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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3사, SRI채권 인증 '거스를 수 없는 대세' 금융당국 우호적, 기업정보 방대…기존 사업과 시너지 강점

이지혜 기자공개 2021-01-11 12:58:29

이 기사는 2021년 01월 08일 08:1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국신용평가를 시작으로 나이스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까지 SRI채권(사회책임투자채권, ESG채권) 인증사업을 개시했다. 신용평가사들이 SRI채권 인증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필연’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법적 규제 안에서 성장성 높은 시장을 찾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신용등급 평정대상과 SRI채권 인증대상이 기업의 채권으로 일치한다.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요소이자 선발주자를 따라잡을 추격 엔진이나 다름없다. SRI채권 시장이 성장하면서 환경부 등 정부당국이 규제 수위를 높일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신용평가사들이 SRI채권 인증사업을 서두른 요인으로 꼽힌다.

◇금융당국의 ‘묵시적’ 허가, 규제수위 높아질 것

7일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나이스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등 신용평가 3사가 SRI채권 인증 시장에서 공식 경쟁을 시작했다. 선발주자는 한국신용평가다. 한국신용평가는 2020년부터 사업을 개시해 이미 신용보증기금, 롯데카드, 한국중부발전 등의 SRI채권 사전검증을 수주했다.

나이스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는 각각 지난해 12월 말과 올해 초 관련 평가방법론을 발표하고 SRI채권 인증사업을 시작한다고 시장에 알렸다. 후발주자지만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은 작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신용등급 평정 등을 진행하며 기업과 소통하고 있어서 시장에 정보가 빠르게 알려지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용평가3사가 SRI채권 인증사업에 뛰어든 데는 성장성이 주효했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묵시적 허가와 규제수위가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영향을 미쳤다. 신용평가사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335조에 따라 설립과 업무 등이 제한돼 있다. 법의 테두리에서 신사업을 해야 하며 부수업무도 사업개시 전 금융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그러나 SRI채권 인증사업은 금감당국에 별도의 신고절차를 밟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이 사업이 기존에 진행하던 사업성 평가와 기업진단 업무에 속한다고 판단해 별도의 신고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다.

업계 관계자는 “회계법인 등이 2018년부터 해왔던 SRI채권 인증사업을 신용평가사가 체계적으로 진행하는 만큼 금융당국도 비교적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오히려 각 기업과 사업을 분석하는 데 전문성이 있어서 시장에서 신뢰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 가능성이 유력하다. 환경부가 녹색채권 외부검토기관을 인증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연구용역을 맡겼으며 이르면 올해 하반기 SRI채권 인증기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수립될 수 있다.

환경부는 외부검토기관 인증이 산업 진입장벽이 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기준만 세우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업계에서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만 봐도 인증기관의 자격을 함부로로 부여하지 않으려 엄격한 기준을 세웠다”며 “조직, 전문성, 트랙레코드 등을 다각도로 살펴볼 것으로 예상돼 사업을 서둘렀다”고 말했다.

국내 SRI채권 시장은 2018년 형성됐지만 한국거래소에서 관련 플랫폼은 2020년 6월, 정부의 녹색채권 발행 가이드라인은 그해 12월 생기는 등 제도가 시장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SRI채권 시장이 폭발적 성장을 거듭하며 올해 환경부의 K-Taxonomy(한국형 녹색금융 분류체계)가 나오면 규제수위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사업과 시너지 기대

SRI채권 인증사업이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신용평가사들은 신용등급을 평정하기 위해 기업에게 추가 자료를 원활히 요청할 수 있는 데다 강도 높은 인터뷰도 진행할 수 있다. 비록 신용평가부문과 SRI채권 인증사업을 진행하는 투자평가부문이 분리돼 있지만 대상은 일치한다는 점에서 시너지가 나지 않을 수 없다.

업계 관계자는 “발행사는 신용등급과 인증등급을 놓고 신용평가사에 빠르게 대응하면서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다”며 “신용평가사도 신용등급 평정과 SRI채권 인증평가를 둘다 진행한다면 발행사에게 선택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발행사가 일반 공모채를 발행하려면 신용평가사 두 곳에서 본평정을 받아야 한다. SRI채권 인증은 관리체계에 대해 한 곳의 외부기관에서 한 번만 인증을 받으면 된다. 사후보고는 외부기관에서 인증받는 것을 환경부가 장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본평정을 받을 겸 SRI채권 인증과 사후보고를 일괄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신용평가사를 인증기관으로 선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편의성은 신용평가사들이 회계법인 등 선발주자를 추격할 핵심 동력이기도 하다. 국내 최초로 SRI채권 사전인증을 시작하며 다수의 공기업 고객을 확보한 삼정KPMG를 비롯해 EY한영, 딜로이트안진, 삼일PwC 등 국내 빅4 회계법인은 이미 공기업과 금융사를 중심으로 트랙레코드를 확보했다.

◇바이든 당선, 사업시계 돌렸다

한국신용평가는 일찌감치 관련 사업을 시작한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를 모회사로 두고 있어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나이스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까지 SRI채권 인증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결정적 계기는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이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2020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글로벌 ESG 정세는 잠잠한 편이었다.

그러나 온실가스 배출 세계 1위인 중국이 지난해 9월 2060 탄소중립을 선언한 데 이어 일본도 11월 2050 탄소배출 제로를 발표했다. 여기에 올해부터 미국에 바이든 정부 시대가 열리면서 결정적으로 불씨를 당겼다. 바이든 당선인은 글로벌 ESG투자에 앞장서고 있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 임원을 국가 경제팀에 대거 참여시켰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전후로 글로벌 ESG 정세가 급격하게 바뀌고 정부의 그린뉴딜, 탄소중립 2050 선언, 녹색채권 가이드라인 발표 등도 맞물리면서 사업이 빠르게 구체화했다”며 “당초 시간을 넉넉히 두려 했지만 국내 기업들도 술렁이면서 사업 개시를 앞당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 SRI채권 시장은 올해 1월부터 요동치고 있다. 현대제철을 비롯해 롯데글로벌로지스, 현대오일뱅크 등 비금융 민간기업의 SRI채권 발행 소식이 잇따른다. 지난해와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상장종목 기준(한국주택금융공사, 한국장학재단, 예금보험공사 제외) 원화 SRI채권 시장은 2018년 6000억원, 2019년, 3조1000억원, 2020년 6조10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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