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 분석/엔씨소프트]김택진, 지분 희석 보완책 '백기사'[소수지분 거버넌스]②넥슨에 14.7% 넘겼다가 위협 자초, 넷마블 손잡고 지배력 보강
원충희 기자공개 2025-04-10 08:10:22
[편집자주]
국내 재계에서 창업자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다. 오너 대다수가 창업자 가문의 사람들이다. 다만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전 의장, 아미코젠의 신용철 전 회장 등 지분율이 낮은 오너는 경영진과 주주들의 지지를 잃을 경우 밀려날 수 있다. 기업 성장과 상속 등의 과정에서 지분이 희석된 오너들은 어떻게 지배력을 보강하고 있을까. theBoard가 기업 총수의 오너십 유지 비결을 들여다 봤다.
이 기사는 2025년 04월 08일 08시11분 THE BOARD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00년 전후로 탄생한 IT 대기업은 창업 세대부터 지분 희석이 빠르게 진행된 경우가 많다. 자본시장의 도움을 받아 고속 성장을 구가한 대가다. 엔씨소프트도 마찬가지였다. 창업자 김택진 대표는 여기서 더 나아가 경영권 지분을 걸고 더 큰 도약을 꿈꿨다.하지만 도약에 실패한 대가는 경영권 분쟁이었다. 당시 손을 잡았던 넥슨은 우군에서 경영권을 위협하는 적대자로 돌변했고 또 다른 게임사 넷마블의 도움을 받아 상황을 모면했다. 이는 오너가 경영권 지분을 함부로 희석하면 어떤 위협에 시달릴 수 있는지를 명확히 알려주는 대표적 사례가 됐다.
◇글로벌 M&A 꿈꿨던 엔씨, 우군 넥슨에 덜미 잡혀
많은 대기업 오너는 승계가 3∼4세대째로 접어들 때 경영권 지분이 대폭 희석되면서 주식 매입을 통한 외부의 적대적 M&A 시도에 취약해진다. 다만 2000년대 전후로 부각된 IT 대기업들은 창업 세대부터 경영권 지분이 대폭 희석된 경우가 많다. 벤처캐피탈, IPO 등 자본시장의 도움을 받아 빠른 성장을 거듭한 대가다.
'리니지' 게임으로 유명한 엔씨소프트는 2000년 코스닥에 입성했다. 그 당시 창업자 김택진 대표의 지분은 33.67%, 특별결의 저지선(33.4%)을 넘을 정도다. 하지만 우수 개발자에게 나눠준 주식매수선택권(스톡옵션)이 꾸준히 행사됐고 김 대표도 장내 매도를 하면서 지분이 계속 희석됐다.

2004년에는 이혼으로 전 부인에게 엔씨소프트 주식 1.76%(35만6461주)를 재산분할 형식으로 넘겼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김 대표의 지분은 24.74%로 낮아졌다. 결정적인 시기는 2012년이다. 그 해 6월 김 대표는 본인의 지분 중 14.68%를 넥슨 일본법인에 매각했다. 이로 인해 그의 지분은 약 9.9%로 감소했다.
김 대표가 경영권 지분 희석을 감수하고 1대 주주 자리를 넥슨에게 넘긴 이유는 축구게임 '피파' 시리즈로 유명한 미국의 EA(일렉트로닉아츠)를 함께 인수하기로 뜻을 모았기 때문이다. 당시 EA의 사업이 잠깐 휘청하면서 주식이 급락, 매수 가능성이 있던 순간을 노렸다. 이를 위해 서울대 1년 선배이자 오랜 친분이 있었던 김정주 넥슨 창업자와 의기 투합했으며 지분 매각을 통해 8045억원을 확보했다.
양사가 협업하던 '마비노기2'가 1년여 만에 개발이 중단됐고 넥슨의 지분 매입 이후 엔씨소프트 주가는 지속적으로 떨어지면서 두 회사의 사이가 벌어졌다. 매입가격은 주당 25만원인데 2014년 10월엔 주당 가격이 13만원대까지 하락했다. 넥슨 입장에서 투자금의 절반 정도가 사라진 셈이었다.
◇외부세력 끌어들여 지배력 보강 '불안요소'
김택진 대표는 지분이 10% 미만으로 희석된 와중에 1대 주주를 제대로 아우르지 못하면서 경영권을 위협받았다. 넥슨이 경영참여를 천명함에도 엔씨소프트를 이를 자력으로 억제하지 못했다. 개인적인 친분에 기대 지배력 보완책을 준비하지 않은 게 문제였다.
결국 넷마블이란 외부세력을 백기사로 끌여들여야 했다. 넷마블은 '서든어택' 판권을 두고 넥슨과 갈등을 벌였던 만큼 둘 사이에 공통점이 있었다. 2015년 2월 넷마블이 엔씨소프트 지분 8.9%를 3911억 원에 취득하고 엔씨소프트는 넷마블의 지분 9.8%를 3803억원에 사들였다. 현금을 들이지 않은 '주식 맞교환' 형태였다. 이를 통해 김 대표의 우호지분을 18.83%까지 높여 넥슨 지분(15.08%)을 넘어섰다.
갈등 국면은 2015년 10월 넥슨이 보유하고 있던 엔씨소프트 지분 15.08%를 블록딜하면서 해소됐고 이 과정에서 김 대표는 그 중 2%를 매입, 지분을 11.98%로 끌어올렸다. 현재도 11.97%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엔씨소프트와 넷마블은 2021년 3월 주식매도를 제한하는 주주계약이 종료되면서 이제는 지분을 뜻대로 처분할 수 있다. 아직은 서로의 지분을 보유 중이지만 김 대표 입장에선 자력이 아닌 외부세력으로 지배력을 보강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경영권 불안요소로 남아있다.
IT업계 관계자는 "엔씨소프트-넥슨의 경영권 분쟁은 '비즈니스 세계에 영원한 친구나 적은 없다'는 격언이 현실화된 사례"라며 "개인적 친분에 기대 경영권 지분을 넘겨주는 게 오너십에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다시 알려주는 케이스"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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