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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랩 30년의 명암]실패만 맛본 해외 진출 20년, 중동에선 다를까③1999년 세운 로드맵 전면 '백지화'…새 진출국 사우디, 성공 과제 '첩첩산중'

최현서 기자공개 2025-01-21 08:06:38

[편집자주]

국내 보안업계 문을 처음 연 안랩이 창립 30주년을 맞이했다. 안철수 의원이 의대 박사 과정, 군의관, 교수를 거치며 직접 만든 백신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출범시킨 안랩은 이제 국내 보안업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됐다. 다만 지속해 시도했던 다른 사업 영역으로의 확장은 지금껏 별다른 성과가 없다는 게 약점이다. 주가 측면에서 봐도 실적과 보안시장의 성장성보다 '안철수 테마주'란 꼬리표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모습만 보이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안랩이 이룬 성과를 짚어보고 현재 과제와 미래 성장 전략은 무엇인지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5년 01월 15일 07시17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내 보안 시장의 문을 연 안랩은 설립 무렵부터 종합 보안 기업으로의 확장은 물론 해외 시장으로 영역을 넓히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일본과 중국을 거쳐 미국으로 나아간다는 게 핵심 구상이었다.

하지만 일본 법인은 사업 초부터 투자금을 전액 날리는 상황을 겪었다. 명맥만 유지한 채 최근까지도 수익성을 높이지 못하고 있다. 중국 법인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궁극적인 해외 사업 목표지로 삼았던 미국 시장에선 설립했던 법인을 아예 청산했다. 초창기 계획이 완전 백지화된 셈이다.

이런 가운데 안랩은 8년 만에 새 해외 법인 '라킨(Rakeen)'을 세우며 세계 시장에 다시 한 번 도전장을 내밀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부 펀드 'PIF'의 지원도 받았다. 하지만 극복해야 할 과제가 산적한 상황이다.

◇아시아 거쳐 미국 진출 확장 포부

안랩은 출범 초창기부터 종합 보안기업을 꿈꿨다. 아울러 글로벌로 진출하겠다는 구상도 함께 제시했다. 창립 4년이 지난 1999년 무렵 세운 계획이다.

자신감이 있었다. 근원은 내수 시장으로부터 인정받은 기술력이었다. 2000년 안랩은 국내 보안 시장의 56.4%를 점유하고 있었다. 1995년 설립 이후 부동의 1위였다.

해외 법인을 세우기 전 판매 거점을 확보하기로 했다. 1999년 일본 도쿄, 2000년 중국 베이징 지사를 글로벌 진출의 시작점으로 삼았다. 본격적으로 해외 사업을 진출하기 전에 가능성을 따져보겠다는 생각이었다. 아시아 시장에서 사업 노하우를 다진 뒤 가장 큰 보안 시장인 미국에 진출할 예정이었다.

일본에서 성공 가능성을 맛보기도 했다. 안랩은 2000년 무렵 자회사 '자무스'를 통해 PKI(공개 키 기반 구조) PC 보안 제품 '앤디'를 국내와 일본에서 서비스하고 있었다. 앤디는 국내보다 일본에서 더 좋은 반응을 얻었다. 정보 유출에 더 민감한 일본 문화가 결합된 결과였다.

이를 통해 얻은 자신감으로 일본과 중국, 미국을 넘어 더 많은 국가에 진출한다는 구상을 세웠다. 기존 계획보다 글로벌 사업의 판을 더 키우기로 했다.

안랩은 2000년 분기보고서를 통해 "말레이시아 정부 기관에 보안 컨설팅을 하는 등 호주, 브라질 및 기타 국가에도 제품 및 서비스 수출을 진행 중이거나 추진하고 있다"며 "국내 시장에서 검증된 기술력과 신뢰, 그리고 다양한 제품군을 통해서 당사는 일본 및 중국 등 해외시장에서도 상당한 시장경쟁력을 가질 수 있으리라 전망한다"고 설명했다.

◇기대와 다른 성적, '사우디 JV'로 노리는 반전

해외 지사를 통해 성공 가능성을 확신한 안랩은 2002년 2월, 2003년 4월 각각 일본과 중국에 법인을 세웠다. 2002년 최고운영책임자(COO) 직책을 신설하고 일본팀과 중국팀을 COO 직속 부서로 뒀다. 초대 COO는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을 이어 안랩을 이끌었던 고(故) 김철수 전 대표다.

안랩 2003년 전체조직도/출처=안랩 2003년 사업보고서

하지만 기대는 금새 무너졌다. 일본 법인의 경우 설립 첫 해인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연속 순손실을 기록했다. 2005년 누적된 손실로 인해 장부가액이 0원 처리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해 지분법 적용 중단 이후 발생한 손실 21억원까지 더하면 4년간 쌓인 적자는 29억원이 넘었다. 일본 진출 계획을 세웠던 초기와 완전히 다른 양상이었다.

이듬해 안랩의 추가 출자를 받고 기사회생한 일본 법인은 2006년, 2007년 순이익을 달성했으나 2008년 다시 적자전환했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4년 연속 순손실을 내는 등 최근까지도 수익성 제고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2년부터 2023년까지 순이익을 올린 해는 6년에 그친다. 누적 순손실 규모는 81억원이다.

중국 법인은 설립 이듬해인 2004년부터 2010년까지 눈에 띄는 제품을 내놓지 못했다. 7년 연속 순손실만 냈다. 중국 시장 특성상 국가저작권국, 공업정보화부 등에 제품을 등록하고 허가를 받는 과정이 오래 걸렸다.

2011년 개인용 제품인 'V3 라이트'를 중국 내에 서비스한 것을 계기로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순이익을 달성했다. 하지만 그 폭이 미미하다. 1억4400만원에서 9억3700만원 사이에 그친다.

종착지로 봤던 시장인 미국에서는 완전한 실패를 했다. 2013년 설립한 미국 법인은 3년만에 청산했다. 운영 내내 적자를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3년간 쌓인 적자 규모는 28억원에 달했다.

중국 법인의 체질 개선 계기가 됐던 V3 라이트와 함께 미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글로벌 보안 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렸다. 말레이시아, 호주로의 진출을 노렸던 계획도 조용히 사라졌다. 1999년의 계획이 완전히 틀어진 셈이다.

하지만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중동이다. 지난해 10월 새 해외 법인인 '라킨'을 사우디아라비아에 세웠다. 미국 법인이 청산된지 8년 만이다. 사우디 국부 펀드 'PIF'의 자회사 'SITE'와 안랩이 각각 지분 75%, 25%씩 갖고 있다. 안랩은 라킨을 통해 중동 시장에 맞는 자사 제품을 서비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사우디의 보안 시장은 전망이 밝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따르면 사우디의 보안 시장 규모는 2022년부터 연 평균 11.8%씩 성장해 2026년에는 6억3200만달러(9251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사우디에는 글로벌 시가총액 1위 보안기업 '팔로알토 네트웍스'를 비롯해 20년 이상 사우디 정부와 기업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하고 있는 자국 기업 '사이버리아(Cyberia)' 등의 경쟁사들이 오래 전부터 보안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사우디 내에서 발생한 데이터는 국내에 저장하도록 하는 '사이버보안규정(ECC, Essential Cybersecurity Controls)'도 극복해야 할 과제로 안고 있다.

강석균 안랩 대표(좌)와 사드 알라부디 SITE 대표(우)가 합작 법인 설립 계약 체결 후 악수하고 있다/출처=안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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