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04월 18일 07시10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IFRS 전환은 하고 계시죠? RCPS 평가손실 반영해도 일반트랙 상장 가능할까요?"감사보고서가 물밀듯 공시된 지난 한 달간 기업공개(IPO)를 준비하는 스타트업의 재무담당자에게 셀 수 없이 던진 질문이다. 기업의 본질과는 무관하지만 IPO의 방식이나 시기를 가를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에 묻지 않을 수 없다. 대다수의 담당자들은 불확실성이 크다며 난색을 표한다.
스타트업이 투자유치 과정에서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발행하는 건 어느덧 한국 모험자본 시장의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전환권과 상환권을 통해 투자자들의 위험 부담을 조금이나마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발행한 RCPS는 상장을 준비하며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을 적용할 때 문제가 된다. 일반기업회계기준(K-GAAP)에서와 달리 부채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매 회계기말마다 공정가치로 재평가되며 파생상품평가손익에도 지대한 영향을 준다.
기업이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수록 RCPS의 공정가치도 높아지기 때문에 기업이 인식해야하는 파생상품평가손실도 커지는 구조다. 모험자본 시장의 기대를 많이 받을수록 감당해야 하는 파생상품평가손실이 커지는 '성장의 역설'이 발생한다.
부채비율이 높아지는 문제는 상장을 앞두고 RCPS를 보통주로 전환해 해결할 수 있다. 전환이 이뤄진 회계연도의 감사보고서에서 모두 자본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은 대개 상장을 앞두고 주주와 협의를 거쳐 RCPS를 보통주로 전환한다.
문제는 손익계산서다. 회계연도 중에 보통주로 전환이 완료되더라도 그해 말 감사보고서까지는 평가손실이 기록된다. IPO를 앞둔 기업들에게서 유난히 큰 영업외손실이 발생하는 사례가 많은 이유다.
시장에선 이미 이같은 '회계적 착시'를 인정하고 있다. 재무나 회계 업무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기업을 분석해 투자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RCPS로 인해 발생한 파생상품평가손실이 기업의 펀더멘탈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심지어 상장 과정에서 주관사가 증권신고서에 적어내는 기업가치 산정방식에서도 이로 인한 일회성 손실을 제거한 '조정 당기순이익' 지표를 활용한다.
그럼에도 IPO를 준비하는 다수의 스타트업이 RCPS의 파생상품평가손실에 여전히 전전긍긍한다. 한국거래소의 상장요건 때문이다. 코스닥시장 상장요건 중 일반트랙이라고 불리는 수익성·매출액 요건은 '법인세차감전계속사업이익 발생'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RCPS로 인한 일회성 파생상품평가손실이 고스란히 반영된다.
법인세차감전순익이 발생하지 않으면 일반트랙으로 상장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다. 예상보다 큰 RCPS의 평가손실이 발생해 법인세차감전순손실을 기록하면 영업이익이 흑자를 기록하는 기업이라도 울며겨자먹기로 '이익미실현특례'라는 꼬리표를 감수하거나 상장을 한 해 미뤄야 한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기업들이 들이는 비용도 상당하다. 평가손실을 미리 예측하기 위해 별도의 용역을 두는 일은 다반사다. 평가손실이 만들 불확실성이 두려워 좋은 프리IPO 투자제안을 고사한 기업도 있다. '숫자 맞추기'를 위해 불필요한 비용을 쓰고 성장에 브레이크를 밟는 셈이다.
국제적 약속인 IFRS 규정을 바꾸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RCPS의 착시를 감안해 거래소의 상장요건을 바꾸는 것만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다. 금융당국과 거래소는 누구보다 파생상품 평가손실의 문제를 잘 알고 있다. 이미 상장사의 관리종목 지정 기준으로 '리픽싱 조건부 금융상품 평가손익을 제외한 경영성과'를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상장요건에서 회계적 착시의 보정을 허용하지 않는 게 게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 이익을 내지 못하더라도 상장할 수 있는 다수의 트랙이 이미 열려있기 때문이다. 관리종목 지정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상장사들의 목소리보다 상장요건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영향도 있을 것이다. 기업의 생애주기에서 IPO는 한 번뿐이기 때문에 상장 요건 개정과 관련해 적극적인 목소리가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한국 경제의 성장을 책임지는 스타트업 생태계를 위해 상장요건의 유연성 발휘를 검토했으면 한다. 스타트업의 불필요한 비효율을 제거해 주는 것이 성장기업을 지원하는 가장 확실한 방향이다. 이익을 내는 기업을 이익미실현특례가 아닌 '일반트랙'으로 올바르게 인도하는 건 공모시장 투자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가치도 있다고 본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관련기사
best clicks
최신뉴스 in 피플&오피니언
최윤신 벤처중기1부 차장의 다른 기사 보기
-
- [퓨처플레이는 지금]최전선으로 떠난 창업자, '권오형 체제'에 남겨진 과제
- [VC 투자기업]메쥬, 기술성평가 돌입…연내 상장 목표
- 거래소만 모른척하는 'RCPS 착시'
- '피지컬AI' 시대 성큼, '로봇 패밀리' 모은 에이티넘인베
- [VC 투자기업]'흑자전환' 글로우서울, 이르면 하반기 예심청구
- [스타트업 1st 감사보고서]비이아이, 하반기 LMB 양산 돌입…2027년 IPO 계획
- 혁신산업펀드 출자 '흥행'…패자부활 전략 통했다
- [스타트업 1st 감사보고서]비이아이, 몸값 1000억 '눈 앞'…대기업 SI 투자 이목
- [스타트업 1st 감사보고서]투자 몰리는 비이아이, '황각규의 혜안' 주목
- [VC 경영분석]㈜IMM, 지성배·정일부 각자대표 체제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