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7년 10월 12일 08:2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자동차 부품사들은 종종 '원전 납품업체'와 비교된다. 그만큼 폐쇄적이고 배타적이라는 뜻이다. 공통적으로 발주처가 뿌린 일감을 수백 개의 납품업체가 나눠 갖는다. 전문 영역이어서 내부에서 돌아가는 사정을 잘 알기도 어렵고 진입장벽도 높다. 하지만 한번 거래를 트면 탄탄대로가 열린다.납품하는 '주종'이 달라 경쟁도 없다. 적어도 이 시스템 안에서는 서로를 견제하며 무한 경쟁을 펼쳐야 하는 적자생존의 시장 논리가 작동되지 않는다. 거래 끈이 끊기지 않는다면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사세를 확장할 수 있다.
국내 다수 자동차 부품사들은 현대기아자동차라는 거인 등에 올라타고 장기간 성장을 구가했다. 외형은 작지만 한해 수백억 원의 순이익을 올리는 알짜기업도 적지 않다. 순이익의 90% 이상을 대주주에게 배당하는 비상장 기업도 있다.
많은 부품사들이 현대기아자동차그룹과 혈연, 지연, 학연 등 다양한 관계로 얽혀 있다. 설립 초기에는 주로 방계 등 혈족들이 납품을 도맡았다. 전직 임직원들이 독립해 거래를 맺는 경우도 있다.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이라고 할 정도다. 1975년 현대자동차의 독자모델인 포니를 시작으로 40년 남짓 '그들만의 성'을 구축했다.
그들은 누군가 간섭하거나 그 틈에 끼어드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납품 계약 조건 등 영업활동을 비롯한 오너일가 지분 소유 현황 등을 묻거나 외부로 공개하는 데에 대한 불쾌감을 감추지 않는다.
상장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주주들과 소통에 늘 소극적이다. 적당히 욕을 듣지 않을 만한 수준에서 IR부서를 형식적으로 운영하는 곳이 적지 않다. 상대가 정해진 'B2B 사업'에서 굳이 일반인들에게 정보를 공개하거나 잘 보여야 할 까닭이 없었다.
최근 우리 자동차 부품사들은 전혀 새로운 환경과 마주하고 있다. 영원할 것 같은 공고한 성에도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든든한 버팀목인 현대기아자동차가 내수시장에서 고전하고 판매부진을 겪으면서다. 중국에서는 사드 악재까지 겹치면서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거인의 걸음걸이가 느려지고 어깨가 좁아지면서 생존을 고민해야하는 처지가 됐다. 눈치 빠른 일부는 거래처 다변화를 위해 해외 로컬기업 등과 손을 잡았다. 몇몇은 글로벌 완성차업체인 GM, 폭스바겐 등으로 눈을 돌렸다. IR 전담 책임자를 지정하고 주주와 소통 강화를 시작한 곳도 있다. 사드 악재로 가속이 붙은 완성차 업계 위기가 자동차 부품사들을 밖으로 내몰고 있다.
하지만 아직 많은 업체들이 울타리 밖으로 나오기를 주저한다. 수십 년간 몸에 밴 습성을 단기간에 바꾸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잊지 말아야 할 건 거인 등만 바라보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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