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십자, M&A에 열중하는 까닭은? [지배구조 분석] 2000년대 공격적 확장..허은철·허용준 부사장 계열분리 염두 관측
장소희 기자/ 문병선 기자공개 2014-01-28 08:50:00
이 기사는 2014년 01월 28일 08:2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녹십자그룹이 일동제약의 지주사 전환을 막고 경영권 인수를 추진하는 등 적극적으로 인수합병(M&A)에 나서고 있다. 이미 크고 작은 지분 투자를 통해 적잖은 수익을 올렸고 여기에 일동제약과 추가로 2~3곳 정도의 제약사를 더 인수해 몸집을 불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녹십자그룹이 이처럼 M&A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향후 후계구도와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M&A로 발굴한 회사를 키워 향후 친족간 계열분리의 기점으로 삼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녹십자그룹은 친족간 공동 경영 체제다. 향후 몸집이 커지면 일부 계열사를 고허영섭 전 회장의 2세들이 맡아 독립적으로 경영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10여 년 쌓아온 지분투자 노하우..일동제약까지?
녹십자는 제약업계에서 지분투자로 짭짤한 수익을 얻은 회사로 유명하다. 일각에서는 녹십자의 성공적인 투자행보를 두고 '투자의 귀재'라는 별칭을 붙일 정도다. 지난 2001년 상아제약 인수를 시작으로 10년 넘게 지분투자 노하우를 쌓아왔다.
녹십자가 M&A로 첫 성공을 맛본 것은 지난 2003년 대신생명(현 현대라이프생명보험) 인수 건이다. 당시 녹십자홀딩스가 1600억 원을 들여 대신생명을 인수해 녹십자생명으로 운영해오다가 지난 2011년 10월 현대자동차그룹에 매각하는데 성공했다. 매각 가격은 2283억 원으로 8년 만에 680억 여원의 차익을 얻었다.
|
제약사 인수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지난 2001년 상아제약을 인수해 '녹십자상아'라는 자회사로 두고 있다가 이 회사를 통해 2003년 경남제약도 인수했다. 당시 녹십자상아는 경남제약 지분 70%를 인수해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상아제약과 경남제약 두 곳 모두 일반의약품(OTC)을 전문으로 생산하던 곳으로 혈액, 백신제제 등 생물학적 제제 사업에 중점을 두고 있던 녹십자의 사업포트폴리오를 다소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 중 상아제약은 현재도 녹십자홀딩스의 자회사로 남아있고 경남제약은 35억 원의 차익을 남기고 HS바이오팜에 매각했다.
2012년에는 제약업계에 바이오벤처 투자 바람이 불며 기술력 있는 바이오벤처 인수가 이뤄졌다. 녹십자는 앞서 2000년 7월에 설립한 바이오벤처전문 창투사를 통해 제넥신, 마크로젠 등에 투자했던 경험을 살려 현재 녹십자의 자회사가 된 '녹십자셀(구 이노셀)' 인수에 박차를 가했다. 당시 이노셀이 진행한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23.47%를 150억 원에 인수했다.
하지만 같은 시점에 인수를 시작한 일동제약의 경우 투자금액이 상당해 눈길을 끈다. 제약업체가 아닌 대신생명 인수를 제외하면 사실상 가장 큰 규모의 자금을 쏟아 부은 케이스다. 2012년 3월부터 현재까지 일동제약 지분 29.36%를 보유하기 위해 쏟아부은 비용은 739억 원이다. 이번 일동제약 지분인수는 주총을 코앞에 앞두고 지분 12.47%를 대거 사들이고 경영 참여까지 선언한 상황이라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두고 접근한다는 분석이다.
◇고 허영섭 회장 2세 분가 '포석'
업계에서는 지난 10여년간 녹십자그룹이 수많은 M&A에 나섰던 이유를 여러 각도에서 해석한다. 녹십자그룹측은 제약 사업의 시너지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고 허영섭 회장의 2세들인 허은철 녹십자 부사장, 허용준 녹십자홀딩스 부사장 등의 계열분리를 위한 발판을 마련해 주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없지 않다. 앞서 이노셀 인수 때부터 불거졌던 해석으로 일동제약을 비롯한 중소제약사 몇 곳을 더 인수해 쓸만한 기업으로 성장시킨 후 허 부사장 형제에 넘겨준다는 시나리오다.
일동제약 경영권 인수 추진은 이런 시나리오를 구체화하는 와중에 나온 거래다.
업계 관계자는 "녹십자그룹이 계열분리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라며 "M&A를 통해 몸집을 키우고 사업을 다각화해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주된 목적이지만 허 전 회장 일가와 계열분리를 위한 포석 마련이 가능하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고 전했다.
실제 현재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허 회장은 일동제약 지분 인수에 관해 면밀하게 살피며 의사결정에 깊숙히 개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의 파이를 키우는 차원에서 다각도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지만 조카인 허 부사장 형제와의 관계도 미리 살필 수 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지난 1967년 설립 당시부터 허 회장 형제가 녹십자그룹을 함께 키워왔기 때문에 먼저 타계한 허 전 회장의 몫을 2세들에게 챙겨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중장기적으로 허 회장이 녹십자그룹을 계속 이끌고 허 부사장 형제가 따로 경영할 회사를 마련하는 과정에 있다는 얘기다.
현 상황에서 보면 지분율은 상대적으로 허 전 회장 2세들이 허 회장 일가보다 낮다. 지난 2001년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녹십자그룹의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회사는 '녹십자홀딩스'로 최대주주는 허일섭 회장이다. 지난해 11월 기준 26만2770주(10.62%)를 보유하고 있다. 뒤를 이어 허영섭 전 회장의 2남과 3남인 허은철 녹십자 부사장과 허용준 녹십자홀딩스 부사장이 각각 지분 2.36%, 2.44%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 2009년 허 전 회장 타계로 허 부사장 형제는 지분을 상속 받았지만 여전히 허 회장 일가의 지분율과 차이가 크다. 게다가 허 회장이 꾸준히 지분을 매입하며 최대주주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격차를 좁히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허 회장은 형인 허 전 회장이 타계하기 6개월 전인 지난 2009년부터 녹십자홀딩스 지분을 매입하기 시작했고 지난해에도 6회에 걸쳐 14만5000주(0.29%)를 추가 매입했다. 허 회장 부인인 최영아 여사와 세 아들인 진성, 진영, 진훈 씨도 지분 일부를 보유하고 있어 허 회장 일가 지분율은 총 11.65%다. 허 부사장 형제일가 지분율(5.9%)의 2배에 가깝다.
|
결국 허 회장은 지분 상으로는 허 부회장 형제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 광폭 M&A 행보를 통해 제2, 제3의 녹십자셀을 만들어 가고 있는 모습이다. 일동제약과 현재 인수를 검토하고 있는 또 다른 중소제약사도 녹십자셀과 마찬가지로 녹십자그룹에 자연스럽게 편입, 중장기적으로 계열분리에 활용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허 회장이 아직 활발하게 경영활동을 할 수 있는 나이기 때문에 보다 공격적으로 M&A에 나서며 사세 확장에 열을 올리는 것 같다"며 "허 부사장 형제가 경영 일선에 나와있는 것과는 달리 허 회장의 3남은 아직 경영에 발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재임시절에 후계구도를 미리 정리해둬야 한다는 인식이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관련기사
best clicks
최신뉴스 in 전체기사
-
- [북미 질주하는 현대차]윤승규 기아 부사장 "IRA 폐지, 아직 장담 어렵다"
- [북미 질주하는 현대차]셀카와 주먹인사로 화답, 현대차 첫 외국인 CEO 무뇨스
- [북미 질주하는 현대차]무뇨스 현대차 사장 "미국 투자, 정책 변화 상관없이 지속"
- 수은 공급망 펀드 출자사업 'IMM·한투·코스톤·파라투스' 선정
- 마크 로완 아폴로 회장 "제조업 르네상스 도래, 사모 크레딧 성장 지속"
- [IR Briefing]벡트, 2030년 5000억 매출 목표
- [i-point]'기술 드라이브' 신성이엔지, 올해 특허 취득 11건
- "최고가 거래 싹쓸이, 트로피에셋 자문 역량 '압도적'"
- KCGI대체운용, 투자운용4본부 신설…사세 확장
- 이지스운용, 상장리츠 투자 '그린ON1호' 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