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유출 이벤트, 고려아연 15년만에 공모채 시장 등장 배당금 지급·대규모 환차손 예고…현금 상환 '난항'
권순철 기자공개 2025-02-07 08:09:55
이 기사는 2025년 02월 05일 10시09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고려아연이 15년 만에 공모 회사채 카드를 꺼내 들었다. 당장 오는 3월 한국투자증권과 KB증권을 상대로 찍은 4000억원 규모의 기업어음(CP) 만기가 도래하면서 저금리로 차환을 하고자 공모채 시장을 찾은 것으로 풀이된다.현금 상환 여력이 줄어든 결과 공모채를 선택한 측면도 있었다. 업황이 좋지 못한 가운데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이행하기 위한 배당금 지급으로 캐시플로 유출이 예고돼 있다. 대규모 환차손까지 누적되면서 자체 자금만으로 충당하기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줄어든 현금 상환 여력에 '이례적' 공모채 차환 발행
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지난해 자사주 공개매수 대금을 마련하고자 일으켰던 차입금을 저금리로 차환하기 위해 공모채 발행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한국신용평가에 회사채 본평가를 의뢰했고 전일 'AA+, 부정적'의 신용등급을 받았다. 오는 3월 만기가 도래하는 4000억원 규모의 CP부터 차환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비용 절감 차원에서 공모채를 꺼내들 유인이 있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전일 기준 AA+급 회사채 3년물은 3.05% 수준에서 거래됐다. 반면 지난해 한국투자증권과 KB증권을 상대로 발행한 4000억원 규모의 6개월 만기 CP 금리는 3.60%였다. AA+급 10년물과 비슷한 수준이라 단연 공모채가 유리하다.
다만 15년 만에 회사채 시장을 찾은 점은 이례적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3분기 연결 기준으로 약 1조5000억원의 현금을 쌓은 고려아연은 무리 없는 현금 상환이 가능한 회사로 꼽힌다. 그럼에도 파격적인 공모 조달을 단행한 것은 그만큼 현재 회사의 재무 펀더멘탈이 대규모 현금 유출을 감당할 만한 상태가 아니라는 신호로 해석된다.
영풍-MBK 측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발생한 재무 부담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업황 악화 속 현금 유출 이벤트들이 연이어 예고돼 있다. 회사 측 관계자는 "경기 민감도가 큰 업종 특성상 어려움이 적지 않다"며 "다양한 이유로 현금이 빠져나갈 일들이 산적해 보유 자금만으로 모든 걸 충당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3분기 연결 기준 8조6402억원의 매출과 6032억원의 영업이익, 4407억원의 순이익을 각각 기록했다. 오는 6일 발표될 예정인 연간 실적 역시 준수한 성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에도 주주 환원과 손실 메꾸기에 대규모 현금을 투입해야 해 마냥 웃을 수 만은 없는 상황이다.

◇순이익 40% 배당 유출…대규모 환차손 누적 따른 캐시플로 '타격'
고려아연이 지급해야 할 배당금 규모는 전체 순이익의 최소 40%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회사는 지난해 10월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발표하면서 2024년부터 향후 3년 간 평균 40% 이상의 주주환원율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영풍-MBK와의 경영권 분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주주들의 표심을 유도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했다.
경영권 방어 측면에서 주주 환원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회사 측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지분율이 밀리고 있어 주주들과의 약속을 준수하는 게 중요하다"며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도 밸류업 계획 실행에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순이익의 절반 가까이 되는 규모가 배당금으로 빠져나가고, 대규모 환차손이 계상되면서 추가적인 현금 유출이 불가피하다. 지난해 3분기 연결 기준 환차손으로 빠져나간 캐시플로우 234억원 정도였다. 그러나 4분기부터 달러당 원화가 1400원 중반까지 치솟으면서 이 수치가 수천억원대로 급등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상황에서 주력 비즈니스인 비철금속 업황이 내리막세를 걷는 것은 재무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비철금속을 만들어 파는 고려아연의 매출 구조에서 주요 비중을 차지하는 건 아연(30%), 은(29%), 연(18%) 등이다. 그러나 아연 및 연의 단가가 하락세를 띄면서 당분간 수익성의 획기적인 개선을 바라기 어려워졌다.
이 같은 국면이 장기화될 경우 고려아연의 외부 시장성 조달이 잦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단 오는 3월 만기 도래하는 CP를 차치하더라도 자사주 공개매수 과정에서 일으킨 조단위 차입금을 갚아야 한다. 고려아연이 자본시장에 출현하는 빈도가 늘어나면서 증권사 IB들도 본격적으로 영업에 나서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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