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파킹 조사 발표 앞두고…증권사들 자정작업 ‘분주’ 하나증권 시가평가로 전환, 듀레이션 가이드라인 만들어
황원지 기자공개 2023-12-15 08:23:21
이 기사는 2023년 12월 13일 07:5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금융감독원이 올해 안에 랩신탁 채권파킹 사태 조사결과를 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증권사들이 자정작업에 힘쓰고 있다. 자전거래와 같이 명확히 불법인 사안을 제외하더라도, 업계에서 먼저 이번 사태를 불러일으킨 원인을 찾아 개선한다는 차원이다. 장부가평가를 해왔던 관행을 시가평가로 바꾸고, 내부 듀레이션 규정을 짧게 바꾸는 방식 등이 거론된다.◇채권파킹 사태 뇌관 ‘미스매칭 운용+장부가평가’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올해 안에 랩신탁 불건전 영업행위와 관련된 조사 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5월부터 증권사 랩, 신탁 업무실태에 대해 대대적인 집중점검을 진행했다. 하나증권·KB증권·한국투자증권·유진투자증권·SK증권 등이 대상이 됐다. 올해 안에 조사 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다만 결과에 따른 징계 수위 결정에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올해 초 불거진 랩신탁 자전거래, 채권파킹 논란은 지난해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촉발됐다. 증권사들은 그간 랩 신탁 상품에서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만기 미스매칭 전략을 사용했다. 예를 들면 1년짜리 랩어카운트에 만기가 2년인 채권을 담아 이자율을 타 상품보다 높이는 식이다. 1년이 지나 환매 시기가 다가오면 다른 증권사에 2년짜리 채권을 되사오는 조건으로 맡긴다(파킹). 그리고 이전에 다른 상품에서 파킹해뒀던 채권을 장부가 그대로 되사오면서(자전거래) 자금을 마련해 돌려준다.
꾸준히 다음 고객이 들어오고, 금리가 하락하는 시기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금리 인상에 과거에 사둔 장기채보다 최근 나온 단기채 금리가 더 높아지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고객들은 수익이 더 좋은 채권으로 눈을 돌렸다. 동시에 이전에 사뒀던 채권 가격이 하락하면서 평가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고객들의 환매 요청이 빗발치는 가운데, 투자한 채권은 손실 상태라 돌려줄 대금이 부족해지면서 논란이 발생했다.
업계에서는 미스매칭 운용과 장부가평가가 결합되면서 문제가 커졌다고 본다. 단기 자금인 랩, 신탁에 과도하게 만기가 긴 채권을 편입한 미스매칭 전략이 1차 뇌관이다. 올해 논란이 생기기 전까지 업계에서는 1년짜리 랩에 7년 만기 여전채를 편입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고 전해진다. 상품과 랩, 신탁의 듀레이션 차이가 클수록 유동성이 확보되지 않는다. 지난해처럼 금리 방향이 돌변하면 민첩한 대응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관행인 장부가 평가가 2차 뇌관으로 꼽힌다. 시중금리가 상승하면 이전에 발행했던 채권의 가격은 하락한다. 하지만 증권사들은 이를 장부가로 평가, 거래하면서 손실을 숨겼다. 사온 가격대로 고객에게 고지하면 당장의 손실은 '0'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손실은 계속 불어났고, 결국 환매 요청 때 밝혀지면서 문제가 커졌다. 랩, 신탁 운용에 대한 신뢰도 떨어졌다.
랩, 신탁 운용업계 관계자는 “미스매칭 운용과 장부가평가가 결합하면 문제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만약 만기 매칭형 상품이라면 장부가로 평가하더라도 수익을 그대로 고객에게 주면 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며 “미스매칭형이라도 매번 시가평가를 한다면 손실이 그때그때 반영, 고지되므로 투명하다”고 말했다.
◇증권업계 선제적 자정작용 힘써…하나증권, 내부 가이드라인 만들어
증권업계에서는 자정작용에 힘쓰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아직 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으나, 선제적으로 문제가 된 구조를 해소한다는 차원이다. 이미 금융감독원이 조사를 마친 가운데 증권사에서 먼저 자정에 나선다면 추후 징계 수위 결정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하나증권이 가장 선두에 섰다. 하나증권은 내부적으로 랩, 신탁 운용에 있어 듀레이션 규정을 신설했다. 신탁은 상품보다 만기가 6개월 이상 긴 채권을 담지 않고, 랩어카운트 상품은 편입 자산 평균 만기를 6개월 이내로 유지한다. 6개월 이내라면 가격 출렁임이 크지 않아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동시에 모든 자산을 매각할 때 뿐만 아니라, 분기 단위로 시가평가해 고객에게 고지하고 있다. 잠시 상품 판매를 중지한 데에서 나아가 가이드라인을 신설, 장기적인 관점에서 내부통제를 강화했다는 평가다.
한국투자증권은 올해 1월부터 시가평가로 내부 기준을 바꿨다. 작년 레고랜드 사태 이후 손실 위험이 커지자 선제적으로 대응했다는 전언이다. 다만 듀레이션과 관련해서는 고객의 요청에 따라 진행하고 있다. 고객이 만기 미스매칭, 매칭 전략을 선택하면 이에 맞는 전략의 상품을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교보증권은 대부분 신규 상품을 만기매칭형으로 채우고 있다. 미스매칭형은 고객 요청이 아닌 이상 지양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채권 매매 시에도 장부가평가가 아니라 시가평가를 진행해 문제 발생 여지를 줄이고 있다. SK증권 또한 올해 1월부터 미스매칭 상품은 아예 판매를 중지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만기 미스매칭 랩, 신탁에 대한 논란이 크게 터진 데다, 채권 금리가 충분히 높아 매칭형으로도 충분한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며 "미스매칭형보다는 만기매칭형 상품을 찾는 고객이 훨씬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NH투자증권은 큰 틀에서 과거의 시스템을 유지하되, 일부 개선이 이뤄졌다. 이전에는 대부분 증권사들이 고객이 장부가평가를 요청할 경우엔 장부가로, 시가평가를 요청할 경우엔 시가로 평가를 진행했다. NH증권은 지금도 같은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장부가 평가를 요청하더라도 시가평가 자료를 함께 제공하도록 일부 개선을 진행했다. 듀레이션 측면에서는 타 증권사와 비슷하게 신규상품으로 만기매칭형만을 내놓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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