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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은 지금]포스코 대항마였던 현대제철은 왜 힘이 빠졌을까①계열사 물량으로 손쉽게 사세 확장…포스코와는 '경쟁' 아닌 '공조' 선택

조은아 기자공개 2023-10-17 07:36:48

[편집자주]

최근 몇 년 철강업계의 화두는 단연 '변신'이다. 더이상 고속 성장이 담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변신은 성장을 위한 필수가 됐다. 현대제철은 이런 흐름과 다소 동떨어져 있는 모양새다. 현대차그룹에 속해있고 그룹의 주력이 자동차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태생적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던 건 아니다. 2020년 시작된 사업 재편은 어느덧 마무리를 향해 가고 있다. 더벨이 현대제철의 조용한 변신을 조명해 본다.

이 기사는 2023년 10월 12일 10:5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현대제철은 2010년 일관제철소를 준공했다. '쇳물에서 자동차까지'로 대표되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숙원이었다.

당시만 해도 현대제철은 현대차그룹 소재 독립의 첨병이자 철강업계 독점을 깰 포스코의 대항마로 주목받았다. 많은 철강 전문가들이 현대제철의 부상과 포스코의 위기를 예견했다. 현대차와 기아를 거느린 현대차그룹의 수직계열화를 생각하면 포스코의 위기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현재로선 경쟁을 촉발한 현대제철보다 경쟁에서 위기로 몰렸던 포스코가 과실을 더 챙기고 있는 모양새다. 업계는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보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힘, 손쉬웠던 시장 안착

현대제철의 역사는 정몽구 명예회장의 '뚝심경영'을 그대로 보여준다. 1978년 현대제철(인천제철)을 인수했을 때부터 일관제철소 건립은 정 명예회장의 숙원이었다. 2010년 일관제철소가 준공되며 마침내 염원을 풀었다.

철강업계 안팎에선 오랜 독점이 깨지고 명실상부한 경쟁구도로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전까지 국내에 일관제철소를 갖춘 곳은 포스코가 유일했다. 포스코의 철강재 물량을 얼마나 공급받느냐에 따라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이 달라질 만큼 포스코는 산업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포스코 대항마의 등장은 국내 산업계 전반이 바라던 일이기도 했다.

현대제철은 이후 빠른 성장을 이어갔다. 2010년 매출 10조원대로 올라선 데 이어 이듬해에는 매출 15조원을 돌파했다. 현대제철은 초창기 대부분의 자동차 강판을 현대차와 기아에 납품했다. 지금도 80% 이상이 현대차와 기아로 간다. 현대건설도 빼놓을 수 없다. 현대건설은 기존에 현대제철과 동국제강 물량을 사용했는데 현대차그룹에 편입된 2011년 이후 현대제철 물량을 늘렸다.

쉽게 매출을 늘릴 수 있었던 만큼 성장을 위한 고민은 자연스럽게 적을 수밖에 없었다. 위기의식을 느낄 새도, 채찍질이 필요할 새도 없었다. 철강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제철은 2000년대 이후 연간 기준으로 적자를 낸 적이 한번도 없고 계열사 물량에 힘입어 다른 철강회사들보다 쉽게 성장한 측면이 있다"며 "포스코가 오히려 현대제철의 고로 진입 이후 위기를 느끼면서 변신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2010년 1월 5일 현대제철 당진 일관제철소 고로 공장 화입식 당시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

◇포스코와 공조 분위기 더해준 안동일 체제

안동일 사장은 2019년 현대제철 대표이사에 올랐다. 이후 안 사장의 단독대표 체제가 5년째 이어지고 있다.

안 사장의 대표 선임은 여러 면에서 의미하는 바가 컸다. 우선 포스포 출신으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부담을 무릅쓰고 경쟁사에서 데려온 인물이다. 현대제철은 2000년대 이후 계속 2명의 각자대표 체제를 유지했는데 안 사장은 단독대표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 마음껏 경영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정의선 회장이 포스코 출신을 대표로 영입한 이유를 두고 포스코의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해서란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안 사장 이전까지 현대제철 대표는 철강 전문성이 떨어지는 현대차 출신이 주로 맡아왔다. 자동차 강판 등 고급재 시장에서는 포스코가 현대제철보다 훨씬 우위에 있던 만큼 안 사장이 포스코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현대제철에 이식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안 사장은 포스코에서 35년 가까이 근무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상황을 그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다. 경영에도 이같은 점이 반영됐다. 포스코와 '경쟁'하기보다는 '공조'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매년 이뤄지는 조선업계와 철강업계의 후판 가격 협상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철강업계와 조선업계는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 두 차례 후판 가격을 놓고 줄다리기 협상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포스코가 먼저 협상을 끝내면 현대제철은 포스코와의 차별성을 내세우기보다는 포스코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최근 들어 제살 깎아먹기식의 '치킨게임'을 지양하는 분위기가 업계에 널리 퍼져 있고 필요할 땐 경쟁자와 손잡는 걸 나쁘게 볼 수만은 없다"면서도 "하지만 산업계 전반에서 현대제철에게 기대했던 역할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포스코 출신이 대표로 오다보니 아무래도 이런 기조가 더 강해진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이같은 현대제철의 전략에는 정의선 회장의 의중이 가장 크게 반영됐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몇 년 사이 현대차그룹의 지향점은 명확하다.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과 미래항공모빌리티(AAM), 로보틱스 등을 아우르는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선 철강재 조달의 중요성이 예전만 못한 만큼 정 회장이 철강업 자체에 큰 관심이 없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또다른 철강업계 관계자는 "과거 현대제철이 그룹에서 '메이저' 계열사로 통했지만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어느 정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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