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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금융 새 길을 묻다]다시 보는 금산분리…4% 룰 향방은[규제 완화]⑬빅블러 시대 개정 필요 한 목소리…"빅테크와 형평성 맞춰야"

이기욱 기자공개 2023-09-13 08:06:10

[편집자주]

인공지능이 금융상품을 추천하는 시대가 열렸다. 빅테크들이 금융업에 진출하고 애플 통장까지 나왔다. 애플 통장엔 석달만에 100억달러, 12조원의 자금이 몰렸다. 이종산업간 결합은 물론 영역과 경계가 무너지면서 금융 패러다임이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 한국 금융은 어디로 가는가. 여전히 규제와 관치의 테두리 안에서 더딘 변화를 보이지만 조금씩 새 길을 찾아가고 있다. 더벨은 주요 금융사 및 연구소 협회의 브레인들을 찾아 한국 금융 산업의 현 주소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묻고 그들의 고민과 변화 방향과 속도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이 기사는 2023년 09월 07일 07:1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금산분리는 국내 금융시장의 가장 대표적이고 강도 높은 규제 중 하나다. 산업 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은행을 제외한 보험사, 증권사, 여신전문금융사 등의 소유는 허용되기 때문에 '은산분리'라고도 불린다.

오랜 기간 금산분리 원칙은 불가침의 성역과 같이 여겨져 왔다. 보수·진보 정권을 가리지 않고 완화 논쟁은 꾸준히 있어 왔으나 큰 틀에 변화는 없었다. 산업간 위험 전이, 불공정 경쟁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컸다.

2010년 중반부터 조금씩 분위기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핀테크 및 빅테크 기업의 출현으로 산업간 경계가 모호해지는 '빅블러' 현상이 심화되는 중이다.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4% 제한을 풀어주는 파격적인 시도도 있었다. 현 정부 역시 빅블러 시대에 맞춰 금산분리를 완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금융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금산분리 완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특히 비금융사의 금융업 진출에 맞춰 금융사의 비금융업 진출도 적극 허용돼야 한다는 지적이 다수 제기되고 있다. 최소한 빅테크와 형평성은 맞춰야 한다는 주문이다.

◇지분 한도 9%로 늘었다가 다시 축소…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등 시도

금산분리 완화 논쟁의 역사는 20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8년 17대 대통령에 오른 이명박 전 대통령은 후보 당시 주요 공약 중 하나였던 금산분리 완화를 강력하게 추진했다. 당시 여당이었던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역시 빠르게 관련 법 개정을 시도했고 이듬해 5월과 7월 각각 은행법 개정안과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산업자본이 은행지주 주식(의결권 포함)을 9%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당시 업계에서는 삼성은행 설립 또는 산업은행 민영화 등을 기대하는 시선들도 많았다.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시행령으로 산업자본의 자기자본 기준 등을 강화하는 보완책이 마련됐고 결과적으로 은행 지분 인수의 매력도가 줄어 큰 변화는 이끌진 못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오히려 금산분리 규제가 강화됐다. 2010년대 초반 발생한 저축은행 사태로 인해 산업자본의 금융사 보유를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렸다. 결국 2013년 금융지주법 및 은행법이 다시 개정됐고 산업자본의 은행 의결권 지분 보유 한도가 4%로 줄어들었다. 이때 정해진 의결권 4% 룰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2010년 중반부터 다시 규제 완화에 대한 요구가 늘어났다. 디지털 전환 가속화와 핀테크·빅테크 기업 출현으로 금융업과 IT산업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한 시점이다. 금융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IT기업의 은행 지분 보유를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됐고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격렬한 찬반 논쟁 끝에 2018년 특례법이 통과됐다.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산업자본의 지분 보유 한도를 34%까지 허용됐고 이는 케이뱅크, 카카오뱅크, 토스뱅크 탄생의 기반이 됐다.

현 정부 역시 금산분리 완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7월 취임 일성으로 금산분리 완화를 약속했다. 애초에 금융위는 지난달 28일 제9차 금융규제혁신회의를 통해 금산분리 완화 방안을 논의·발표할 예정이었지만 돌연 연기했다.

안건 추가 보완 등이 연기 이유로 알려졌다. 최근 새마을금고, 경남은행, 롯데카드 등 각종 금융 사고로 금산분리 완화 안건이 정책 후순위로 밀릴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하지만 현 정부 임기 내 완화 기조는 유지될 전망이다.

◇금융사의 비금융업 진출 허용 필요…불공정 경쟁 부작용 우려는 여전

금융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금산분리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어느 정도 형성돼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그 방향성에 대해 많은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금까지 금융당국은 비금융사의 금융업 진출에 초점을 맞추고 규제를 완화해 왔다. 금융전문가들은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 금융사의 비금융업 진출도 적극 허용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은행연합회는 "전 세계적으로 금융과 비금융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빅블러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며 "금산분리 제도도 이에 맞춰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재까지의 규제 완화는 산업의 은행 진출은 허용하되 은행의 산업진출은 허용하지 않는 불균형적인 구조로 진행돼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ICT플랫폼의 경우 금융회사에 대한 소유나 지배가 없이도 막강한 시장영향력을 바탕으로 금융회사들을 사실상 플랫폼에 종속시켜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는 방향으로 금산분리 규제 개편이 추진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강조했다.

여신금융협회는 "대규모기업집단의 금융회사 보유에 있어서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금융회사의 비금융 진출에 있어서는 완화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지주 산하 연구소는 "현재 금산분리 완화가 논의되는 부분은 재벌에게 은행 소유를 열어주겠다는 것이 아니다"며 "레거시 금융사와 빅테크 경쟁으로 촉발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해 금융회사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부수업무 또는 자회사 범위를 확대한다는 측면"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동일 기능-동일 규제' 차원에서 금융회사에 대한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금산분리 규제 완화가 국내 금융사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해외에 나가서 투자하려면 기본적으로 자본력을 갖춰야 한다"며 "비금융기업이랑 같이 글로벌 진출을 추진하면 자본력이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물론 금산분리 완화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조혜경 금융경제연구소장은 "금산분리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며 "금융기관 자체가 차주 스크리닝 모니터링, 대출 대상 기업을 선별하고 감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1차적으로 기업에 대한 평가, 감시, 선발 기능을 시장에서 금융기관이 하고 있는데 금산분리 완화되면 응시자가 시험감독관이 되는 구조가 돼버린다"고 지적했다.

그는 "재벌 기업이 은행 가지고 있으면 (은행을 통해) 다른 기업의 정보를 모두 갖게 되는 것"이라며 "모든 경쟁업체 정보를 다 보게 되는데 이는 다른 기업들에게 불합리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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