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주 수요예측 어디로]실효성 없는 수요예측 기간연장...“공모기간만 늘릴라”③"기간 늘려도 결국 참여는 막판에 집중… 소신 참여 기관에 메리트 줘야"
최윤신 기자공개 2023-01-30 13:28:26
[편집자주]
수요예측의 목적은 적정한 가격을 발견하는 ‘프라이싱’에 있다. 국내 공모주 수요예측 제도는 이런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계속해서 받아왔다. 금융당국이 제도와 관행 개선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바뀌는 제도가 수요예측 본연의 기능을 되살려낼 수 있을지 더벨이 짚어봤다.
이 기사는 2023년 01월 25일 16:4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금융당국은 공모주 수요예측의 내실을 키우기 위해 관행적으로 이틀간 진행되고 있는 수요예측 기간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놓고 증권업계에서는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을 내비치고 있다.사실상 기관의 프라이싱 참여 대부분이 수요예측 절차 마감을 앞두고 이뤄지는 만큼, 기간을 늘리는 게 의미가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수요예측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라면 단순히 기간을 연장하는 게 아니라 수요예측에 소신껏 참여하는 투자자들에게 충분한 메리트를 줄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한다.
◇ 배정 방식 미국과 달라 효용성 의문
금융당국은 지난해 말 내놓은 IPO시장 건전성 제고방안에서 ‘수요예측 기간 연장’ 방안을 언급했다. 수요예측 제도의 내실을 다지기 위한 목적에서다. 현재 관행상 이틀간 진행되는 공모주 수요예측 기간을 약 7일 내외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를 중심으로 협의체를 구성해 추진할 방침이다.
현재 대부분의 공모주 수요예측은 2영업일 동안 진행된다. 당국이 이 기간을 늘리려는 건 두 가지 목적에서다. 첫 번째는 수요예측 기간을 연장하면 수요를 동태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결국 수요예측의 가격 발견기능을 강화할 수 있을 거란 기대다.
두 번째 목적은 이번에 진행하는 허수청약 근절 대책과 맞닿아 있다. 당국은 상장 주관사에게 참여 기관의 주금납입능력 등을 확인해야 하는 의무를 씌울 계획이다. 주관사가 이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만큼, 수요예측 기간을 늘려 일을 수월하게 만들어주겠단 계산이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금융투자업계에선 회의적인 시선이 나온다. 현재 언급된 내용만으론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는 게 주된 의견이다.
먼저 현행 수요예측 방식 아래선 기간을 연장하는 게 전혀 의미를 가질 수 없다고 본다. 어차피 기관투자자의 참여는 마지막 날 집중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현행 진행되는 2영업일의 수요예측에선 사실상 둘째 날 오후에 대부분의 참여가 모이는 게 현실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기관투자자들은 동떨어진 가격을 적어내지 않기 위해 다른 투자자들의 여론을 파악하는 데 집중한다”며 “결국 수요예측 참여는 마지막 날 집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수요예측 기간을 늘리겠다는 아이디어는 해외의 수요예측 방식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미국의 경우 IR절차 시작과 동시에 수요예측에 돌입해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2주일간 수요를 모은다. 이 과정에서 수요가 분산돼 들어오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이런 모습이 국내 자본시장에서 그대로 재현될 것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미국의 경우 주관사가 물량 배정에 대해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먼저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기관들에게 충분한 메리트를 안겨줄 수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각종 규정들로 인해 주관사가 배정을 결정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제한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도 먼저 수요예측을 내는 기관에게 더 많은 물량을 배정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체감되는 차이는 미미하다”며 “먼저 참여하는 게 큰 메리트가 없으니 분석 능력이 뛰어난 대형 기관들마저 기업가치를 분석해 소신껏 참가하기보다 다른 기관 동향 파악에 열중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 상장 일정 지연 없더라도, 혼란은 불가피
일각에선 수요예측 기간을 늘리는 과정에서 증권신고서 제출 이후 상장까지의 과정이 길어지는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는다. 기존 관행상 수요예측은 증권신고서 효력이 발생한 뒤 진행한다. 이를 그대로 적용할 경우 수요예측 기간이 늘어날수록 증권신고서 제출 이후 공모까지 걸리는 시일도 늘어나게 된다.
물론 증권신고서 효력 발생 이전부터 수요예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기간이 늦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본시장법상 실제 청약행위는 증권신고서의 효력이 발생한 이후 가능하지만 수요예측은 청약의 권유행위에 포함되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 효력발생 이전에 수요예측을 진행한 사례도 있다. 앞서 2021년 상장한 크래프톤의 경우 10영업일간 수요예측을 했는데, 증권신고서 효력발생 이전부터 절차를 시작해 사실상 기존 관행과 동일한 일정으로 공모를 진행할 수 있었다.
다만 효력발생 이전 수요예측 돌입이 보편화되더라도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증권신고서 효력발생 이전에 수요예측을 실시할 경우 정정요구 등으로 일정이 밀렸을 때가 문제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수요예측을 짧게 가져가는 관행이 정착된 건 이런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라며 “수요예측이 길어지면 불필요한 논쟁이 발생하는 게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원인 분석 없는 관행개선 추진, 공감 사기 어려워"
업계에선 관행의 개선이 목표인 만큼 법이나 규정의 제·개정은 이뤄지진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법이나 규정상 강제성이 없다면 현행대로 수요예측을 진행해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아직 확정된 내용은 없다”면서도 “당국에서 얘기한 취지가 수요예측의 내실화를 기하기 위한 ‘관행 개선’인 만큼 규정에 담아 강제화하는 방향보다는 업계에서 탄력적으로 하는 방향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국이 수요예측 기간을 늘리라는 정책 방향을 발표한 만큼 당분간 어느 정도의 액션은 취해야 할 것이란 점에서 볼멘 소리도 나온다.
일각에선 수요예측 기간을 늘리겠다는 당국의 발표가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한 처사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왜 시장에 이틀간 수요예측을 하는 관행이 자리 잡은 것인지에 대해 분석하고 그 원인을 개선하는 게 합리적인 정책 결정방향이라고 본다”며 “원인에 대한 해결책 없이 단순히 관행을 바꾸라는 것은 업계의 공감을 사기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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