도입되는 모범규준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주단과 신탁사의 소송에도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당국이 책준신탁 상품은 미준공 리스크에 대한 안전장치라고 결론을 내린 만큼 기존 계약에 대한 법원의 해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가장 먼저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된 인천 원창동 물류창고 개발사업은 내년초 1심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다만 신탁업계에서는 모범규준에 신탁계정대 변제순위 조정과 손해배상 시점, 사업비 용도전환 금지를 통한 공사비 보장 등과 관련된 내용도 추가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출원리금을 손해배상 범위에서 제외하는 것만으로는 신탁사에 리스크가 집중돼 있는 구조를 개선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먼저 신탁계정대 변제순위를 선순위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책준신탁 사업에 신탁사가 자체자금을 투입하게 되면 변제순위가 PF대출 뒷단에 자리하게 된다. 분양률에 따라 신탁계정대 회수 여부가 결정되는 만큼 사업성이 신탁사의 자금회수에 영향을 주는 구조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신탁업계 관계자는 "변제순위가 뒷단에 자리하면서 신탁사가 대주단의 사업성 리스크도 보장해주고 있는 셈"이라며 "책준확약은 미준공 리스크를 보장해주는 상품이라는 해석이 나온 만큼 신탁계정대의 변제순위를 선순위로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주단은 신탁계정대의 선순위 변제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또 투입되는 계정대가 선순위 변제를 보장받게 되면 선순위 투자자들이 PF대출 투자를 꺼리게 되면서 시장 자체가 축소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탁계약 종료 시점에 기한도과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하도록 명시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사업주체가 분양을 마무리하고 사업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신탁사에 수수료를 지급하는 만큼 신탁사 역시 신탁계약이 종료될 때 대주단에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겠다는 입장이다.
PF대출을 통해 조달된 공사비의 용도전용 제한 조항 삽입도 신탁업계의 요구사항 중 하나다. 부동산 개발사업은 통상 PF대출 약정을 통해 총 사업비의 80~90% 가량을 확보한다. 계획대로 사업이 진행되면 신탁사가 투입해야 하는 신탁계정대는 전체 사업비의 10~20%에 불과한 셈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PF수수료 등으로 인해 공사비가 부족해지는 사례가 자주 발생한다. 3개월 마다 PF대출채권을 유동화해 자금을 조달하는 등의 조건으로 대출약정을 체결하게 되면 지속적으로 수수료가 발생하면서 공사비로 쓰여야 할 자금이 금융비용으로 사용되는 사례가 있다. 외부요인으로 인해 부족해진 공사비를 신탁사가 조달하고 있는 셈이다.
부동산 신탁업계 관계자는 "신탁사는 PF대출약정 체결 시 부족한 10~20%에 대해 신탁계정대 지급을 약속하는 것인데 금융기관이 수수료를 가져가면서 부족해지는 공사비도 신탁사가 제공하고 있는 구조"라며 "필수공사비의 용도전용을 제한해 공사비가 부족해지는 일을 막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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