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 탈정유 로드맵]키워드는 친환경·플랫폼…고민 큰 SK에너지석유화학·수소 사업 확장은 제한적, 구체적인 계획 발표 '아직'
김위수 기자공개 2022-08-01 07:46:38
[편집자주]
화석연료 시대의 종말이 다가오면서 원유를 수입, 정제해 판매해온 정유사들이 출구전략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확대된 유가 변동성과 횡재세 부과 가능성 등은 정유업의 탈정유 행보에 속도를 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정유사들이 점찍은 신사업은 주로 주유소를 활용한 거점 사업이나 석유화학, 친환경 에너지 사업 등이다. 더벨은 국내 정유사들의 탈정유 로드맵을 분석해봤다.
이 기사는 2022년 07월 29일 08:0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SK그룹에서 정유업을 담당하는 SK에너지는 전체 매출에서 정유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00%에 가깝다. 일찌감치 석유화학 사업에 진출해 매출 다변화를 시도한 국내 다른 정유사들에 비해 사업 확장이 더딘 모습이다.GS칼텍스·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 등 정유사들이 미래 에너지 사업으로 바라보는 수소 사업에도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상용차용 수소연료공급시설 구축을 위한 특수목적법인(SPC)에 9억5000억원을 투자해 지분 약 9%를 확보하기는 했다. 향후 주유소에 수소차 충전시설도 갖출 예정이다. 하지만 직접적인 수소 생산이나 발전은 하겠다는 계획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SK에너지도 나름의 사정이 있다. 같은 SK이노베이션 계열사인 SK지오센트릭(옛 SK종합화학)이 석유화학 계열사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수소 사업은 그룹 차원에서 밸류체인 구축에 나선다는 계획인데, 중심이 되는 계열사는 SK E&S다.
정유사들이 사업 다변화를 위해 선택하는 수소, 석유화학 사업 진출이 막혀있다 보니 선택지가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SK에너지는 아직 미래 사업에 대한 뚜렷한 계획을 발표하지 않았다. 목표 시점과 투자금액 등 구체적인 숫자를 들어 파이낸셜 스토리로 발표한 다른 SK그룹 계열사와 다른 모습이다.
드러난 사실은 SK에너지가 미래 사업으로 친환경, 플랫폼을 제시하고 이를 추진하기 위해 R&S(Refinery&Synergy)와 P&M(Platform&Marketing) 등 두 개의 사내독립기업(CIC)을 설립했다는 사실이다.
R&S는 기존 사업을 친환경적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조직으로 보인다. 정제설비의 에너지 효율성을 개선하고, 원료를 친환경 액화천연가스(LNG)로 전면 교체하는 작업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친환경 제품 판매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2030년 이내에 국내 도로용 아스팔트의 100%를 친환경 제품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 대표적이다.
에너지 슈퍼스테이션 전환은 규제가 얽혀있어 사업 추진에 어려움이 있다. 위험물안전관리법에 따르면 연료전지는 주유소와 LPG 충전소 내에 설치할 수 없고 전기사업법은 발전사업자가 전기판매업을 겸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SK에너지는 규제 샌드박스로 실증특례를 받아 에너지 슈퍼스테이션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서울 금천구 SK박미주유소를 에너지 슈퍼스테이션으로 개소한 뒤 추가적인 거점 구축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에너지는 규제가 완화되면 2030년 전국 3000여개의 주유소를 모두 에너지 슈퍼스테이션으로 탈바꿈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개인택시·상용차 등을 고객으로 하는 친환경차 관련 플랫폼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밖에도 SK에너지는 미국에 법인을 설립해 에너지솔루션 사업 투자에 나설 계획이다.
SK에너지는 예정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얼마가 필요할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별도법인 기준 3개년 평균 SK에너지의 유·무형자산 취득액은 5585억원으로 나타났다. 신사업에 대한 투자가 발생할 경우 이와 비슷하거나 더 높은 수준의 지출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올 1분기 SK에너지의 매출은 10조3920억원, 영업이익은 1조1897억원으로 나타났다. 정유업의 호조로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02%, 영업이익은 323% 늘었다. 정유업계에서는 향후 수년간 정유업의 마진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른 나라의 정유업체들이 공장을 폐쇄한 데 반해 신규 투자는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SK이노베이션에 배당을 재개해야 한다면 재무적인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SK에너지는 SK지오센트릭(옛 SK종합화학)과 더불어 SK이노베이션의 현금 창출구로 꼽혀왔다. 정유업의 시황이 좋을 때는 1조원이 넘는 금액을 SK이노베이션에 배당했을 정도였다.
2020년 1조9361억원의 대규모 적자를 낸 이후로는 배당을 하고 있지 않지만 올해나 내년 중에는 배당을 재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SK이노베이션 측은 "올해 자회사의 배당은 연간 실적 등을 고려해 향후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국기업평가는 "유가 및 정제마진 변동에 따라 영업현금창출규모가 추정에 미달하거나 투자 및 배당부담이 확대될 경우 재무안정성이 재차 저하될 수 있어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먼 미래의 일이기는 하겠지만, 사업 전환을 완전히 이룬 뒤 정유업 수준의 이익이 발생할지는 미지수다. 친환경차 전환이 진행됨에 따라 SK이노베이션 계열사 내에서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담당하는 계열사 SK온의 역할이 부각되고 SK에너지의 역할은 축소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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