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0년 06월 30일 07시51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아는 줄 알았는데 막상 글로 쓰려면 막막해질 때가 있다. 전문분야라고 생각했는데 한두줄 쓰고 막히는 경우도 있다. 그제야 깨닫는다. 무엇을 몰랐고 무엇이 부족한지. 알아가는 과정의 출발점이다.국내 녹색채권(그린본드) 시장도 비슷해보인다. 이 채권은 친환경 관련 사업이나 사회기반시설에 투자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된다. SRI채권(사회책임투자채권, ESG채권)에 속한다.
녹색채권의 의미는 크다. 2018년 국내에서 처음 발행된 SRI채권이 바로 녹색채권이다. 그 뒤 신한은행, 한국남부발전까지 잇달아 찍어내며 부흥하는 듯 보였다. 지난해에도 인기는 꾸준했다. 현대캐피탈, KB캐피탈, 현대카드, SK에너지, GS칼텍스 등 민간기업이 발행대열에 합류했다. 상대적으로 자금사용목적이 뚜렷해 진입장벽이 낮은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 녹색채권은 단 한 건도 발행되지 않았다. 코로나19사태를 고려해도 부진은 두드러진다. 전체 SRI채권 발행이 크게 늘어난 것과 상반된다. 업계에서는 당혹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시장 관계자는 “녹색채권을 찍을 만한 사업을 찾기가 어려워 발행하고 싶어도 발행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녹색채권에 대한 관심부족과 무지로 3년 만에 밑천을 드러낸 셈이다. 친환경사업이라고 하면 그린빌딩이나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전기차를 떠올리곤 하지만 이런 사업은 너무 적다. 그렇다고 친환경사업의 범주를 자의적으로 넓히자니 외부기관 검증이 두렵고 적절성에 대한 의혹을 받을 수 있어 발행사들이 소극적이다.
환경부가 진행하는 K-텍소노미 프로젝트는 이런 한계를 넘어서려는 움직임이다. 이 프로젝트는 어떤 사업이 녹색금융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기준을 제시하는 게 목표다. 환경부는 이를 바탕으로 4분기까지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로 했다.
기준이 뚜렷해지면 발행사는 의혹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검증기관도 주먹구구식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있다. 기준만 맞추면 환경오염 업종의 기업이 발행해도, 사업대상이 설비가 아닌 서비스라도 녹색채권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녹색채권에 대한 인식이 비로소 자리잡는 셈이다.
녹색채권을 발행한 시점이 크게 뒤쳐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녹색채권에 대한 관심과 인식은 이제야 첫발을 떼는 단계다. 전세계적 기조와 대비된다. 글로벌 SRI채권 시장은 녹색채권을 주축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이에 발맞춰 중국과 일본, 인도 등 수많은 국가들이 녹색채권 관련 기준을 수년 전에 일찌감치 마련했다.
공자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반기 발행실적을 녹색채권에 대한 부족함을 깨닫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여기에서 비롯된 문제의식을 담아 기준을 바로세워야 한다. 녹색채권 발행의 진짜 원년이 올해일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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