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 메모리 레이스]하이닉스 대세론 '재확인', 300단대 낸드 조기 양산1분기 앞당겨 개시, 내후년 400단대 열릴 전망
김도현 기자공개 2024-11-25 10:25:27
[편집자주]
메모리 시장에 차디찬 겨울이 지나고 따사로운 봄이 찾아오고 있다. 지난해 희망의 아이콘이었던 HBM을 필두로 DDR5, eSSD 등 기존 제품까지 살아나면서다. 양강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전례 없는 불황을 겪으면서 더욱 단단해진 모양새다. 다만 이전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SK하이닉스에 HBM 주도권을 내준 삼성전자의 압도적 선두 지위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올해 자존심 상한 삼성전자와 자신감 붙은 SK하이닉스 간 경쟁은 어느 때보다 치열할 전망이다. 두 회사의 '메모리 레이스'를 추적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11월 22일 07:3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SK하이닉스의 존재감은 고대역폭 메모리(HBM)로 국한되지 않고 있다. 아픈손가락으로 여겨진 낸드플래시 사업에서도 기술력을 과시하는 모양새다. 솔리다임과의 시너지가 본격화하면서 '넥스트 HBM'로 꼽히는 기업용(e)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매출이 가파르게 증대할 전망이다.삼성전자는 9세대 낸드(V9) 출시 이후 1년이 지나지 않아 리더십을 내주게 됐다. 차세대 제품 개발이 한창으로 양사 간 낸드 적층 경쟁이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최소 내후년부터는 300단을 넘어 400단대로 진입하게 된다. 현시점에서는 삼성전자가 먼저 깃발을 꽂을 가능성이 크다.
◇세계 최초 300단 돌파, eSSD 특수 더 커진다
SK하이닉스는 이달부터 321단 1테라비트(Tb) 트리플레벨셀(TLC) 4차원(4D) 낸드 양산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전 세대인 238단에서 321단으로 향상한 것으로 세계 최고층이다.
해당 제품은 올 4분기 생산 개시해 내년부터 고객에 전달된다. 당초 SK하이닉스는 내년 1분기부터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었는데, 1개 분기를 앞당긴 것이다. SK하이닉스의 상승세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2023년 6월 업계 최고층인 238단 낸드를 양산해왔고 300단을 넘어서는 낸드도 가장 먼저 선보이며 기술 한계를 돌파했다"고 전했다. 당시 삼성전자의 236단 낸드를, 이번에는 286단 낸드를 넘어서게 됐다.
HBM으로 메모리 시장 판도를 뒤집은 SK하이닉스는 다소 약세였던 낸드에서도 경쟁력을 나타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전작(2번)과 달리 321단을 3번에 나눠 쌓았다. 회로에 전류가 흐르는 구멍을 3회 뚫었다는 뜻인데 '쓰리 스택'으로 불린다. SK하이닉스에서는 '3-플러그'라고 지칭한다.
SK하이닉스는 238단 낸드 개발 플랫폼을 321단에도 적용해 공정 변화를 최소화했다. 이를 통해 생산성을 59% 향상했다. 성능 측면에서는 데이터 전송 속도 12%, 읽기 13% 높아졌다.
올 4월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1Tb 쿼드레벨셀(QLC) V9 양산에 성공한 바 있다. 이는 286단 수준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의 경우 '투스택'으로 이를 제작했다. 단일 스택 기준으로 삼성전자가 가장 높은 층을 구현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양사가 낸드 적층 대전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태에서 삼성전자는 선두 탈환을 노리고 있다. 10세대 낸드(V10) 개발에 한창이다. 삼성전자도 처음으로 쓰리 스택을 채택하는데, 단수는 430단 내외로 알려졌다. 양산 시점은 이르면 내년 하반기, 늦어도 2026년 내 이뤄질 예정이다.
현실화하면 삼성전자가 400단대 시대를 열게 되는 한편 낸드 왕좌를 되찾을 수 있게 된다. 삼성전자는 500단대 중후반의 11세대 낸드(V11)까지 동시다발적으로 개발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2027년 이후 등장 예정이다. 다만 SK하이닉스는 차세대 제품을 준비 중이어서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가운데 인공지능(AI) 서버 내 활용도가 커진 eSSD도 주목받고 있다. SSD는 낸드 기반 저장 솔루션이기 때문에 낸드 수준에 따라 성능이 갈린다. 300단대 낸드 등장으로 더욱 고부가 eSSD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SK하이닉스는 HBM만큼 eSSD에 공을 들이고 있다. 올 3분기 전체 낸드 매출에서 eSSD 비중이 60%를 넘어설 정도로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앞으로 더 증대될 가능성이 크다. SSD 사업 강화를 위해 인텔 낸드 사업부(현 솔리다임)를 인수한 효과가 가시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정달 SK하이닉스 낸드개발담당 부사장은 "AI 데이터센터용 SSD, 온디바이스 AI 등 AI 스토리지 시장을 공략하는 데 유리한 입지를 점하게 됐다"면서 "HBM으로 대표되는 D램은 물론 낸드에서도 초고성능 메모리 포트폴리오를 갖췄다"고 강조했다.
◇삼성 숨기고 SK 말하는 단수, 중국 추격 가속화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최신 낸드 발표에는 차이가 있다. 단수 공개 여부다. 삼성전자는 구체적 숫자를 오픈하지 않고, SK하이닉스는 명확하게 표기한다. 각사의 전략적 판단이긴 하나 이는 자신감 표출과 연계된다.
앞서 삼성전자는 업계 관행을 깨고 선단 D램의 회로선폭을 공개한 바 있다. 회로 간 거리가 10나노대인 D램은 1세대(1x), 2세대(1y), 3세대(1z), 4세대(1a), 5세대(1b), 6세대(1c) 순으로 진화하고 있는데 여기서 알파벳은 숨겨진 숫자를 나타낸다. 업체마다 세부적인 격차가 있어 표시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었다.
삼성전자는 1a D램의 선폭이 14.0나노라고 콕 집어 말했다. 당시 경쟁사는 14.X나노 수준이었다. 삼성전자가 우회적으로 경쟁 우위를 드러낸 셈이다. 낸드에서 SK하이닉스의 행보는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HBM 일정이 밀리는 삼성전자와 대조적으로 SK하이닉스 차세대 HBM 및 낸드를 예정보다 빠르게 내놓고 있다. 단순히 엔비디아에 HBM을 선제적으로 공급한다는 걸 넘어 기술 리더십을 확보했다는 방증"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별개로 중국의 위협도 주목해야 할 요소다. 창신메모리(CXMT)가 D램, 양쯔메모리(YMTC)는 낸드 업계에서 공세를 펼치고 있다.
YMTC는 이미 232단 낸드를 양산 중으로 300단대 정복도 앞두고 있다는 후문이다. 국내 기업과 격차가 빠르게 줄어드는 데다, 중국의 메모리 내재화 정책이 강화되고 있어 핵심 시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400단, 500단 이상 낸드 양산에 속도를 내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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