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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의 시대' 투자법

배장호 기자공개 2017-10-31 09:24:36

이 기사는 2017년 08월 11일 08:2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구멍난 양말을 꿰매 신던 시절은 이제 옛 이야기다. 매일 쏟아지는 음식물 쓰레기 양을 보노라면 먹는 것보다 버리는 양이 더 많다. 부자일수록 덜 먹는 법을 더 고민한다. 배고파 먹는 시대가 지난지 한참이다.

집집마다 서랍을 열면 신상으로 바꾸면서 쳐박아둔 된 중고 스마트폰이 한두개쯤 나온다. 유심 끼우고 통신사 기기등록 다시하면 통화든 검색이든 다 되지만 더는 쓸 일 없다.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될 날이 멀지 않았단다. 교통사고 날 일 없어질테니 자동차 수요가 급감할수도 있겠다 싶다. 이미 과잉인 자동차 메이커들의 생산설비가 고철덩이로 변할 날이 재깍재깍 오는 듯 하다.

과잉의 시대다. 부족한 것 없이 모든 게 풍요한 요즘이 투자 꺼리도 많겠다 싶겠지만 실은 정반대다. 재화든 서비스든 공급자는 넘쳐나는데 시장 수요는 한정적이다. 풍요해졌다고 하루 세끼 먹던 밥을 여섯끼로 늘리진 않는다. 설상가상. 인구통계학적 전망은 더 비관적이다. 비혼족 싱글족이 늘고, 출산율이 주는 것은 비단 국내만의 현상이 아니다. 생산 혁신을 이뤄본 들 소비할 사람들이 줄어드니 혁신의 과실을 거두기 쉽지 않다.

한때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고들 믿었지만, 디지털 정보혁명에 기반한 물류 유통 혁신은 재고를 최소화시키고, 적정 생산을 강제한다. 기계 좋다고 무한정 찍어내다간 도산하기 십상이다.

전문투자자라도 대체 어디 투자해야 수익을 낼 수 있을지 가늠하기 쉽지 않은 시대다. 디지털디바이스와 소셜네트워크시스템의 보편화는 개별 소비자들의 기호를 더 예민하게 만들었다. 예기치 못한 돌발변수로 기업이 흥하고 망하는 일도 빈번해졌다. 과거의 현금창출력만으론 앞으로의 사업가치를 확신하기 점점 더 어려워졌다. 반대로 지금 돈 못버는 산업이라 눈감았다간 투자 세계의 주류에서 밀려나 별볼 일 없어질 지 모른다.

턴어라운드 콘셉트는 바이아웃 투자자들이 가장 신뢰하는 전략이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한번 무너진 사업을 다시 세울 수 있겠단 생각만으론 부족하다. 소비자들의 취향이 '더' 개별화되고 '더' 가변적으로 바뀌면서 한물 간 브랜드 가치를 되살리는 일이 쉽지 않아졌다.

매스(Mass) 콘셉트의 사업에 투자하는 일이 더 위험해진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공정 효율화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해도, 단일 상품을 대량생산하는 방식이 갖는 근원적 회의를 떨쳐내기 쉽지 않다. 뭐든 넘쳐나고 부족한 게 없으니 '싸고 품질좋다'는 게 소비자들을 예전처럼 움직이지 못한다. 그렇다고 파편화되고 가변화된 소비 수요 전부를 붙잡으려 하거나 반대로 특정 수요층만 겨냥하는 사업을 택하는 것도 좋은 선택은 아니다. 대부분 채산성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라이프스타일을 상상하며 아직 검증도 되지 않은 사업에 베팅하는 일도 쉽지 않다. 이런 분야는 보다 모험적인 자본인 벤처캐피탈(VC)이 담당할 영역이긴 하지만, 요즘엔 더 모험적인 자본(VC)과 덜 모험적인 자본(PE)간의 투자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그래서 어떤 사업에 투자해야 하는건데?"와 같은 도발적 질문은 사양한다. 그 답을 안다면 내가 지금 투자를 하지, 글을 쓰고 있겠는가. 투자처를 고민 중인 전문투자가라면 가끔 이런 '답없는' 토픽으로 밤을 지샐 때도 있어야 할게다. 배부르면 아무 생각없어진다는데, 과잉의 시대에 투자 인사이트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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