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9월 10일 08:19 THE CFO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게임과 신약. 상관성을 찾기 어려워 보이는 두 산업은 재무적 관점으로 들여다보면 꽤 닮은 점이 많다. 먼저 기업에 돈을 벌어다 줄 후보 아이템을 파이프라인으로 부른다거나 이 파이프라인의 개발부터 상업화까지 상당한 시간과 투자 비용이 드는 걸 꼽을 수 있다.두 산업 모두 핵심 가치를 창출하는 근간이 대부분 무형자산 즉 지식재산(IP)에 편중한 것도 눈여겨 볼 지점이다. 시중에서 파는 비타민이나 알약은 형태가 있지 않느냐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신약의 본질적인 가치는 우리 손에 잡히는 화합물에 있지 않다. 신약으로 인정받고 높은 가격에 긴 기간 독점판매를 인정받을 수 있는 노하우, 즉 IP가 진수다.
게임업계에서도 IP는 중요하다. 엔씨소프트의 리니지가 대표적이다. 악명이냐 위명이냐를 따지기 전 리니지 IP의 힘은 볼 때마다 놀랍다. 출시 30년이 눈앞에 온 지금도 여전히 시장에서 유효한 아이콘이다. 엔씨소프트를 리니지 IP가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임이나 제약업계에서 한 번 잘 만든 IP는 유통기한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일본의 게임기업 코에이(KOEI)를 일으켜 세운 삼국지, 출시 사흘만에 1000만부의 판매고를 올린 중국의 검은신화:오공과 같은 사례, 그리고 타이레놀이 해당한다. 추가 개발비용이 거의 들지 않고 지속적으로 수익을 낸단 점이 IP 확보와 활용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개발자들 사이에선 잘 만들어진 IP는 사업성이나 지속성에 대한 큰 고민없이 전철을 밟기만 하면 수익이 담보된다는 믿음도 있다. 디즈니는 시장 우려에도 불구하고 작품성보단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색채만 더한 공주 시리즈를 연이어 내놓는다. 단순한 이유다. 일단 만들어진 IP를 재활용하면 '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IP의 문제점은 처음 기대에 비해 다소 아쉬운 결과가 나올수록 이를 끊어내는 게 어렵단 점이다. 시간과 돈을 투입하면 무엇이든 해낼 거란 믿음은 개발자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소양이다. 그러나 적정선은 있어야 한다. 컴투스 역시 글로벌 단위에서 흥행한 서머너즈워 IP를 활용한 후속작이 연이어 부진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신약개발이라고 다를 게 없다. 처음 기대치에 '아쉽게 미치지 못할수록' 임상을 다시 설계하면 될 것이란 유혹이 든다. IP가 좋으니 조금만 설계를 바꾸고 모집 환자를 늘리면 될 것 같다는 개발자의 판단은 냉정하게 말해 콩코드의 오류, 즉 착각에 가깝다.
막대한 시간과 돈이 들어가는 IP의 아찔한 유혹. 이를 향한 개발자의 돌진 혹은 폭주를 합리적인 이유로 막아설 수 있어야만 기업이라 말할 수 있다. 이 역할은 온전히 기업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CFO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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