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0년 02월 06일 07:5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각 기업들의 사업보고서를 보다 보면 재무담당자의 성격이 보여요. 특히 임원들 임기를 적어둘 때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요."얼마 전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를 연구하고 있는 취재원을 만났을 때 들은 이야기이다. 이달부터 개정되는 상법에 따라 사외이사 임기가 6년으로 제한되면서 각 기업들의 사외이사 현황을 한창 들여다 볼 때였다. 취재원은 각 기업들이 사외이사 임기를 어떤 기준으로 쓰는지를 보면 재미있다며 이처럼 말했다.
기업들은 사외이사나 임원의 임기를 '17.03.24'와 같이 시작일로 명시하는 곳이 있고, '36개월'이나 '3년'으로 넣기도 한다. 시작일부터 쓰는 경우는 재직기간이 명쾌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명확한 기준점을 제시해 보기 편하다. 개월 수로 제시하는 경우 꼼꼼한 재무담당자의 얼굴이 그려진다고 했다. 분기마다 개월 수를 더하는 수고를 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뭉뚱그려 '2년', '30년' 등으로 표시하는 경우는 어떨까. 담당자가 재직기간을 세기가 귀찮아서가 아니라 사외이사나 임원의 재직기간이 오래됐을 때 이런 방식을 많이 취한다. 취재원은 "사외이사 임기가 18년, 20년이라고 적힌 걸 보면 재무담당자가 '이 사람이 참 오래했다'고 말하는 것 같다"고 했다.
실제 다수의 사업보고서를 보며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그 중 가장 인상깊었던 사업보고서의 주인공은 동진쎄미켐이었다. 동진쎄미켐은 지주회사인 동진홀딩스 외에도 국민연금(5.08%)과 삼성전자(4.8%)를 주요주주로 둔 기업이다. 또 최근 반도체 소재인 포토레지스트 국산화로 주목을 받고 있는 곳이다.
일단 사외이사의 재직기간이 17년으로 아예 못 박혀있다. 그는 2002년 선임된 이후 다섯차례의 연임을 했다. 2002년 선임당시 대표이사(최대주주)와 학연이 있다고 아예 사업보고서에 명시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솔직한 사업보고서가 있나 싶었다.
솔직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해당 회사의 2000년대 사업보고서를 보면 최대주주와의 관계를 기술할 때 '자(子)', '처(妻)', '아들의 처(妻)', '아들의 자(子)', '매형' 등 관계를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해서 놀랍기도 했다. 2012년 사업보고서에는 차명계좌가 실명전환되면서 최대주주의 지분이 증가했다는 내용도 인상적이었다.
흔히 사업보고서는 딱딱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숫자에는 감정이 없다고 하지만 재무담당자도 어쩔수 없는 사람이다. 각 회사의 임원 및 사외이사를 표기하는 방식, 세세한 서술을 통해서도 회사를 엿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재무담당자의 사소한 표기에도 투자자들이 신경써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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