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04월 16일 07시03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과거 코리안리에 재직하던 지인의 얘기였다. 사원 시절 회사 내 야간강의에 있었는데 좀 피곤해서 중간에 빠져 나오려 하다가 바로 근처에 오너 자제인 원종규 대표이사(당시 과장급)가 있었다. 괜히 눈치 보여 쏟아지는 눈꺼풀을 견디면 간신히 버텼다고 한다.나중에 종강식에서 같이 술을 마시는 중에 원 대표가 말하길 "나도 피곤해서 중간에 빠지려고 했는데 옆에 사원(지인)이 끝까지 듣고 있으니 눈치 보여서 못 나가고 잠 오는 걸 버티고 있었다"고 토로했단다. 차기 오너의 눈치를 보는 사원은 그렇다 쳐도 사원의 눈치를 보는 오너 자제는 동화 같은 얘기였다.
원 대표는 오너 중심의 한국 기업문화에서 독특한 위치에 서있는 인물이다. 오너 2세지만 그보다 '전문경영인형 오너' 또는 '오너십을 가진 내부 출신 CEO'라는 새로운 모델을 보여준다. 코리안리에 평사원으로 입사한 그는 해상보험, 항공보험, 특종보험, 기획, 해외사업 등의 부서를 거치며 실무 능력을 쌓고 부장, 상무, 전무 등 임원직을 순차적으로 밟았다. 1986년 평사원으로 들어와 2013년 CEO까지 28년이 걸렸다.
그가 재직 중인 코리안리의 최대주주는 지분 9.99%를 보유한 신영증권이다. 원 대표가 보유한 지분은 4.64%, 절대적인 수치로만 보면 최대주주라 보기 어렵다. 다만 그의 가족 및 특수관계자 지분을 합산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의 모친 장인순 여사는 6.11%로 형 원종익 이사회 의장은 3.76%, 특수관계인 이필규 이사 2.4%, 여기에 자녀 명의의 지분까지 더하면 20.33%다.
코리안리의 거버넌스 체계를 보면 분산된 직접 지분의 약점을 결속력 있는 가족 경영과 우호세력 중심의 이사회 구성으로 메우는 조합이다. 낮은 개인 지분에도 불구하고 실질 지배력을 확보하는 전략의 핵심이다. 단순히 지분율이 아닌 오랫동안 구조적으로 설계해 온 시스템적 오너십. 여기까지만 보면 총수가 낮은 지분율로 더 큰 지배력을 행사하는 전형적인 한국식 기업 지배구조와 별 다르지 않다.
여기서 차별화를 드러낸 부분은 원 대표 그 자신이다. 그의 지배력은 지분보다 경영능력 기반의 실질적 통제력에 가깝다. 주주와 이사회, 내부 구성원으로부터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지배력은 일종의 '합의된 권위'라 볼 수 있다. 오너 자제가 입사해 사원으로 얼마 있다가 임원으로 초고속 승진하는 여타 재벌과 전혀 다른 그의 성장 스토리가 여기에 힘을 실었다.
한국 기업문화에서 오너와 전문경영인은 명확한 장·단점을 갖는다. 코리안리는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독특한 실험을 이어오고 있다. 앞으로의 과제도 분명하다. 이 같은 지배구조가 단기적인 인물 중심에 머무르지 않고 지속가능한 구조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 그의 오너십이 지속 성장을 이끄는 동력이 될지, 아니면 경직된 의사결정 구조로 작용할지. 그 경계선에서 원종규 대표는 중요한 시험대에 늘 올라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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