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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프록시 파이트 thebell note

김형락 기자공개 2025-03-25 08:10:14

이 기사는 2025년 03월 24일 07시06분 THE BOARD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올해 주주총회 시즌은 어느 때보다 주주제안이 활발하다. 주주 플랫폼에 결집한 소액주주들이 주주제안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안건별로 찬성·반대 이유를 밝히며 의결권 대리 행사를 권유하는 '위임장 대결(프록시 파이트)'이 여러 상장사에서 벌어졌다. 최근 공모 유상증자를 진행하는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주주와 소통하는 모습을 보고도 소액주주들의 목소리가 전보다 커졌다는 걸 실감한다.

단편적인 주주 환원 확대 요구 외에 솔깃한 주주제안도 있었다. 주주가 보수 정책을 검토하고 승인하는 보수심의제(Say on Pay)를 정관에 도입하자는 제안이다. 올해 율촌화학과 솔루엠이 주주제안을 받아 주총 안건으로 올렸다. 이마트도 같은 요구를 주주제안으로 받았지만 주총 안건으로 올리지는 않았다.

임원 보수 규정과 정책을 주총에서 논의하자는 요구는 가볍게 흘려들을 사안은 아니다. 잘 설계한 보상 체계는 혁신과 성장을 만드는 밑거름이다. 기여한 만큼 보상받는 건 자본주의 이치에도 부합한다. 자사주 소각, 배당 증액 등 자본 재분배는 전략적 판단에 따라 찬반이 나뉠 수 있지만, 보수심의제는 반대 명분을 선뜻 찾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관행처럼 주총에서 이사 보수 총액 한도만 승인한다. 임원 보수 규정은 이사회나 보상위원회에서 정한다. 보수 규정과 정책에 대한 세부 근거가 구체적으로 공시되지 않아 주주가 임원 보수 적정성을 판단하기 어렵다.

해외에서는 세이 온 페이가 각국 특성에 맞게 자리 잡았다. 2003년 영국이 먼저 시행했다. 회사법으로 주총에 상장사 경영진 급여 지급 현황을 상정하도록 했다. 미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만든 도드-프랭크법에 따라 상장사가 최소 3년에 한 번 경영진 급여를 주주에게 심의받도록 했다.

한국식 세이 온 페이는 어떤 모습일까. 주주제안에 앞서 지배주주, 이사회가 기존 관행을 깨고 선제적으로 도입하는 사례가 나올 수 있을까. 보수심의제를 요구하는 주주제안이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져 물결을 일으킨 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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