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7년 05월 17일 08:0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우리만큼 근본을 따지는 족속이 있을까. '믿거나 말거나' 오천년 단일민족 혈통을 지켜왔단 믿음은 마땅한 긍지요 자부심이다. 오죽했으면 '근본없다'는 의미의 '후레자식'이란 차마 입에 못담을 욕이 있을까. '근본없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마저 존재하는 듯 하다.근본을 따지는 습성은 기업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오너십이 있어야 비로소 근본있다 소릴 듣는데, 창업 1세대 기업은 여간 잘나가지 않고선 그런 소릴 듣기 어렵다. 적어도 2,3대 정도 세습되고서야 가문과 혈통을 인정받는다. 시가총액이 비슷한 기업간이라도 오너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과의 비교를 거부한다. "어찌 감히"란 소리는 오너나 최고경영진 레벨 뿐 아니라 그냥 밥벌어 먹고 사는 월급쟁이들 사이에서도 종종 듣는다.
소위 '주인없는 기업'은 청산해야 할 적폐 취급받는다. 공기업 방만 경영은 오너십 부재가 원인이며, 때문에 확실한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고들 주장한다. 민영화 논리가 거의 이런 식이다.
시한이 정해진 오너십 역시 우리나라에선 주인없는 거나 진배없이 취급받는다. 사모펀드가 바이아웃한 기업이 그동안 증권거래소로부터 외면당한 이유다. 최근에야 거래소 상장 규정이 바뀌어 비로소 펀드 바이아웃 기업에도 상장 문호가 열렸지만, 이런 기업에 대해선 한 단계 낮춰보는 걸 마치 당연한 듯 여긴다. 최근 상장 후 주가가 공모가를 밑도는 ING생명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앞서 상장한 한화생명, 미래에셋생명의 더 민망한 주가 히스토리가 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역시 사모펀드가 주인인 삼양옵틱스의 희망공모가 밴드가 높으면 고평가 논란이 생긴다. 상장을 꿈꾸는 많은 펀드 소유 기업들이 짊어져야 할 멍에들이다.
따져보면 대체 주인없는 기업이 어디 있나. 주식회사의 오너십은 주주에게 있고, 파트너십 회사의 주인은 파트너들이다. 공기업의 주인은 대주주인 정부기관이고, 차입금을 상환못해 은행이 졸지에 대주주가 된 기업에도 경영권을 가진 주인은 있다. '기업의 주인이 누구인가' 하는 보다 근원적 담론은 일단 제쳐두자.
반드시 창업자의 혈통을 물려받은 1대주주만 기업의 주인인가. 1대주주라 할만한 주주가 없으면 이사회를 구성할 수 없는가. 한 때 포스코나 KT의 확실한 주인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소리들이 있었다. 요즘도 때만 되면 한번씩 나도는 소리다. 근데 포스코와 KT에 주인이 없어서 지금 문제인가. 포스코와 KT는 정녕 주인없는 기업인가. 혹여 주인없는 기업인양 착각해 주인 행세하는 누구가가 지금껏 그 기업들을 어렵게 만들진 않았을까.
외국 투자자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첫번째 요인으로 후진적 기업 지배구조를 주저없이 지적한다. 그들이 지적하는 우리 기업의 지배구조 후진성이 분명 지금껏 언급한 '확실한 오너십'부재에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최근 MBK파트너스가 코웨이 지분 5% 가량을 시장에 처분했다. MBK는 이번 매각으로 챙기게 된 현금과 앞서 수령한 배당 등으로 이미 투자 원금을 훌쩍 넘게 회수하게 됐다. MBK는 여전히 코웨이 지분 26%를 보유한 1대주주로서 경영권을 유지하는데 문제가 없다고들 한다.
개인적으론 MBK가 주주가치에 충실한 가장 유능한 경영진을 정착시킨 후 보유 지분을 시장에서 모두 처분하고 빠져나가는 상상을 해본다. '확실한 주인'이 없어도 시장에서 프리미엄을 인정받는 애플같은, GE같은 글로벌 기업이 우리나라 기업 중에서 나오지 말란 법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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