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시장에 분 RA 바람]AI PB의 등장…규제 탓에 더뎠던 확산 속도①흐름에 뒤쳐진 금융 장벽…단기투자 선호 문화와 간극
박상현 기자공개 2025-04-15 17:48:23
[편집자주]
로보어드바이저(RA) 퇴직연금 일임 서비스가 올해 개시됐다. 규제와 단기 수익을 중시하는 국내 투자 문화에 가로막혀, 지금껏 꽃을 피우지 못한 RA업계는 반전의 기회를 맞이했다. 이에 더벨은 RA의 도입 후 성과와 한계, 그리고 퇴직연금 시장을 중심으로 펼쳐질 새로운 미래를 들여다본다.
이 기사는 2025년 04월 09일 08시34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로보어드바이저(RA)가 국내에 본격 도입된 시점은 2016년이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 간 바둑 대결로 인공지능(AI)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을 무렵이다. 자연스레 AI가 여러 산업에 접목되기 시작했는데,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자동화 자산관리 도구로 RA가 주목을 받았다.RA 도입은 금융선진화를 위한 하나의 흐름이기도 했다. 금융선진국 미국에서는 RA가 개인의 자산관리 수단으로 대중화된 상태였다. 하지만 국내 투자자들에게 기대만큼이나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각종 규제에 가로막히면서다. 자산관리에서 '증식'에 비해 '분배'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한 영향이 컸다.
◇자산관리의 대중화, ‘AI PB’가 떴다
RA는 로봇을 의미하는 ‘로보(Robo)와 자문 전문가를 의미하는 ’어드바이저(Advisor)’의 합성어다. AI를 활용해 알고리즘을 자동화하고 고객의 투자성향과 목표에 맞는 자산관리 및 투자 설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포트폴리오만을 제시해 주는 자문 서비스와 포트폴리오 운용까지 함께하는 일임 서비스 모두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RA의 알고리즘은 세 단계로 구성된다. △고객진단 알고리즘 △자산배분 알고리즘 △리밸런싱 알고리즘이다. 우선 고객진단 알고리즘이 고객에 대한 개인 맞춤형 정보를 수집, 그에 맞는 상품군을 추천한다.
이후 이 정보를 바탕으로 자산배분 알고리즘이 최적의 포트폴리오를 설계하고 시장 변화나 투자자의 상황 변화에 따라 리밸런싱 알고리즘이 자동으로 자산 비중을 조정한다. 세 알고리즘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투자 전 과정이 자동으로 반복·업데이트되는 구조를 이룬다.

가령 투자자가 ‘나는 10년 뒤 집을 사기 위해 자금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고 가정하자. 자산을 증식하는 것뿐만 아니라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한 상황이다. 이 경우 RA는 중기적 목표에 맞춰 주식 60%, 채권 40% 정도로 포트폴리오를 구성, 운용할 수 있다. 쉽게 말해 AI 프라이빗뱅커(PB)가 투자자 간 질의응답을 통해 성향을 파악, 그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뒤 자산을 운용해 준다고 보면 된다.
이러한 서비스가 처음 태동한 곳은 미국이다. 베터먼트(Betterment)와 웰스프론트(Wealthfron)가 본격 시작을 알렸다. 베터먼트는 2007년, 웰스프론트는 2008년 설립된 핀테크업체다. 당시 두 업체는 낮은 수수료를 무기 삼아 고객층을 확보해 나갔다. 베터먼트의 경우 최저투자금액 없이 투자금의 0.25%를 운용수수료로 받았다. 웰스프론트는 500달러의 최저투자금액과 함께 1만달러 이상 투자 시 0.25%의 수수료를 부과했다.
두 기업은 RA의 기초자산으로 상장지수펀드(ETF)를 삼았다. 운용 비용을 줄이면서 자산 배분 효과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초창기 RA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사실상 AI PB가 운용하는 EMP(ETF Managed Portfolio) 펀드인 셈이다. 이후 뱅가드와 슈왑, 피델리티 등 대형 금융사들도 자체 RA 서비스를 출시하며 시장 저변을 넓혀갔다.
◇핀테크 기업 대거 출사표…규제 장벽에 고전
RA 서비스는 국내에서 2016년 본격화됐다. 이 시점에 △쿼터백투자자문(현 쿼터백자산운용) △디셈버앤컴퍼니 △에임(AIM) △파운트(fount) △두물머리투자자문(현 업라이즈투자자문) 등 여러 핀테크 기업이 출사표를 던졌다. 가장 먼저 시작한 곳은 쿼터백투자자문이었다. 그해 1월과 5월 KB국민은행과 합작해 국내 최초로 RA 신탁 상품 2종을 개시했다.
현재 업계 1위인 디셈버앤컴퍼니 또한 이 무렵 서비스를 개시했다. 디셈버앤컴퍼니는 2013년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직접 사재를 출연해 세운 핀테크 업체다. 주요 인력이 서울대, 카이스트, MIT, 프린스턴대 등을 졸업한 시장에서 손꼽히는 실력자들로 구성돼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국내 RA 사업은 규제로 인해 생각보다 큰 성장을 이루지 못했다. 금융위원회는 2016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을 개정, RA 서비스를 허용했다. 그러나 자본시장법 제 97조에 따라 RA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오프라인 창구를 직접 방문해야 했다.
2018년에는 금융투자업규정을 개정해 비대면 계약을 가능토록 했음에도 영상통화를 통해 설명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등 여전히 손쉽게 가입하기는 어려웠다. 2020년이 되어서야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영상통화 외 다양한 비대면 설명의무 방식이 허용됐다.
이 가운데 RA의 특성이 국내 개인 투자자의 투자 성향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 세계 투자자들과 비교해 국내 개인 투자자들은 단기간에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RA는 자산 증식보다는 배분에 더 초점을 둔다. 단기투자보다는 장기투자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는 의미다.
한 RA업계 관계자는 “RA는 자산 배분에 집중하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연 수익률 6~8% 정도를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다”며 “수익률이 10%라는 의미는 곧 –10%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인데, 높은 수익률에만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다소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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