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05월 09일 07시54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약 한달 전 주총 시즌이 끝났다. 질의응답이 활발한 미국 주총과 달리 한국은 질의가 제한적이고 형식적인 모양새에 그친다. 전문적 분석이나 날카로운 질문보다는 행사 자체의 절차 진행에 집중되는 경향이 짙다. 특히나 벤처캐피탈 주총 현장은 세간의 이목을 끄는 경우가 거의 없다. VC 시가총액 규모가 크지 않을뿐더러 수퍼개미가 활동하는 인더스트리가 아닌 까닭이다.올해는 양상이 조금 달랐다. 주총장에서 개미 투자자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연간 수십억에서 수백억원에 달하는 성과보수를 챙기는 스타 벤처캐피탈리스트 소식이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는데 정작 해당 심사역이 소속된 하우스의 주가는 지지부진하니 속이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자사주 매입 후 소각이나 배당 등의 주주친화적 행보 또한 주주 눈높이에 맞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VC 주총 현장 에피소드는 정성인 프리미어파트너스 회장을 만난 기억을 소환했다. 프리미어파트너스는 2005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LLC(Limited Liability Company·유한책임회사)형 VC다. 정 회장은 본인의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해 법적으로 설립 근거가 부재하던 LLC형 VC가 탄생하도록 기여한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그는 벤처캐피탈은 일반 금융기관과는 달리 상장사가 되어선 안된다고 강경하게 말했다. 상장사가 되면 벤처캐피탈의 본질과 정체성이 흐려질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가 일반 주식회사가 아닌 유한책임회사형 VC 1호를 설립한 배경과도 맞닿아 있다.
VC는 본질적으로 장기 투자자다. 스타트업에 투자한 후 5~10년 이상의 긴 시간을 기다리며 성장 가능성에 베팅하는 게 그들의 DNA다. 그러나 상장 기업은 매 분기 실적을 시장에 보고해야 하고 투자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단기 성과에 몰두할 위험성이 있다. VC 본연의 인내와 모험 정신이 사라지고, ‘성공 가능성이 높은 안전한 딜’만 선호한다. 모험 자본이 모험을 꺼리는 아이러니가 발생할 수 있다.
스타트업과의 이해 상충 가능성도 존재한다. VC 실적과 주가를 위해 피투자사의 조기 엑시트나 비정상적 구조조정을 유도할 유인이 생긴다. 시장 친화적인 방향으로 펀드 운용 방향을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다. 스타트업의 성장 단계에 맞지 않는 빠른 수익화를 요구하는 등 기업가 정신을 훼손할 여지도 커진다.
물론 순기능도 있다. VC가 상장하면 공모자금으로 펀드와 하우스의 AUM 대형화를 이끌 수 있다. 더 많은 GP 커밋을 투자해 회사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동시에 자본시장 중심의 VC 구조가 확산되면 '창업자의 잠재력'보다는 '곧 회수 가능한 모델'에만 집중하는 단기 성과주의가 생태계를 지배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상존한다.
‘VC는 상장하면 안 된다‘는 명제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하우스마다 운용 철학이 다르듯 회사의 성장 과정에서 기업공개(IPO)를 진행하느냐 여부는 파운더와 CEO의 경영상 판단의 몫이다. 핵심은 상장 이후에도 VC로서의 운용 철학과 역할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가에 있다. 상장이 이익 중심 경영을 강화하고 스타트업 성장 지원이라는 본분을 훼손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이끌어선 안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더불어 LP의 수익 극대화뿐만 아니라 주주 환원도 보다 신경써야 할 것이다. 주주의 이익 실현 방법은 크게 두가지다. 캐피탈 게인과 인컴이다. 주가 흐름은 회사 경영진의 의지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등 노력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다행히 배당 등은 회사의 의지만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펀드 운용 전략과 성과에 맞는 배당 정책을 확립하고 이를 실천하는 의지일 것이다. 내년 상장 VC 주총 현장에서 들려오는 주주 목소리는 올해와 다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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