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10월 13일 07시57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사명감으로 어필하는 시대는 지났어요.”최근 투자업계 중견급 관계자와 만난 자리였다. 베테랑 운용역인 그는 대화 도중 정부 산하 금융기관들을 두고 입을 열었다. 국민연금공단, 산업은행, 한국투자공사(KIC) 등은 외부에서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곳이다. 기관투자자(LP)로서 투자업계 내 존재감 역시 막강한 플레이어들이다.
그는 “현재 처우 조건으로는 민간의 실력 있는 인재를 채용하기가 무척 어렵다”며 “몸값을 한껏 낮춰야 하는데다 공조직 특유 문화도 감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원자로선 여러 불리함을 감내해야 한다"며 “예전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사명감이라도 남았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잘 먹히지 않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사견이 붙은 코멘트였지만 그의 말을 듣고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 정부 산하 금융기관들은 인력난으로 애를 먹고 있다. 안정적인 고용과 넉넉한 급여로 여러 직장인들에게 선망 대상으로 지목되곤 한다. 그런데 이들의 인력 이탈은 국정감사 등에서 수차례 거론되던 사안이다.
얼마 전 ‘대한민국 국부펀드’ KIC는 사모투자(PE) 투자를 담당할 경력직을 충원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끝내 적임자를 찾지 못했다. 국부펀드인 만큼 실력 있는 인재를 엄선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단지 적임자가 나타나지 않아 발생한 일회성 이슈이길 바라본다.
현장에서 만난 '신의 직장인'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내놓을 때가 많았다. 지방 이전에 대한 우려, 성장 의욕을 꺾는 내부 분위기, 잦은 순환근무에서 오는 무력감 등이 소환된다. 민간 금융사들의 연봉 수준이 크게 상승한 것도 이유일 것이다.
임직원 개개인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은 아니다. 주목할 것은 국민 자산을 운용하고 관리해야 할 기관들의 핵심 역량이다. 실력 있는 구성원들이 꾸준히 충원되고 유지돼야 하는 이유다. 그 역량이 무너진다면 당장 내 삶에도 직접적인 영향이 미친다.
한 예로 국민연금은 국민 노후의 큰 축을 지탱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자산운용 성과는 연금 지속성으로 이어진다. 최고의 인재들이 머리를 맞대 최선의 성과를 내야 할 일이다.
안팎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부 산하 금융기관들의 핵심 역량에 금이 가는 조짐은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우수 인재들의 종착점이 아닌 이직하기 용이한 중간지점 정도로 간주되는 게 현실이라는 씁쓸한 평가도 들려온다.
직업 선택 자유가 보장된 사회다. 개인 선택을 비난하자는 게 아니다. 유관 기관들이 내부 인재를 지킬 환경을 만들고 실력 있는 외부 인사도 언제든 영입할 수 있는 조건부터 갖춰놓는 게 기본이다. 진정 '신의 직장'이라면 인재는 알아서 모인다. 눈치만 살피기엔 현장에서 들려오는 경고음이 심상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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