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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짜리' 작품 감정서 [thebell note]

서은내 기자공개 2024-12-04 07:47:32

이 기사는 2024년 12월 03일 07:2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자기가 믿는 감정기관의 감정서를 믿고 작품을 거래하면 되는 겁니다."

미술품 전문 감정기관의 한 전문가에게서 이같은 답을 들었다. 이우환 작품의 진위를 놓고 양대 감정기관의 의견이 자주 엇갈려 시장에 혼란이 일고 있다. 그에 대한 생각을 물었을때 되돌아온 대답이 그랬다. 한 기관은 위작으로, 한 기관은 진품으로 판정한 상황에서 소장자가 한곳의 말만 믿고 수억원에 달하는 작품을 거래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소장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진품이라는 감정 결과를 더 신뢰하고 싶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위품 소견서는 감춘 채 진품 소견서만 들고 작품을 매도하는 것이 위법은 아닌지, 과연 그런 작품을 취급해 줄 화랑이 있는지 궁금증이 끊이지 않는다. 만약 실제로 그의 말대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국내 미술품 감정체계를 취재하며 마주한 첫번째 사실은 양대 기관(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회,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 간 감정의 골이 너무 깊다는 점이었다. 서로에 대한 신뢰는 둘째치고 오랜 기간 틀어진 관계로 소통이 되지 않고 있었다. 최고의 권위를 가져야 마땅한 두 기관이 등을 지다보니 공신력을 서로 깎아내리는 결과를 만들고 있었다.

당연히 전문가마다 감정에 대한 소견은 다를 수 있고 기관의 견해는 엇갈릴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서로의 전문성을 존중해주는 분위기만 형성돼 있어도 이렇게까지 혼란스럽지는 않았을 수 있다. 서로 다른 여러 견해를 모아 최적의 방향을 찾아가지는 못하고 밥그릇 싸움만 계속되는 분위기다.

국내 미술계 위작 시비가 반복되면서 일각에서는 문제를 해결해보기 위해 미술품 거래시 복수 기관의 감정의견을 받도록 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양 기관의 의견이 이처럼 엇갈렸을 경우를 생각하면 오히려 혼란을 더 키우기만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적절한 대안으로 보기 어렵다.

감정업계의 현실을 알면 알수록 선명해지는 두번째 인상은 위작 논란과 연관된 문제들을 아예 언급하기 꺼려한다는 점이다. 해당 기관의 종사자들도 속시원히 얘기하지 못한다. 민감한 문제라 얘기할 수 없다라거나 기자의 질문에 대해 일단 기관의 공식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식이다.

드러내지 않을수록 오해는 쌓이고 문제는 곪아간다. 올해 미술진흥법이 제정되고 문체부는 진품증명서와 함께 감정기관들이 발급하는 감정서의 양식을 다듬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지금같은 상황에서 감정서의 양식을 정비한들 그 효과가 얼마나 있을까. 민간에서의 자정작용을 기대하는 듯 한데, 콧대높은 미술계가 과연 반응이나 할지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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