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채권단이 최대주주? 3자연합 입김 약해지나약정 미이행시 대한항공 대주주 순위 변동 가능성…"경영권 분쟁 고려"
유수진 기자공개 2020-06-01 08:07:41
이 기사는 2020년 05월 28일 16:2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대한항공 지분 보유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의 판도가 어떻게 바뀔지 주목된다.채권단은 최근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한 대한항공 지원책을 내놓으면서 약정 미이행시 한진칼을 밀어내고 최대주주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해뒀다.
일단 재계에서는 채권단이 적극적인 자구안 이행을 촉구하고자 설치한 '압박용 조치'로 이해하고 있다. 기한 내 약속된 내용이 완수되기만 하면 한진칼의 최대주주 지위 박탈을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화 여부와 별개로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경영권 분쟁 당사자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항공은 최근 산업은행 및 수출입은행과 1조2000억원의 유동성 지원과 관련한 특별약정을 체결했다. 비밀유지 조건이 걸려있어 세부 내용이 외부에 공개되지는 않았다. 다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대한항공이 유상증자(1조원)와 자산매각 등 자구노력(1조원)을 통해 내년 말까지 총 2조원의 자금을 마련하는 게 골자다.
채권단은 국민의 혈세로 대기업에 특혜를 준다는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당초 업계의 예상보다 많은 2조원의 자구안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이 현재 추진 중인 송현동 부지 및 왕산레저개발 지분 매각 등도 자구안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구안 이행을 전제로 채권단은 △운영자금 대출(2000억원) △자산유동화증권 인수(7000억원) △영구채 인수(3000억원)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특히 채권단은 대한항공이 반드시 약정을 이행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별도의 조항도 추가했다. 기한 내 자구안을 이행하지 못하면 한진칼이 대한항공 유상증자에 참여해 취득할 예정인 신주(3000억원 규모)를 담보로 받기로 했다. 대한항공이 보유하고 있는 한국공항 주식 188만5134주(59.54%) 전량은 이미 담보로 받고 근질권도 설정해뒀다.
채권단의 지분 보유가 가능해지는 시점은 내년 6월22일 이후다. 대한항공이 다음달 산은과 수은을 상대로 발행할 3000억원의 전환사채(CB)를 이때부터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채권단은 대한항공 주식을 전혀 갖고 있지 않지만 전환권을 행사하면 지분 8.27%(1570만6806주)를 쥔 주요주주가 된다. 특히 전환권 행사시 채권단 몫의 주식을 새로 발행하기 때문에 기존주주인 한진칼의 지분율은 27.48%로 희석된다.
최대주주 지위에 오를 가능성이 생기는 건 약정 기한이 끝나는 2022년 1월이다. 물론 대한항공이 자구안을 이행하지 못했을 경우에 한한다. 한진칼 보유 주식 2377만9196주(12.52%)에 대해 담보권을 행사하면 지분율이 20.79%로 높아진다. 담보권 행사는 사실상 채권단이 한진칼의 보유주식을 뺏어오는 셈이여서 한진칼 지분율은 14.96%로 낮아진다.
특히 산은이 기간산업안정기금으로 대한항공을 추가지원할 경우 지분율이 더욱 높아질 수도 있다. 항공사의 경우 자본확충으로 부채비율을 낮춰주기 위해 주식 전환이 가능한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의 형태로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물론 채권단이 대한항공의 최대주주가 되는 건 아무리 일러도 2022년 이후에나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다. 그것도 사실상 가능성이 희박하다. 한진그룹이 한진칼의 최대주주 지위를 지키기 위해 최대한 자구안 이행을 완수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채권단이 직접 유휴자산 매각 등 대한항공의 재무구조 개선에 관여하기 시작한 이상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의 한 축인 3자연합(KCGI, 조현아, 반도건설)의 입김이 지금보다 약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진그룹이 채권단 주도 하에서 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진행하는 것처럼 비춰지며 3자연합의 존재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사실 대한항공이 자구안에 담은 송현동 부지 매각 등은 KCGI가 2018년 말 처음 시장에 등장했을 당시부터 강조해오던 내용이다. 대한항공의 높은 부채비율 등을 비판할 때 주로 활용하던 공격포인트이기도 하다. KCGI는 여전히 한진그룹이 마련한 자구안에 대해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뒤늦게 채권단이 압박을 시작하며 사실상 주도권을 빼앗겼다. 대한항공의 재무구조 개선 이슈를 선점하고도 정작 아무런 소득을 거두지 못한 셈이다. 되려 앞으로 조 회장에게 경영위기에 대한 책임을 물으며 퇴진을 요구할 명분만 잃었다. 오는 7월 이후 임시 주주총회를 소집해 보유지분율로 승부를 보는 것 외에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
한 재계 관계자는 "최근 3자연합이 한진칼에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하라는 내용 등이 담긴 내용증명을 보내는 등 계속 존재감을 과시하려 하지만 채권단의 개입으로 다소 난처한 입장에 놓였다"며 "채권단이 대한항공 지분을 보유하려 하는 이유 중에는 경영권 분쟁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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