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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태국의 랜드 브리지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4-07-15 09:00:31

이 기사는 2024년 07월 15일 09:1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국, 중국, 일본이 소비하는 중동산 원유는 페르시아만에서 출발, 인도양과 말라카해협을 지나온다. 중국이 하루 1,600만 배럴로 페르시아만의 가장 큰 고객이다. 유럽과의 통상은 수에즈운하를 거쳐 역시 인도양과 말라카를 지난다. 말라카는 글로벌 물류의 30%를 담당하는데 싱가포르 연안에 정박해 있는 수많은 배들이 보여준다. 또, 페르시아만이나 홍해, 아덴만에서 해적이나 그 밖의 위험이 발생하면 각국 해군은 말라카를 통과해서 인도양과 아라비아해로 달려가야 한다. 시간이 걸린다. 하루라도 빨리 가는 지름길이 있으면 좋겠다.

태국 지도를 들여다보면 뭔가 방법이 있을 법도 하다. 태국 영토의 남단은 말레이반도인데 중간 부분이 가냘프게 생겼다. 그 위치에 운하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 말라카까지 돌아가지 않고 바로 인도양으로 들어갈 수 있다. 오는 길도 마찬가지다. 푸켓 조금 위쪽에 크라 이스무스라는 폭 50km의 지역이 있는데 여기에 운하가 건설된다면 한중일 3국은 1,200km의 항로 단축 효과를 보게 된다. 중형 유조선의 경우 약 35만 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구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고 1677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지금만큼의 국제통상이 없었지만 그래도 그때 나름 지름길은 필요했던 것 같다. 기술 수준과 자금 문제로 이야깃거리에 그쳤다. 18, 19세기에도 프랑스와 영국의 엔지니어들이 다시 거론했다. 1897년에 태국은 영국의 동의 없이 그런 프로젝트를 추진하지 않는다는 문서까지 작성했는데 싱가포르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1965년에 싱가포르가 독립하면서 금지는 사실상 해제되었다.

2005년에 가장 이해관계가 큰 중국이 태국에 운하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금융, 건설, 운영을 도맡아 하겠다고 했다. 2015년에 양국간 MOU가 체결된다. 크라 이스무스가 아니고 푸켓 바로 옆 크래비에서 출발해 동쪽의 송클라까지 이어지는 128km 운하 안이 채택되었다. 이 운하는 파나마운하와 달리 전 구간 해수면 높이로 건설될 수 있다. 공사비 견적은 280억 달러. 공사 기간은 약 10년으로 예상되었다. 해당 지역은 싱가포르에 버금가는 경제 구역으로 발전할 수 있고 공사 기간 동안 고용 창출과 경기부양 효과가 기대되었다.

문제는 농지와 환경 파괴, 타지로 이주해야 하는 해당 지역 주민들의 피해다. 나아가 운하가 건설될 경우 운하 이남의 그렇지 않아도 소외된 태국 최남단 지역이 사실상 고립되는 문제가 있었다. 수입이 줄어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는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고 거추장스러운 말라카를 통과하지 않아도 되게 된 중국 해군의 기동력이 상승하면 미국과 인도가 서운해진다는 문제도 있다. 결국 중국은 파키스탄을 통해 인도양으로 내려가는 고속도로 건설 프로젝트로 방향을 바꾸었다. 중국은 페르시아만 지척인 파키스탄의 항구에서 육로로 에너지를 운송 받을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한다.

태국은 운하 대신 이른바 랜드 브리지(Chumphon-Ranong Land Bridge)라는 이름으로 말레이반도를 육상으로 가로지르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미얀마와의 국경을 이루는 끄라부리강을 따라 올라가다가 남중국해로 이어지는 육상 인프라를 건설한다. 양쪽 끝에 항만을 건설하고 그 사이의 90km는 고속도로, 철도, 파이프라인으로 연결한다. 건설비용은 폐기된 운하 프로젝트와 같은 280억 달러다.

태국 의회는 2024년 2월에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고용도 창출하고 운하와는 달리 낙후된 남부 지역의 개발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육상운송이 포함된 루트지만 말라카해협을 돌아가는 것 보다 6일까지 단축된다고 한다. 태국 정부는 투자유치 로드쇼를 시작했는데 일본기업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건설은 약 10년 소요 전망으로 2026년에 시작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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