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조원태 회장, 백기사 델타항공에 제시한 당근책은지분투자-신기종 도입 시점 겹쳐…'설왕설래'
최익환 기자공개 2020-02-06 13:33:14
이 기사는 2020년 02월 05일 11:0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어머니와 여동생의 지분을 확보한 조원태 회장이 우군 델타항공에는 어떤 ‘당근’을 제시했을지 시장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특히 지난해 델타항공의 한진칼 지분 매입 직후 조원태 회장이 보잉 787-10 기종의 도입을 공식화했고, 델타항공의 평균기령이 대한항공보다 높다는 점에서 델타항공에 대한 당근은 미주노선에 투입할 '새 비행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5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미국 델타항공은 오는 3월 열리는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조원태 회장 측을 지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6월 한진칼 지분 4.3%를 매입하며 조원태 회장의 백기사로 등장한 델타항공은 지난해 9월에는 지분율을 10%까지 끌어올리며 주요 주주의 일원이 됐다.
◇델타항공, 대한항공과 JV 시점부터 지분투자 고민
실제 델타항공은 대한항공과 조인트벤처(JV) 협정을 논의하던 2017년부터 대한항공에 대한 지분투자를 병행하는 방안을 고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델타항공은 허브공항으로 사용하던 일본 나리타 국제공항의 확장이 어려워지는 등 이유로 태평양 횡단노선 시장에서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었다.
실제 델타항공은 △에어프랑스-KLM(9%) △브라질 GOL항공(9%) △중국동방항공(3%) 등 같은 항공동맹체 스카이팀(SKYTEAM) 회원사들의 소수지분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델타항공은 이들 항공사들의 이사진 선임과 기종 선택 등 경영에 대한 의견을 내는 등 주주로서의 활동도 활발하다. JV를 델타항공에게 유리하게 이끌고 가기 위해 지분투자라는 전략적 시도를 모색한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대한항공에 대한 투자시도는 1년이 지나 지주사 한진칼에 대한 투자로 집행됐다. 델타항공이 대한항공에 대한 투자를 고민하는 사이 KCGI의 행동주의 캠페인이 시작된데다, 조양호 회장마저 지난해 4월 급작스레 별세하자 그동안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해온 오너 일가의 우군이 되기로 한 것이다.
델타항공 입장에서 대한항공 대신 한진칼에 투자하게 되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 크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경영권을 놓고 KCGI와 지분율 경쟁을 펼치던 오너 일가의 우군이 되면 JV에서의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고, 스카이팀 내부에서의 주도권을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한항공에 대한 영향력 확보 역시 가능하다.
특히 나리타국제공항의 확장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새로운 허브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대한항공으로부터 상당한 수준의 협조를 보장받아야 한다. 아시아 지역 노선망 확대를 노려온 델타항공 입장에서는 한진칼 지분 매입이 묘수나 다름없었다는 평가다. 실제 델타항공은 JV를 이용해 오는 3월부터 동남아노선인 인천-마닐라 구간도 대한항공과 함께 운항한다.
◇새 비행기 도입 계약 시점에 '주목'
조양호 회장의 별세 후 벌어지고 있는 가족간의 경영권 분쟁은 델타항공 입장에서는 상당한 호재가 될 수밖에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는 투자회수(엑시트) 측면에서의 이득이 아닌 대한항공과 한진그룹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것이 많다는 뜻이다. 실제 델타항공이 오는 3월 주주총회에서 기존 경영진의 편에 선다는 가정하에 조원태 회장 역시 델타항공에 모종의 유인책을 제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계는 지난해 6월 델타항공의 지분투자 시점과 대한항공의 B787 신규 도입 계약 체결 시점이 겹친 것을 두고 둘 사이의 상당한 연관성이 존재한다는 시각을 내비친다. 이는 델타항공과 대한항공의 기령차이, 그리고 조원태 회장이 처한 상황이 그 배경에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말 기준 대한항공의 여객기 평균 기령은 10년 안팎으로 추산된다. 일부 노후기종을 화물기로 바꾸는 작업을 지속하는데다 향후 신규 기종의 인도가 계속되면 대한항공의 평균 기령은 다시 10년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델타항공의 경우 지난해 9월 기준 평균 기령이 15년에 달한다. 태평양 횡단노선에서 경쟁사를 제치기 위해서는 신기재 도입을 통한 고객 서비스 향상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JV는 항공사간 동맹의 최고 격이다. 공동영업과 공동운항 등 사실상 한 몸인 것이나 마찬가지로 운영되는 점을 고려하면, 델타항공은 대한항공의 이름을 빌려 787 비행기 절반씩을 산 것이나 다름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IB업계 관계자는 “이미 부채비율 개선 압박을 받던 대한항공이 787 기종의 도입을 결정한 것을 무리수로 평가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며 “조원태 회장 입장에서 델타항공으로부터의 확실한 지지를 얻어내고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당근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델타항공이 KCGI와 주주간 서한을 주고받으며 어느 편도 아니라는 입장을 밝힌 것 역시 지속적으로 조원태 회장과 대한항공에게 모종의 요구를 지속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델타항공이 이번 주총에서 조원태 회장을 지지할 것이 확실시되지만 그 뒤에 날아올 청구서를 어떻게 감당할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무리한 우군 확보, 경영 부담 초래 가능성 지적도
업계에서는 델타항공이 조원태 회장에 대한 지지를 약속하고, 조원태 회장이 JV 파트너 델타항공에 새 비행기 도입을 약속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다. 당장 이번 주주총회가 한진그룹의 경영권 분쟁에 있어 최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조원태 회장이 지난해 미리 던진 승부수가 이번 주총에서 힘을 발휘할지 여부에도 관심이 모인다.
그러나 대한항공의 기령이 이미 낮은 편이고 부채비율도 상당하다는 점에서 향후에도 B787 도입은 KCGI 등 주주들에게 새로운 공격 여지를 줄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조현아 전 부사장과 KCGI·반도건설이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우군 델타항공을 위한 무리한 신기종 도입 움직임은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의 명분으로 작용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은 1000%에 육박한다. 향후 회계기준의 변화로 운용리스 계약이 부채로 완전히 계상되면 대한항공의 부채비율이 더 상승한다. 지난해 787 도입계약 역시 금리가 높지 않은 수준의 리스계약이었다 하더라도, 별도의 재무개선 노력이 없다면 부채비율은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350명 가량을 수송할 수 있는 중형기 A350-900를 인천에 취항하는 델타항공과는 달리 대한항공은 최대 800명까지 수송할 수 있는 세계 최대 여객기 A380을 뉴욕과 LA 등에 취항하고 있다. 노선망 역시 대한항공이 10곳의 인천발 미국행 항공편을 취항하고 있지만, 델타항공은 미국발 인천행 노선이 3개에 불과하다. 좌석 공급 측면에서 대한항공이 더 많은 품을 들이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델타항공 역시 새로 도입한 기종들을 투입하고 있으나 태평양 횡단노선에서 대형기를 통한 대도시 좌석공급은 상당수 대한항공이 담당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JV 성과에 대한 공정한 평가와 함께 계약사항 및 운영상 불리한 요소가 있다면 고쳐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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