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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약품, 신용도 발목 잡는 'L/O 변동성' [Earnings & Credit]영업익 개선, 커버리지지표 방어 '역부족'…매출 20% 연구개발비, 회수 요원

양정우 기자공개 2020-03-02 14:18:46

이 기사는 2020년 02월 28일 16:1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올해 한미약품의 신용등급(A+, 부정적) 사수가 위태롭다. 지난해 호실적을 거뒀지만 후퇴한 부채상환능력을 지지하기엔 역부족이다. 기존 전문의약품 사업의 견고한 수익 창출력을 입증했으나 신약 개발을 둘러싼 크레딧 리스크를 잠재우기 어렵다.

무엇보다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비(R&D)에 연간 2000억원을 투입하고 있다. 근래 들어 대규모 설비투자(CAPEX)까지 단행한 탓에 차입 조달이 빠르게 늘어났다. 단번에 악화된 커버리지지표를 감안할 때 전문의약품 사업만으론 빚 부담을 해소하기가 만만치 않다. 결국 투자가 집중되는 신약 개발 영역에서 투입 재원에 비례한 투자 회수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신약 개발은 어느 산업보다도 투자 회수의 가능성이 떨어진다. 국내 선두 주자로서 초대형 기술수출(L/O)을 터뜨린 한미약품조차도 기술 반환이 줄을 잇는 시련을 겪고 있다. L/O의 이력이 에쿼티(Equity)의 가격을 지탱할 수 있어도 L/O의 변동성은 신용도의 발목을 잡고 있다.

◇영업익 호실적, 전문의약 사업 성장세…커버리지지표, 하향 트리거 '껑충'

한미약품은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으로 각각 1조1136억원, 1039억원을 거뒀다. 전년과 비교해 각각 9.6%, 24.3% 늘어난 호실적이다. 로수젯(고지혈증)과 에소메졸(역류성 식도염) 등 개량 신약의 매출 비중이 높아지면서 수익 구조가 개선된 덕분이다.

개량 신약과 복합 신약이 주를 이루는 전문의약품 사업은 수익 창출력이 견고하다. 로수젯과 에소메졸뿐 아니라 아모잘탄(고혈압), 아모디핀(고혈압), 한미플루(독감) 등 연 매출 100억원 규모의 대형 품목이 10여 개에 달한다. 특정 제품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높지 않아 제품 포트폴리오가 우수한 것도 강점이다. 전문의약품 사업의 연간 매출액은 꾸준히 성장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커버리지지표(총차입금/EBITDA)를 놓고 보면 영업이익(EBIT) 규모가 차입 부담을 지탱하기에 부족하다. 국내 신용평가업계는 한미약품의 등급하향 트리거로 연결기준 총차입금/EBITDA가 2.5배를 초과할 경우를 제시하고 있다. 수년 전부터 이미 2.5배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다. 크레딧업계에선 지난해 총차입금/EBITDA(추정 8500억원/1500억원)가 5배를 넘어섰을 것으로 내다본다.

물론 신용도 평정엔 종합적 판단이 필요하지만 커버리지지표의 악화 수준이 지나치게 과도하다는 평가다. 다른 등급하향 트리거(해외 임상연구 관련 자금부담 확대, 기술이전 마일스톤 수수료 유입 차질 등)도 점검 사안이지만 '부정적' 아웃룩이 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막중한 R&D 비용, 수익성 제약…L/O 변동성에 외부 차입 '급증'

한미약품의 빚 부담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2015년부터 베링거인겔하임, 사노피, 얀센 등 글로벌 빅파마를 상대로 L/O 대박을 터뜨린 기업답게 R&D 비용 부담에 상시적으로 노출돼 있다. 2014년 이후 연간 연구개발비로 1500억~2000억원을 투입해 왔다.

매출 볼륨을 고려할 때 R&D 비용은 매출액의 20%에 육박한다. 바이오 벤처를 제외할 경우 신약 개발에 유독 적극적으로 지출을 감행하고 있다. 연 2000억원 연구개발비로 수익성이 제한되더라도 신약 개발로 '퀀텀점프'를 한다는 공격적 경영 전략을 선택했다.

문제는 투자 회수다. 번 돈의 상당량을 R&D 비용으로 쓰는 데 언제쯤 성과를 낼지 종잡기가 어렵다. 구체적 임상 스케줄이 잡혀있어도 신약 개발의 영역에서 돌발 변수가 많다. 신약이 가져올 잭팟 수익의 크기만큼 신약 개발의 실패 리스크도 크다. 글로벌 제약사와 조 단위 L/O를 체결했더라도 기술 반환이 빈번한 게 이 업계다.

이런 신약 개발의 불확실성은 결국 차입 조달 행보로 이어졌다. 대규모 R&D 비용이 수익을 제약하는 가운데 사노피 L/O가 계약금 반환(2017~2018년 합산 2400억원 안팎)으로 결론이 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당시 잇딴 L/O 릴레이에 평택 바이오플랜트를 중심으로 연간 2000억원 수준의 설비투자를 감행해 왔다. 영업현금흐름으로 감당할 수 없는 자금 지출이 누적되니 외부 조달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2016년 말 20억원에 불과했던 순차입금은 지난해 3분기 말 7500억원 수준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잉여현금흐름은 2017~2018년 연간 마이너스 1900억~3300억원 수준으로 집계됐다. 지난해도 기존 설비투자의 영향으로 현금흐름상 자금 부족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3분기 누적 기준 잉여현금흐름은 마이너스 1731억원을 기록했다.


◇대규모 CAPEX 일단락, 차입 감축 미지수…신약 개발 불확실성 여전

올해부터 평택 바이오플랜트를 비롯한 대규모 CAPEX 부담은 사라질 예정이다. 하지만 곧장 대규모 잉여현금흐름을 창출해 차입 규모를 줄여나갈지는 미지수다. 연간 영업현금흐름의 볼륨을 감안할 때 한동안 총차입금/EBITDA 지표가 등급하향 수준을 벗어나는 게 쉽지 않다.

더구나 L/O의 높은 변동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근래 들어 이어졌던 기술 반환 사례처럼 향후 주요 파이프라인에서 차질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임상 진행과 허가 절차, 신약 시판 등 전 과정에서 현금 창출에 이르기까지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 국내 신용평가업계도 다른 산업과 다르게 많은 정성 요건을 등급변동 트리거로 제시하고 있다. 기술이전 프로젝트와 핵심 파이프라인의 순조로운 진행 등 L/O의 변동성을 낮추지 못할 경우 등급 하향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미약품은 수년 째 주요 신약 개발 프로젝트에서 차질을 입고 있다. △2016년 베링거인겔하임의 올무티닙 기술 반환 △사노피의 퀀텀프로젝트 계약 변경 △지난해 일라이 릴리의 'HM71224' 기술 반환 △얀센의 'HM12525A' 기술 반환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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