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사의 법칙]SM 인수 속 혼재된 흑·백기사 ‘카카오·하이브’[경영권 인수]①오래도록 눈독들인 SM, 내홍에 찾아온 기회…과도한 욕망, ‘승자의 저주’로
김현정 기자공개 2024-11-08 07:40:19
[편집자주]
백기사는 적대적 인수합병(M&A) 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기업 측에 선 '우호적 지분 인수자'를 의미한다. 혈연이나 가문 간 끈끈한 유대 관계를 바탕으로 한 아군의 성격을 띤 백기사도 있고 치밀한 전략적 셈법으로 무장한 백기사도 있다. 결국은 경영권 인수를 노린 케이스도 존재한다. 당사자도 아닌 자가 대규모 비용을 감내하며 경영권 분쟁에 뛰어든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THE CFO는 주요 경영권 분쟁 사례 속에서 백기사의 유형들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11월 04일 08:40 THE CFO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 분쟁엔 당사자 외 백기사와 흑기사들이 어지럽게 혼재했다. SM의 전 권력으로 대표되는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와 현 권력인 경영진 간 내홍에 카카오와 하이브라는 굵직한 기업들이 몸을 던졌다.애초에 카카오와 하이브의 개입 목적은 단 하나였다. 오랜 염원인 SM을 갖는 것이었다. 경영권 인수를 목적으로 한 백기사 사례의 대표적 케이스다.
카카오는 지분이 없는 SM 경영진이 최대주주를 대상으로 벌이는 싸움에서 새로운 주인이 되길 자처했다. 카카오가 '내수용 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비욘드 코리아'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SM 인수'가 주요 구심점이 될 것으로 봤다. 더불어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성공적 IPO(기업공개)에서도 SM이 절실했다.
다만 카카오의 현재를 보면 SM 인수를 둘러싼 과열된 욕망이 지금의 뼈아픈 사법리스크를 낳았다는 말도 나온다. 카카오가 최종 승기를 쥐었지만 새로운 의미의 '승자의 저주'에 빠졌다.
◇‘SM=이수만 제국’의 몰락, 어떤 이에겐 '새로운 기회'
이수만 전 총괄은 SM엔터의 창립자로, ‘SM=이수만 제국’으로 불릴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30여년가량 엔터업계의 거물로 살아온 그를 향한 위협의 시작은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다. 2022년 초 지분 1%를 갖고 SM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주주 행동을 시작했다. 특히 이수만 전 총괄이 개인 회사인 라이크기획을 통해 SM의 총괄 프로듀서 계약을 맺어 음반기획 전권을 갖고 고액 자문료를 받은 것을 문제 삼았다.
2023년 초엔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SM과 라이크기획과의 부당거래, 지배구조 개선 등을 이유로 주주 대표 소송까지 예고했다. 이에 이성수·탁영준 SM 공동 대표가 소송 취하를 조건으로 얼라인이 제안한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수용했고 그 결과, '탈 이수만'을 골자로 하는 SM의 새 청사진이 발표됐다. 1%의 지분밖에 없는 행동주의 펀드가 1년 만에 SM 이사회를 장악하는 한편 이수만 전 총괄이 임명한 것과 다름 없는 두 공동대표도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렇게 이수만의 왕국은 저물어갔다.
여기에 더해 SM은 2023년 2월 7일 제3자 배정방식의 신주 123만주(1119억원)와 전환사채 114만주(1052주) 발행을 발표했고 'IT 공룡' 카카오가 이를 인수하면서 SM의 2대 주주로 올랐다.
쫓겨나다시피 한 이수만 전 총괄은 SM을 상대로 제3자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을 금지하는 가처분 신청을 냈고 이와 동시에 그의 지분 14.8%를 하이브에 4228억원에 매각했다. 자신이 일군 SM 왕국을 카카오에게는 절대 넘겨주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한달여 후 법원이 이수만 전 총괄의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카카오의 신주 인수는 무산됐고 SM은 하이브에 넘어가는 듯 했다.
◇SM IP 원한 카카오, '카카오엔터 IPO' 맞물려 SM 인수 절실
SM 인수전이란 링 위에 남게 된 것은 카카오와 하이브였다. 두 회사는 모두 사실 3년 전부터 SM을 인수하기 위한 물밑 작업을 벌여왔다. 카카오는 오래 전부터 SM이 보유한 지식재산권(IP)을 원했다. 카카오는 엔터테인먼트가 주업종이 아니지만 향후 플랫폼, IT 산업이 엔터테인먼트와 융·복합화해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무엇보다 업계는 2023년 들어 카카오에게 SM 인수가 절실했던 이유를 카카오엔터의 IPO와 연결 짓는 시선이 많았다. 카카오엔터는 2019년부터 상장이 거론돼온 '대어급' 기업이다.
카카오는 2023년 초 사우디국부펀드와 싱가포르투자청으로부터 1조2000억원 규모의 투자금을 유치했는데 이 가운데 빈 살만 펀드로 불리는 사우디국부펀드는 특히 SM 인수 여부에 관심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건넨 1조2000억원 중 6000억원은 아예 인수합병 목적으로 명시했다. 시장에선 이들 기관투자자가 투자 조건으로 '수년 내 상장'을 제시했을 것으로 바라봤다. 이에 따라 카카오가 투자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SM 인수를 지렛대 삼아 카카오엔터 IPO에 도전할 것이란 얘기가 많았다.
카카오는 2021년부터 이수만 전 총괄의 지분을 받아오는 것으로 수차례 얘기를 진전시키다가 2023년 SM의 신주를 인수하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카카오는 이수만 전 총괄의 소송 제기로 신주 인수가 무산되고 나서도 포기하지 않고 SM 주식에 대한 공개매수까지 가기로 했다.
◇하이브 '독보적 강자' 발돋음 기회, 카카오 승기 거머쥐었지만...
이수만 전 총괄에게는 백기사이고 SM 경영진 입장에서는 흑기사인 하이브도 오래 전부터 SM에 눈독을 들여왔다. 하이브는 2020년부터 이수만 전 총괄에게 접촉해 지분 인수 가능성을 타진해 왔다. 상장 후 대규모 자금을 쥐게 되자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고 이후에도 유수의 대형 증권사와 함께 SM엔터 공개매수를 검토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시엔 이수만 전 총괄이 한사코 거절했다. 네이버, 카카오, CJ와 협상은 했지만 후발주자인 하이브에는 넘길 의향이 없다고 언급해 왔다. 이수만 전 총괄이 궁지에 몰리자 하이브를 백기사로 선택한 셈이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K팝'이란 장르 자체가 더 확실히 글로벌 시장에서 인지도를 높이려면 SM와 하이브가 한 지붕 아래 놓여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더불어 수많은 아이돌 그룹을 배출해낸 SM을 인수한다면 하이브는 시너지 효과로 엔터업계의 독보적인 강자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누구에겐 백기사이고 누구에겐 흑기사인 두 기업은 각자의 인수 이유를 갖고 공개매수전에서 한 판 붙게 된다. 결과는 카카오의 승리였다. 하이브는 먼저 단행한 공개매수에서 12만원을 인수가로 내걸었는데 공개매수 도중 의문의 세력이 나타나 SM 주식을 대량으로 매수하면서 주가가 14만원에 육박하는 일이 벌어졌다. 14만원에 팔 수 있는데 하이브에 12만원을 받고 SM 주식을 내줄 이는 없었다. 당시 하이브가 개인주주로부터 확보한 주식은 4주에 불과했다.
며칠 후 카카오는 주당 15만원의 공개매수를 진행했고 여기서 SM 지분율 40%(카카오 20.7%, 카카오엔터 19.1%)를 확보했다. 이렇게 SM의 최대주주란 타이틀은 카카오가 얻게 됐다.
하지만 현재 카카오의 상황을 놓고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승기를 거머쥐었지만 심각한 내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카카오그룹은 공개매수 과정이 문제가 돼 오너 구속이라는 사법리스크에 휘말렸다.
검찰은 김범수 위원장이 그룹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로서 시세조종 계획을 사전에 보고받아 승인했고 카카오 임원들은 조직적으로 자금을 동원해 SM 주가를 조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31일 재판부가 김범수 위원장의 보석을 허가해 구속은 풀렸지만 재판은 여전히 장기화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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