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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황기 전선업계 톺아보기]'자재공급' 풍산, 확실히 누린 특수? 재무·주가 '역주행'⑦구리 수요 증가, 영업익 133%↑…재고부담 탓 기업가치 저평가 심화

유나겸 기자공개 2025-01-09 07:45:18

[편집자주]

한 줄의 전선에도 다양한 기업들의 기술이 담겨 있다. 전선 한 줄이 완성되는 과정에는 원자재부터 설비에 이르기까지 복수 기업들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전선 기업들은 최근 몇 년 새 최대 호황기를 맞이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발전과 신재생에너지 확대, 노후 전력망 교체 이슈 등으로 글로벌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덕분이다. 국내 전선 기업의 강점과 기회 요인을 비롯해 전선 생산 시작과 끝을 책임지는 기업들을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12월 31일 10:3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내 전선업체들의 호황으로 관련 산업인 전력설비 기업과 원자재 기업도 수혜를 보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풍산이다. 전선의 필수 원자재인 구리를 제조·공급하는 신동 부문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곳이다.

다만 구리 가격 변동으로 인한 재고 부담과 현금흐름 악화가 여전한 부담이다. 재고자산 증가가 운전자본을 압박해 재무 지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방산업 호황이란 호재에도 불구하고 주가 회복이 더딘 배경이다.

◇'마당발' 류 회장 덕, 신동 부문 경쟁력 강화

풍산은 그룹 창업주 류찬우 전 회장이 1968년 설립한 풍산금속공업이 모태다. 현재의 사명으로 변경된 건 1989년이다. 현재 신동과 방산 두 가지 사업 부문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신동 부문은 풍산의 핵심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2024년 3분기 기준 신동 부문 매출은 전체 매출의 68.9%를 차지하고 있다. 1969년 국내 최초 현대식 신동공장을 준공하면서 본격적으로 신동 사업에 뛰어들었다.

구리와 동합금을 가공해 구리판, 구리관, 구리봉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한다. 전선업계 호황으로 필수 원자재 수요가 증가하면서 직접적인 수혜를 보고 있다. 구리 가공 및 합금 기술을 바탕으로 전선 제조사에 구리 와이어와 스트립 등 원재료를 공급한다.

올 들어 실적 고공행진을 보이고 있다. 2024년 3분기 기준 풍산의 연결기준 매출은 1조129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3%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744억원으로 133.1% 급증했다. 신동 부문 매출 역시 전년 동기 대비 8% 성장하며 실적 상승을 주도했다.

풍산이 신동 부문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류진 회장의 적극적인 경영 전략이 자리잡고 있다. 류 회장은 해외시장 개척에 직접 나서며 유로화 동전 수주를 성사시키고 수출국을 기존 17개국에서 60여 개국으로 확대했다.

또한 도금 생산라인 증설과 스마트 팩토리 구축 등 선제적인 투자로 미래 수요에 대비하며 신동 사업을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 입지가 상당하다. 류 회장은 대표적인 ‘미국통’ 경제인으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등 공화당 인사들과의 친분을 통해 대외 네트워크를 강화했다. 류 회장의 이같은 활동이 풍산의 해외 사업 확장과 글로벌 이미지 제고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금흐름 약화, 주가 저평가에 IR로 돌파구 마련

다만 풍산이 직면한 주요 문제인 재무건전성 약화 부담은 여전하다. 특히 재고자산이 늘어나면서 운전자본 부담이 커졌고 이로 인해 현금흐름이 악화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풍산의 신동부문 수익은 원재료인 구리 가격 변동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원재료를 매입해 매출로 반영되기까지 약 2~3개월이 소요되는 공정상의 특성 때문에 구리 가격 변동은 운전자본과 현금흐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구리 가격은 2020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런던금속거래소(LME) 기준 전기동 가격은 2020년 톤당 약 6000달러에서 2021년 9000달러로 급등했으며 러우 전쟁의 여파로 한때 1만달러를 넘어섰다. 이후 7000달러대로 하락했지만 최근에는 8000달러 후반까지 다시 상승한 상태다.

구리 가격 상승은 풍산의 재고자산 증가와 정확하게 일치했다. 2020년 말 7903억원이었던 재고자산은 구리 가격이 9000달러를 돌파한 2021년 말 1조1835억원까지 증가했다. 구리 가격이 다시 상승한 2024년 3분기 말에는 재고자산이 1조3881억원을 넘어섰다.

재고 부담 확대에 따른 운전자본 부담 가중이 현금흐름 악화를 불렀다. 2024년 3분기 풍산의 영업활동현금흐름은 -286억원이다. 전년 동기 풍산의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2581억원이었다. 재고자산 확대와 구리 가격 변동의 영향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재고자산 증가로 인해 풍산의 당좌비율도 낮아졌다. 당좌비율은 기업의 단기적인 지급 능력을 평가하는 지표로 유동자산 중에서 가장 빠르게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만을 기준으로 계산된다. 풍산의 당좌비율은 76.6%로 일반적으로 100% 미만일 경우 단기 부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진다.
풍산이 해결해야 할 또 다른 과제는 주가 저평가다. 3분기 말 기준 풍산의 PBR(주가순자산비율)과 PER(주가수익비율)은 각각 0.64배, 6.05배로 동종업계 대비 낮다. 이 기간 동종업체인 이구산업의 PBR과 PER은 각각 0.96배, 8.55배, 고려아연은 PBR 2.37배, PER 35.7배로 풍산보다 높은 수준이다.

30일 기준 풍산의 주가는 4만9950원이다. 올해 5월 7만8900원을 찍은 뒤 크게 하락했다. 최근 류진 회장이 트럼프 취임식에 초청받은 이후 주가가 소폭 반등했지만 이마저도 반짝 효과에 불과했다.

이에 풍산은 주주들과의 소통을 강화하며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올해만 IR(기업설명회)을 네 차례 개최하며 주주와의 소통을 확대했다. 2014년과 2015년 각각 한 차례 IR을 진행했던 데 비해 2022년 세 차례, 2023년 네 차례로 IR 횟수를 꾸준히 늘려왔다. 통상 IR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전선주 기업들과 대조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전력 수요 증가와 구리 가격 상승이라는 호재가 맞물리며 풍산 주가는 장기적으로 상승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동종업계와 비교했을 때 주식 저평가 현상은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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