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1월 16일 08시04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파두 사태의 본질은 기술특례상장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파두와 반도체 시장의 문제다. 그런데 거래소가 눈치를 보면서 선량한 기업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최근 벤처캐피탈(VC) 업계에서 이런 우려 섞인 얘기를 심심찮게 듣는다. 일명 '파두 사태'는 지난해 11월 발생했지만 여진은 여전하다. 여기서 여진은 파두에 투자한 VC가 검찰 조사를 받는단 정도의 지엽적 문제가 아니다. 특례상장제도가 원흉으로 지목되면서 거래소 코스닥본부의 기업 심사가 깐깐해지고 기업공개(IPO)를 통한 회수 시장 자체가 경색되는 여진이다.
거래소가 예리한 메스를 들이대고 있단 증거는 조만간 수면 위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우선 파두 사태 전후 예비심사를 청구한 기업이 승인을 받기까지의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 기술특례상장 트랙을 택한 곳들은 대체로 매출 100억원 미만의 적자 기업인데 이들에게 매출 전망치 근거 자료를 더 자세히 제출하란 명령이 떨어지고 있다. 아예 거래소 담당 직원이 "파두 때문에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한다는 전언이다.
프리IPO 대비 낮은 밸류에이션에 상장하는 곳들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상장 전 진행한 마지막 투자 라운드에서 투자자들로부터 2000억원의 기업가치를 평가받은 기업도 1000억원대 몸값에 상장할 수 있단 얘기다. 기업의 매출 전망치에 대해 보수적으로 평가한 거래소 측이 2000억원을 용납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런 일이 일어난다. 최대주주가 이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서 상장을 연기하거나 포기하는 기업도 속출할 수 있다.
투자를 책임진 심사역들은 각종 시나리오를 우려하며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이 흐름이 장기화되면 기술특례상장 제도를 택할 수밖에 없는 바이오, ICT, 소부장 기업에 대한 모험자본 투자가 줄어들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시리즈A 라운드까지의 초기 투자 시장에 돈이 마른다. 추가 펀딩이 어려울 게 뻔한 상황에서 초기기업에 투자할 여력은 없다. 더벨 집계 결과 작년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바이오·헬스케어 분야에 대한 초기 투자 규모는 전년대비 반토막 났다.
최종 피해는 스타트업에 돌아간다. 투자사는 미소진된 펀드 결성액을 믿고 한 해 두 해 투자를 쉬어가면 그만이지만 당장 인건비가 급한 스타트업은 생존이 어렵다. 지난해 많은 스타트업들이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자체적인 결정을 한 곳들 외에도 VC로부터 구조조정을 전제로 추가 투자를 받는 케이스가 왕왕 있었다. 암울하게도 올해는 이런 경향이 더 심화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내 회수 시장은 거래소에 의해 좌우된다. 수도관 파이프를 쥔 존재가 그 끝을 막고 있으면 파이프 어디에선가 물이 터질 수밖에 없다. 거래소가 스타트업의 돈맥경화를 우려하고 모험자본 시장을 존중한다면 기업 심사에 사려를 더할 필요가 있다. 지나친 눈치 보기가 불러오는 나비효과는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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