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풍향계]체력 비축하는 SK에너지, '1.3조 순현금' 활용처는지난해 순현금 상태 접어든 뒤 규모 확대, 보유량 더 늘어날 듯
김위수 기자공개 2024-09-23 08:12:56
[편집자주]
유동성은 기업 재무 전략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다. 유동성 진단 없이 투자·조달·상환 전략을 설명할 수 없다. 재무 전략에 맞춰 현금 유출과 유입을 조절해 유동성을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한다. THE CFO가 유동성과 현금흐름을 중심으로 기업의 전략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9월 19일 16:0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SK이노베이션의 정유업 자회사 SK에너지가 현금 보유량을 크게 늘리고 있다. 외부 지출을 줄이면서 본업을 통해 창출한 현금을 쌓고 일부는 차입금 감축에도 활용 중이다. 그 결과 SK에너지는 지난해 회사가 설립된 이후 처음으로 순현금상태로 전환했고, 올 상반기에는 그 규모가 1조3000억원까지 확대됐다.SK이노베이션 및 계열사들은 배터리 자회사 SK온에서 불거진 재무 이슈로 곤혹스런 상황에 처해있다. SK에너지에 쌓인 현금 활용법에 관심이 모이는 이유다.
◇SK에너지, 현금비축 '사활'
SK에너지가 현금성자산을 쌓을 수 있었던 가장 큰 배경은 정유사업에서 비롯한 든든한 현금창출력 덕분이다. 2020년 이례적으로 1조원여의 대규모 적자를 냈지만 그 이후 SK에너지는 준수한 실적을 기록해왔다.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을 살펴보면 2021년에는 1조1919억원으로 나타났고, 2022년에 3조862억원에 달했다. 지난해에는 기저효과 및 시장상황의 영향으로 EBITDA가 전년 대비 70% 줄어든 8928억원이었지만 이 역시 절대적으로 보면 적은 수치는 아니다.
SK에너지 자체적으로도 현금 비축을 위한 지출 관리에 집중했다. 우선 모회사로 보내는 배당금을 끊었다. SK에너지는 버는 돈 중 많은 금액을 100%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에 배당해 왔다. EBITDA가 1조7000억원에 달했던 2017년에는 무려 1조4000억원의 배당을 집행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SK에너지의 배당은 2019년이 마지막이었다. 2020년에는 대규모 적자가 났고, 이듬해 실적이 크게 개선됐음에도 배당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 시기부터 SK이노베이션 및 각 계열사들의 사업전환이 본격적으로 이뤄진 만큼 SK에너지도 자체적인 신사업을 위해 실탄을 모은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들어서는 운전자본투자 관리에 심혈을 기울여 실질적인 현금흐름을 만들어냈다. 1년여간 안정적인 흐름을 보인 유가추이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지난해 SK에너지의 운전자본투자금은 마이너스(-) 3조1283억원으로 나타났다. 매출채권 감축과 매입채무 확대로 유동성 여유가 늘어났다. 재고자산 부담 역시 크게 줄었다.
결과적으로 SK에너지는 지난해에만 잉여현금흐름(FCF)으로 2조8669억원을 만들어냈다. 회사 설립 이후 가장 큰 FCF 규모다.
◇'1.3조' 순현금 더 늘어날까
이같은 흐름은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올 상반기 SK에너지의 EBITDA는 6327억원으로 호조를 보였다. 이 기간 자본적지출(CAPEX)는 2000억원 미만으로 제어됐고 운전자본투자금은 마이너스(-) 5818억원으로 나타났다. 아직 상반기이기는 하나 FCF 규모가 6566억원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사업을 통한 현금을 창출하고 지출 관리를 강화하며 SK에너지에는 이미 4조3099억원의 현금성자산이 비축돼있다. 마찬가지로 SK에너지 설립 이래 가장 큰 규모의 현금 보유량이다. 개선된 현금흐름 일부를 차입금 상환에도 활용, 2022년 4조3624억원이었던 총차입금은 올 상반기 기준 3조원 수준이 됐다. 현금성자산의 증가와 차입금 축소가 동시에 이뤄지며 순차입금이 크게 줄어들었다.
올 상반기 SK에너지의 순차입금은 마이너스(-) 1조2908억원으로 지난해 마이너스 순차입금 상태로 진입한 뒤 절댓값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남은 올해동안 SK에너지의 재무관리 기조가 이어진다면 현금 보유량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SK에너지가 포함된 SK이노베이션 및 계열사들은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대규모 투자가 거듭된 SK온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SK이노베이션내 이종 계열사 간 합병은 물론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도 진행되고 있다. '리밸런싱'의 방향은 SK온의 경쟁력 강화에 있다. 이를 위해 말그대로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SK에너지 역시 SK이노베이션 계열에 속하는 만큼 SK온의 지원군 역할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재계에서는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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