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평채, 토종IB 철저한 외면…숏 리스트에도 배제 SRI채권 특수성 고려, 외국계에만 주관 기회…국내 IB 육성 뒷짐
피혜림 기자공개 2019-05-07 13:29:23
이 기사는 2019년 05월 03일 15:5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국 정부가 발행하는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주관사가 확정됐다. 2013년부터 국내 증권사를 한두곳 포함시켜오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외국계 하우스로만 주관사단을 구성했다. 과거 국내 하우스를 한두곳씩 끼워넣었던 모습과 대조적이다.그동안 외평채는 외국계 하우스 일색인 한국물 시장에서 국내 투자은행(IB)이 경험을 쌓을 기회로 여겨졌다. 다만 이번 발행에서는 국내사가 숏리스트에도 오르지 못하는 등 철저히 제외됐다. 사회적책임투자(SRI) 채권 등 발행 유형에 대한 고려 사항이 늘어나자 주관사 선정에서 전문성 등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외평채 주관사단 선정, 국내 하우스 '0' 이례적
지난달 기획재정부는 외평채 주관사로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과 HSBC, JP모간, 크레디아그리콜(CA)을 선정했다. 앞서 기획재정부는 외평채 발행의 주관사 선정을 위한 제안요청서(RFP)를 국내외 IB에 발송하고 제안서를 받았다. 이중 8곳의 하우스가 프리젠테이션(PT)를 진행할 기회를 잡았으나 주관사단의 지위는 미국계와 유럽계 하우스 각각 두 곳에 돌아갔다.
국내 증권사가 외평채 주관사단에 포함되지 않은 건 사실상 2005년 이후 처음이다. 2015년 첫 위안화 외평채를 찍을 당시 외국계 하우스로만 주관사가 구성된 적도 있으나 당시에는 국내사인 삼성증권이 금융 자문사(financial advisory)로 이름을 올렸다. 이를 제외한 모든 외평채 딜에서는 KDB산업은행을 비롯해 삼성증권, NH투자증권 등 국내 증권사가 한두 곳씩 주관사로 선정됐다.
이번 외평채 주관사 선정 과정에서는 숏리스트 단계부터 국내 하우스가 배제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KDB산업은행와 미래에셋대우 등이 후보에 올라 PT 심사를 준비했다. 2017년 발행된 외평채 주관사 선정 과정에서도 삼성증권과 NH투자증권, 산업은행 등이 숏리스트에 올라 경쟁을 벌였다.
그동안 국내 하우스는 단순 경쟁만으로 한국물 주관사 자리를 차지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 인프라 부족 등으로 외국계 하우스와의 경쟁에서 밀려난 탓에 외평채 발행 등에 참여해 주관실적을 올리는 게 관련 경험을 쌓을 가장 큰 기회였다. 외평채 주관사단으로 국내 하우스가 꾸준히 낙점되자 정부 차원에서 토종 IB 육성 차원의 배려 아니겠냐는 해석이 나왔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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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I 특수성 고려…토종IB 역할 부족 지적도
기획재정부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채권 등 다양한 유형의 발행 방식을 고려하다보니 주관사 선정 과정에서 전문성에 대한 비중이 높아졌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는 이번 외평채를 그린본드(Green bond), 지속가능채권(Sustainability bond) 등 친환경·친사회적 프로젝트로 자금 사용이 제한되는 특수목적 채권으로 발행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관련 업계에는 사회적책임투자(SRI) 채권 형태로 외평채가 발행될 경우 사실상 국내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전무하다고 지적한다. 국내 증권사의 경우 ESG채권 발행 이력이 미미하다. KDB산업은행이 지난해 한국수력원자력과 LG디스플레이의 ESG채권 발행을 주관하긴 했으나 LG디스플레이 딜의 경우 채권 지급보증을 제공한 영향이 컸다.
토종 IB가 주관사로 참여해도 제 역할을 다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주관사단으로 참여해도 경험을 쌓겠다는 모습이 부족하다"며 "글로벌 금융시장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고려 없이 제안을 하는 등 기초 역량조차 뒷받침 되지 못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내 증권사가 초대형 IB로 나아가기 위한 유의미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는만큼 정부 역시 보조를 맞춰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국내 증권사는 자발적으로 해외 채권 시장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신한금융투자가 국내 기업의 보증부 해외 변동금리채권(FRN) 주관을 맡은 것은 물론 미래에셋대우는 한국수출입은행의 한국물 북러너(book runner)로 활약하기도 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초대형 IB 육성 정책을 펼치면서도 한국물에 대해서는 예외를 두는 모습"이라며 "시장 진입 초기 단계인 국내 증권사가 막강한 네트워크를 가진 글로벌 IB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험을 쌓을 기회가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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