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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 파킹 제동]채권형 랩·신탁 신뢰도 타격…기업 조달 시장까지 경색③상품서 자금 빼는 기관들 "올바른 생태계 구축이 우선"

윤기쁨 기자공개 2023-06-14 08:24:42

[편집자주]

KB증권과 하나증권간 채권 거래에서 촉발된 이른바 '돌려막기' 이슈가 업계 전반으로 다시 번지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오랜 기간 지속된 관행이라고 항변하고 있지만 당국은 증권사별로 순차 검사를 진행하는 등 불법성 여부를 따져묻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은 불건전 행위를 바로잡기 위한 움직임에 찬성하면서도 자칫 시장 위축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더벨은 뿌리 깊게 박힌 과거 채권 거래 관행들과 향후 나아갈 방향에 대해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6월 13일 06:3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증권사간 통정매매로 의심받는 채권 거래 행위가 또다시 수면위로 올라오면서 금융투자업계에는 묘한 긴장감이 일고 있다. 증권사 랩어카운트(Wrap)와 신탁 상품에 대한 불신이 CP(기업어음)와 단·장기채 등 채권시장 전체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금융감독원이 자전거래, 파킹 등 불건전 영업행위에 대한 대대적인 전수조사에 나선 가운데 당분간 증권사의 랩·신탁 시장 축소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단기간 고속 성장해오면서 핵심 비즈니스로 자리잡은 만큼 기반 및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번 기회로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악습이 사라져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모험자본 공급과 다양한 상품 제공이라는 순기능은 무시된 채 랩·신탁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기업 자금 조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발행시장 축소로 이어질 것이란 주장도 제기된다.

◇증권사 랩·신탁에서 발빼는 큰손들…신뢰도 타격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초까지 국내 증권사들의 일임 수탁고(금전·재산·종합재산 신탁 규모 총합)는 272조원으로 이중 채권형(CP 등 포함)은 66조원을 기록했다. 최근 묵인돼 왔던 위법 채권 거래 관행들이 공론화되고 금융감독원의 전수조사가 본격화되면서 몇달새 시장은 쪼그라들었다.

현재 전체 신탁 규모 채권형은 5월초 대비 각각 259조원, 63조원으로 각각 5%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297조원, 76조원)과 비교하면 12%, 17% 감소한 수치다. 업계는 신탁으로 운용되는 채권형 상품 중 약 20조원 정도가 만기 미스매칭을 위한 자전거래, 파킹에 활용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통상 랩·신탁 상품에 가입하는 고객은 기업과 기관투자자가 많다. 현행법상 원금 보장형이 아니지만 목표수익률을 보장받기 때문에 암암리에 사실상 보장형처럼 여겨졌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시중 금리보다 높은 이자 수익을 거둘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맞춤형 설계가 가능해 입맛에 맞는 우량 채권과 CP 등을 편하게 거래할 수 있었다.

특히 공공 기금 등을 운영하는 연기금 입장에서는 장부가 평가 방식이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시중금리를 적용하지 않아 환매할 때를 제외하고 매 분기마다 평가손익을 계산하거나 반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증권사들끼리 탄탄하게 형성된 네트워크(파킹)로 원활한 유동성 공급이 가능하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지난해 유례없는 금리인상기로 상황이 급변했다. 경영 상황이 악화된 일부 기업과 기관들이 신탁에 넣은 단기 자금에 대한 환매를 요청했지만 거부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또 환매하는 과정에서 장부가와 현저히 차이가 나는 평가손실에 상당수가 자금을 빼낸 것으로 전해진다.

경영상황이 악화된 일부 기업의 경우 신탁에 넣은 자금이 손실을 본데 이어 일부는 유동화 실패로 환매마저 거부당하면서 증권사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 이에 업계는 기업과 기관 등 대형 자금은 자산운용사가 운용하는 단기금융 상품인 법인용 MMF(머니마켓펀드) 등 다른 수익처로 옮겨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실제 MMF 설정액은 1월 151조원에서 이달 177원으로 17% 급증하며 상반된 흐름을 보였다.

◇기업 조달 시장 경색 우려도...유동화 어려움

문제는 증권사 랩·신탁 사업에 대한 불신이 채권시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채권형 신탁 상품 규모 감소는 채권 발행량과도 연결된다. 기업들은 주로 CP, 장·단기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해왔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일련의 사태로 자금을 빼내면서 유동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습이다.

강원도 레고랜드 디폴트사태가 발생한 지 불과 9개월 정도 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위기감은 재차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미 지난해부터 이어진 기준금리 인상 기조로 자금 조달 비용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유사 사례로 파산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 시장 경색은 기업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이다.

레고랜드 사태의 경우 정부가 채권시장안정펀드 등을 활용해 자금을 적극적으로 투입했다. 산업은행이 회사채와 CP 등을 매입하면서 시장 안정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 규모가 크고 음지에서 산발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범정부 차원에서 해결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업계는 금융 조사 당국의 무조건적인 규제와 처벌보다는 시스템이 올바르게 작동할 수 있도록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칫 잘못된 칼날이 증권사와 기업 생태계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현재 CP 시장만 해도 150조가 넘는데 기업들이 주요 자금조달 창구로 사양하고 있는 수요처"라며 "증권사도 운용 주체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당장 없애버리기 보다는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잘 작동하도록 하는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거래가 없어지고 시장이 경색되고 있는게 피부로 느껴지고 있는데 작년엔 레고랜드발이라면 올해는 금융감독원 조사에 따른 경색이 아닐까 싶다"며 "무엇보다 시장 안정화와 자금 조달 경색 해소에 중점을 두고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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