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6년 10월 31일 07:5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인생은 매 순간이 갈림길이고 선택이지. 그림은 그려졌고 당신은 거기서 선 하나도 지울 수가 없어. 당신 뜻대로 동전을 움직일 수는 없지. 인생의 길은 쉽게 바뀌지 않아. 급격하게 바뀌는 일은 더더욱 없지. 당신이 가야 할 길은 처음부터 정해졌어."
2007년에 개봉된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살인청부업자 안톤 쉬거의 말이다. 이 영화는 은퇴를 앞둔 보안관과 돈을 가지고 도망 다니는 카우보이, 그를 쫓는 살인청부업자를 다룬 스릴러물이다. 영화계의 천재라고 불리는 코언 형제의 작품으로 아카데미상과 골든그로브를 휩쓴 명작이다.
보안관 벨은 나이가 들면 신의 뜻을 어느 정도 이해할거라고 믿었지만, 여전히 그는 신의 뜻도, 인간도, 이 사회도 이해할 수 가 없다. 그가 살고 있는 세상은 살인청부업자가 말하는 '어쩔 수 없이 골라야 하는 동전의 앞면 혹은 뒷면'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인이 생각하는, 노인이 원하는 세상은 쉽게 오지 않는다. 그래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정말 노인을 위한 나라인가?
올해 10월로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지 정확히 20년이 되었다.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다며, 부자나라들의 모임이라며, 샴페인을 터트린 후 1년도 안돼서 외환위기를 겪었지만 우리나라는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성장을 하였다. 1인당 GDP는 20년만에 3배 가까이 늘어 3만 4549달러(2015년)가 되었으며, 수출은 4배, 수입은 3배정도 늘었다.
그 과정에서 그늘도 짙어졌다. OECD 가입 당시 우리나라의 연간 노동시간이 2,637시간으로 가입국가중 가장 길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2,124시간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멕시코 다음으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나라이다. 도로사망률도 278명에서 94명으로 크게 낮아졌지만 여전히 OECD 가입국가중 두 번째로 높은 나라이다. 출산율도 1.21명으로(2014년 기준) OECD회원국 중에 가장 낮다.
우리나라의 경우 1966년 4.8명에서 1983년 2.06명 등으로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지고 있는데, 그 원인 중에 하나가 여성의 첫 출산연령이 늦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첫 출산연령은 31세로 미국 26세, 캐나다 28세, 일본 30세와 비교할 때 OECD회원국 중에 가장 늦게 출산하는 나라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평균 초혼연령은 남성 32.4세, 여성 29.8세로 OECD 평균수준임을 고려할 때, 첫 출산연령이 출산율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다른 나라는 결혼 이전에도 출산이 많이 이뤄지는 반면 우리나라는 결혼을 해야 출산으로 이어지는, 즉 혼인으로 가족을 구성해야 출산이 이루어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유교적 관습이 남아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OECD국가에서는 비혼(非婚) 출산이 상당히 일반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결국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혼 장려정책'을 강력히 펼치는 것 외에도 '비혼 인정정책'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OECD 가입 이후 무엇보다도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고령화문제이다. 20~64세 성인 인구대비 65세 이상의 노인인구 비율이 20%로(2014년 기준) OECD 평균인 28%보다 오히려 낮다. 그러나 현재의 추세로 고령화가 진행될 경우 2060년에는 그 비율이 79%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OECD회원국 중에 일본과 더불어 최고 수준이다. 청년(15~29세) 비중은 2015년 현재 20%에서 206년에는 13%로 크게 줄어 OECD국가중 청년비율이 가장 낮은 나라가 될 것으로 보인다. 즉 2060년의 대한민국은 노인이 주류인 나라, 청년이 가장 적은 나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OECD에 가입한지 20년이 지났지만, 빈곤율은 여전히 높다. 상대빈곤율(중위소득의 50% 미만의 비율)은 14.4%로 OECD 평균 11.4%보다 더 높았으며, 전체 35개국중 10번째로 소득 불평등이 심한 나라이다. 특히 노인빈곤율은 49%로 OECD회원국 중에 가장 높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GDP대비 복지지출 비중은 10.4%로 프랑스(32%) 일본(27%)에 턱없이 모자라고 OECD국가 평균(21%)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은 82.2세로 OECD평균(80.2세)보다 높은데, 문제는 속도와 질이다. 1970년 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은 61.9세로 무려 40여년만에 20세나 수명이 늘어났다. 이렇게 기대수명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삶의 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먼저 건강에 대한 인식도는 OECD국가중에 최악의 수준이다. 자신의 건강생태가 양호하다고 느끼는 비율이 32.5%에 불과하여 국민의 91%가 건강하다고 답한 뉴질랜드뿐 아니라 OECD평균인 68%에도 훨씬 못 미치고 있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의 삶의 만족도는 OECD평균을 훨씬 하회하고 있다. 삶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스위스(7.6점/10점만점)를 비롯하여 노르웨이, 핀란드 등 북유럽국가가 삶의 만족도가 높은 반면 일본 등 아시아국가의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우리나라의 삶의 만족도는 5.8점으로 OECD평균인 6.6점에 크게 못 미치며, 비회원국인 브라질, 아르헨티나보다 낮은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자살률은 전세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28.7명으로 OECD평균 12명보다 무려 2.4배나 많은데, 특히 남성자살률이 43.3명으로 여성보다 2.5배나 많다. 20~30대의 경우 남녀 자살률이 비슷하지만, 50~60대의 경우 남성이 여성보다 거의 3배이상 많아, 가장으로서의 그들이 느끼는 삶의 무게와 노년기로 접어드는 시기에서의 공허함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준다.
안정적인 사회가 되려면,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중요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타인에 대한 신뢰도는 삶의 만족도와 마찬가지로 크게 낮다. 70점을(100점만점) 넘어선 덴마크, 노르웨이는 물론 OECD평균(36점)을 크게 하회하는 26점수준이다. 한국사회는 변동성이 큰 사회이다. 그만큼 불안감도 크다. '믿고 의지할 친척 혹은 친구들이 있는가'를 물어본 결과 긍정적인 대답은 OECD국가중 뒤에서 7번째로 낮았다. 특히 50대 이상의 경우 겨우 10명중 6명만이 그렇다고 답하여 OECD국가중 가장 낮았다. 그만큼 50대이상의 고립감은 큰 것이다.
부자나라만 된다던 OECD회원국이 된지 20년, 그동안 많은 변화와 명암이 엇갈렸다. 특히 50대 이상 시니어들의 삶은 더욱 그랬다. 그들이 가장 역동적으로 일했던 시기, 그래서 더욱 기억이 선명한 과거였다. 과거엔 나이든 노인은 그 시대의 희생자이거나 약자이다. 그래서 노인이 생각하는, 노인이 원하는 세상은 쉽게 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젠 달라졌다. '어쩔 수 없이 골라야 하는 동전의 앞면 또는 뒷면'이 아니다. 100세시대엔 노인을 위한 나라가 올 것이다. 아니, 와야 한다.
이윤학 NH투자증권 소장
LG투자증권 리서치센터 Stratigiest
우리투자증권 리서치센터 Stratigiest
우리투자증권 신사업전략부 이사
現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소장
[수상]02~06년 조선일보, 매경, 한경, 헤럴드경제 선정 베스트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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