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1년 02월 01일 09:1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LG그룹은 전통적으로 재무통을 중용해왔다. ㈜LG가 지금의 모습을 갖춘 2005년 이후 지금까지 2008~2012년을 제외하고는 사내이사 3자리 가운데 하나는 재무팀장의 몫이었다.

이는 LG그룹 계열사 전반에도 영향을 미쳤다. LG전자, LG화학, LG디스플레이, LG생활건강, LG유플러스 등 주요 계열사 이사회에 CFO(최고재무책임자)가 한 명씩 꼭 포함돼 있다.

CFO를 중용하는 분위기는 양날의 검이 됐다. 경제가 어려울 때 위기관리 측면에선 긍정적 영향을 미쳤지만 LG그룹이 몇 년 전까지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소극적 태도를 보인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도 있다.

앞으로는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CFO들이 그동안 재무 안정성을 관리하는 역할을 주로 했다면 이제 M&A나 사업 철수 등 LG그룹 전반의 사업구조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중책을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

◇㈜LG 재경팀장, 요직으로 가는 코스

㈜LG 재경팀장은 요직으로 가는 코스로 통한다. 지주사에 몸담으면서 그룹의 자금 흐름을 들여다봤고 이사회에 몸담으면서 주요 의사결정에도 관여했기 때문이다.


㈜LG 이사회가 지금처럼 대표이사 회장, COO(최고운영책임자), 재경팀장으로 구성되기 시작한 건 2005년이다. 그 뒤로 재경팀장을 거친 인물들은 모두 4명이다. 정도현 전 재경팀장, 이혁주 전 재경팀장, 김홍기 전 재경팀장, 그리고 현재의 하범종 재경팀장(사진)이다.

이들 대부분은 LG전자를 비롯해 주력 계열사 CFO 및 CEO를 지내면서 입지를 탄탄히 다지고 있다. 4명 가운데 3명이 서울대 출신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그만큼 정통적으로 ‘엘리트 코스’로 통한다는 방증이다.

2019년 말 LG그룹을 떠난 정도현 전 재경팀장은 LG그룹 재무의 상징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재무 분야에서만 30년 넘게 몸담았다. 1957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2004년부터 ㈜LG 재경팀장으로 재직하기 시작해 2005년 이사회에 합류했다.

그 뒤 2008년 LG전자 부사장에 임명돼 2019년 말까지 11년 동안 LG전자의 재무관리를 총괄했고 대표이사 사장까지 지냈다.

그는 기획조정실부터 재무팀, 구조조정본부 등 경영관리 능력이 필요한 곳마다 투입돼 확실한 성과를 내왔다. 특히 GS그룹 분리를 전후해 재경팀장으로 재직하면서 ㈜LG의 재무구조체계를 확립했다.

이혁주 전 재경팀장과 김홍기 전 재경팀장은 현재 계열사 CFO로 재직 중이다. 이혁주 전 팀장은 LG유플러스 CFO(부사장)다. 2013~2014년 ㈜LG 재경팀장을 지낸 뒤 2015년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LG유플러스 CFO에 올랐다. 1962년생으로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경제연구원으로 LG그룹에 입사했다.

통신업은 내수 위주인 만큼 매출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어 비용 관리가 중요한 업종으로 꼽힌다. 이 부사장은 5년 이상 LG유플러스 CFO를 지내면서 시의 적절하게 비용을 통제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홍기 전 팀장은 LG생활건강에 몸담고 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취임한 2018년 말 LG생활건강으로 이동해 지금까지 CFO(부사장)로 근무 중이다. 1962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LG화학, LG하우시스 등에서 근무하다 2016년 ㈜LG로 부름을 받았다.

당시 작은 계열사에서 ㈜LG 재경팀장으로 발탁된 점을 놓고 그만큼 대내외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LG에서는 구광모 회장이 ㈜LG 지분을 상속받는 일련의 승계 과정에서 역량을 발휘했다.

LG생활건강으로 이동한 뒤에는 LG생활건강의 기나긴 M&A 역사에서도 큰 규모를 자랑하는 미국 뉴에이본 인수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앞으로 차석용 대표이사 부회장의 뒤를 이을 인물로 꼽히기도 한다.

하범종 부사장은 구광모 체제 ㈜LG의 첫 CFO로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인물이다. LG화학에 입사해 줄곧 재무 분야에서 근무하며 관련 전문성을 쌓아왔다. 2015년 ㈜LG로 이동해 재무담당임원으로 있다가 2018년 말 CFO로 발탁됐다. 1968년생으로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LG그룹 주력 계열사도 모두 CFO가 이사회 멤버

㈜LG의 재무통 중용은 LG그룹 계열사 이사회 구성에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 됐다. 주요 계열사 대부분이 사내이사는 2명으로 최소화하면서도 CFO를 꼭 포함시켰다.

LG전자는 현재 2명의 사내이사 가운데 한 명이 배두용 CFO(부사장)다. 배 부사장 이전에는 정도현 전 대표이사 사장이 있었다.

LG화학도 마찬가지다. LG화학의 역대 사내이사진을 살펴보면 2012~2014년을 제외하고는 CFO가 한 자리씩 차지해왔다. 현재 LG화학은 대표이사인 신학철 부회장과 함께 차동석 CFO(부사장)가 사내이사진을 구성하고 있다. 차 부사장 이전에는 정호영 사장, 조석제 사장 등이 CFO로서 이사회 멤버로 참여했다.

LG생활건강 사내이사진에도 차석용 대표이사 부회장과 함께 김홍기 CFO가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LG유플러스 이사회에도 2명의 사내이사 가운데 한 명이 이혁주 CFO다. 이 2명은 모두 ㈜LG 재경팀장 출신이기도 하다.

그룹의 주요 경영진 가운데 CFO 출신도 많다. 권영수 ㈜LG 부회장이 대표적이다. 정호영 LG디스플레이 대표이사 사장도 손꼽히는 재무통이다. 그는 LG전자, LG디스플레이, LG생활건강, LG화학 등 4개 계열사의 재무라인을 거쳤다. 구광모 회장 역시 처음 LG전자에 재경부문 금융팀 대리로 입사했다.


◇LG그룹의 재무통 중용 기조, 어디서 출발했나

LG그룹에서 재무통의 입지가 굳건해질 이유는 뭘까. 우선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의 경영 스타일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구 전 회장은 각 계열사 대표들의 의사결정에 일일히 간섭하지 않고 그룹의 큰 방향 등만 결정하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경영방식은 CEO가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CFO의 역할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주력 계열사 CFO들이 각 계열사에서만 몸담지 않고 ㈜LG를 거친 뒤 계열사 CFO로 임명됐다는 사실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들에게 지주사와 계열사 사이의 소통창구 역할도 함께 주어졌다는 의미다.

과거 허씨 일가와 독립하기 전의 전통적 경영방식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GS그룹과 결별하기 전까지 허씨 일가는 재무와 경리 쪽을 도맡아 왔고 경영상 중요한 결정은 구씨 일가가 책임졌다. 두 집안은 처음 동업을 시작할 때부터 역할 분담이 확실했다. 이 전통은 GS그룹이 독립할 때까지 이어졌다.

실제 허창수 전 GS그룹 회장을 비롯해 허씨 일가에는 재무에 밝은 인물이 많다. 허태수 GS그룹 회장은 아예 금융인 출신이다. 콘티넨털은행, 어빙은행 등 외국계 은행에서 근무했고 LG증권에도 몸담았다.

2005년 허씨 일가가 GS그룹으로 독립하면서 재무를 책임질 전문경영인이 중요해졌고 그 뒤 LG그룹에서 재무통 전문경영인들이 활약하게 됐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