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0년 12월 03일 08:2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어느 분야에서건 선구자들은 존중받는다. 그 결과가 좋을 경우 존중은 존경이 된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은 세상에 없던 가치를 쫓아 세상을 바꿨다. 국내로 범위를 한정지으면 전자제품의 삼성도 이에 해당한다. LG 역시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선도자가 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ESG 분야에서 선도자가 되려는 기업집단이 있다. SK그룹이다. 특히 ESG 등급 중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지배구조(G) 분야에서 독특한 모습을 보인다. 돈을 버는 사업 내용과는 맥이 다르지만 돈을 버는 근간인 회사의 구조를 설정하는 데에서 다른 그룹과 차별점을 두려 자발적으로 노력한다. 전통적 '오너 기업'의 모습에서 탈피해 독립성을 갖춘 이사회 중심 경영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아무리 그래도 오너 CEO가 있는 기업인데 이사회 독립성이 얼마나 갖춰지겠냐는 지적도 있다. 타당한 말이다. SK그룹 지주사인 SK㈜는 국내에서 가장 독립적인 이사회를 갖췄다고 평가받지만 그렇다고 이사회가 대표이사인 최태원 회장을 해임시킬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대부분 부정적인 의견을 갖는다.
다만 오너 기업 스스로 독립적 이사회를 갖추려는 노력 역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1인에 집중된 권력을 여러 명에게 분산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사회 경영은 그간 제왕적 역할을 해왔던 오너에게 '권력 포기'를 요구한다. 최 회장은 작년 초 의장직을 내려놓으면서 이를 실천했다.
시장의 평가는 화려하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이 부여한 2020년 지배구조 등급에서 A+를 받은 기업 9곳 중 3곳(SK㈜·SK네트웍스·SK텔레콤)이 SK그룹이다. 오너가 직접 이사회에 힘을 실어주면서 사외이사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경영진이 결정한 주요 경영사안에 언제든 제동을 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고 평가받는다.
물론 이와 같은 경영 구조가 정답은 아니다. 기업 전망의 대세를 바꾸는 것은 여전히 1인의 오너라는 지적도 많다. 어설프게 대세를 쫓느니 차라리 1인이 확실한 책임 경영을 펼치는 것이 기업가치 제고에 효과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심지어 SK 역시 현재의 SK를 만든 것은 최 회장 1인의 의지가 강력히 반영된 하이닉스 인수라는 평가도 여전하다.
그럼에도 SK가 투명한 이사회 경영 형태를 지향하고 표방하는 이유는 뭘까. SK 역시 언제까지나 최 회장의 시대가 이어질 수 없다. 후대로 내려갈수록 최씨 집안의 그룹 영향력은 약해질 확률이 높다. 투자자들 역시 구식 지배구조를 갖춘 기업에는 점점 시선을 떼고 있다.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최 회장의 결단이 이사회 중심의 ESG 경영이 아니었을까. 현재의 ESG 흐름이 주류가 될 향후 5년, 10년 뒤 SK의 모습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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