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11월 13일 07:5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불닭볶음면 브랜드가 라면 원조기업이 따라 할 정도 된 것에 대한 뿌듯함과 매운면 시장의 파이가 커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동시에 유통망을 활용해 시장을 잠식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위기감도 느끼고 있습니다."이달 초 일본 도쿄역 부근의 삼양재팬 사무실에서 홍범준 법인장을 만났다. 매운맛에 취약한 일본에서 불닭볶음면이 인기를 끈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워 도쿄로 휴가를 떠난 김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원조의 원조'인 닛신(日淸)식품이 유사 제품을 내놓은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묻자 돌아온 답변이다.
일본은 라면의 종주국이라 불린다. 1958년 닛신식품 창업자인 안도 모모후쿠가 인스턴트 라면을 최초로 개발한 영향이다. 라면과 수프를 제조하는 기술은 일본이 앞섰기 때문에 한국 라면의 원조인 삼양식품의 창업주도 일본으로 건너갔다. 묘조(明星)식품에서 제조법을 전수받아 '삼양라면'이 탄생했다.
세월이 흘러 묘조식품은 닛신식품에 인수됐다. 큰 틀에서 보면 닛신 식품의 기술이 삼양라면의 뿌리인 셈이다. 이런 역사적인 관계가 있는 두 기업의 경쟁 구도가 형성됐다. 지난해 닛신식품이 불닭볶음면을 모방한 제품을 출시하면서다. 해외에서 한국 라면 제품을 베끼는 사례는 종종 있었으나 업계 1위가 인기 제품을 대놓고 따라하면서 화제가 됐다.
닛신식품은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겉포장을 따라 했다. 라면 포장지의 색깔이나 캐릭터를 배치한 것도 비슷하다. 심지어 불닭볶음면보다 더 크게 한국어로 '볶음면'이라고 표기했다. 겉은 따라 했지만 맛은 차이가 분명했다. 현지에서 닛신식품의 제품은 너무 맵고 달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양식품은 이 포인트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애매한 맛의 닛신식품 라면을 접한 소비자들이 오히려 원조 제품을 찾고 있다. 모방 제품이 나온 것은 아쉽지만 닛신식품의 합류를 통해 일본에서 매운맛이 새로운 카테고리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삼양식품이 표절에 공식적으로 대응하지 않은 여러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불안 요소는 여전히 많다. 일단 모방 제품의 가격이 더 싸다. 일본 전 지역에 걸쳐 구축된 유통망으로 시골 지역 곳곳에서 닛신식품의 불닭볶음면만 판다고 봐도 무방하다. 인터뷰 후 도쿄 인근의 작은 도시인 오다와라시에 위치한 '돈키호테'를 방문해 매대를 살펴봤는데 정말로 닛신식품의 제품만 진열돼 있었다.
트렌드에 둔감한 일본 특성상 도심과 떨어질수록 불닭볶음면이 닛신식품의 제품이라고 아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닛신식품이 마음만 먹으면 시장을 잠식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게 무슨말인지 피부로 느껴졌다. 일본인 입맛에 맞는 '한국식' 식품을 전 세계에 깔린 유통망을 활용해 수출을 한다면 국내 식품 업계에 또 다른 리스크가 될 것 같아 우려감도 생겼다.
어찌 보면 일본에서 삼양재팬과 닛신식품의 경쟁은 '다윗과 골리앗'의 서사와 맞닿아있다. 국내에서는 삼양식품의 인지도가 높지만 일본에선 설립 6년 차밖에 안된 작은 기업 즉 다윗 포지션이다. 물리적으로 강하지 않아도 용기와 지혜로 골리앗을 이긴 다윗의 스토리처럼 삼양식품도 일본에서 사업의 묘를 발휘해 불닭볶음면 브랜드 원조의 자존심을 지키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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