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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링PE, 해외자본 '먹튀' 논란 재현 관련업계 "기업가치 제고 없이 대규모 차입금 전가 후 차익 실현" 비판

정호창 기자공개 2017-07-24 09:14:43

이 기사는 2017년 07월 20일 08:3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홍콩계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 베어링프라이빗에쿼티아시아(이하 베어링PEA)가 인수 1년 반도 안돼 한라시멘트 매각에 착수한 데 대해 '먹튀' 논란이 일고 있다. 이렇다 할 기업가치(EV) 제고 노력 없이 단기간에 대규모 인수 차입금을 투자기업에 전가한 뒤 차익만 거두고 철수하려는 해외자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다.

국내 M&A 및 PE업계에서 한동안 잠잠했던 '먹튀' 논란이 이처럼 다시 불거진 것은 베어링PEA의 한라시멘트 재매각 시점이 시장 예상보다 훨씬 빨랐기 때문이다.

베어링PEA는 지난해 4월 국내 PEF 운용사인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이하 글랜우드PE)와 한라시멘트를 공동 인수했다. 새 주인에 오른 지 이제 겨우 1년여 밖에 지나지 않은 셈이다.

인수 당시부터 단기 투자를 약속하고 상환전환우선주(RCPS)와 전환사채(CB)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베어링PEA와 손을 잡았던 글랜우드PE는 당초 계획대로 투자 만기 시점인 지난 5월 투자금을 모두 상환받고 한라시멘트에서 손을 뗐다.

시장에선 글랜우드PE의 엑시트로 한라시멘트 단독 지배주주에 오른 베어링PEA가 이후 본격적인 기업가치 제고 작업에 나설 것으로 관측했다. 하지만 베어링PEA는 독자 경영구조가 완성된 지 불과 2개월 만에 매각 추진을 결정했다. 통상 PEF가 인수 후 3~5년 가량 투자기업의 실적 향상에 힘을 쏟아 몸값을 끌어올린 후 재매각에 나서는 점에 비춰보면 상당히 이례적인 선택이란 게 시장의 중론이다.

관련 업계에서 베어링PEA의 결정을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다른 이유는 한라시멘트의 우량한 재무구조를 단기간에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인수자금의 상당수를 금융권에서 조달한 차입금을 통해 마련한 뒤 특수목적법인(SPC)과 투자기업을 합병시켜 부채를 이전하는 '합병형 차입매수(LBO)' 전략이 만들어 낸 결과다.

한라시멘트는 베어링PEA에 인수되기 직전 해인 2015년 말 기준 1500억 원 이상의 순현금을 보유한 우량기업이었다. 부채비율은 40%에 불과했다.

베어링PEA의 품에 안긴 후 1년여가 지난 현재 한라시멘트가 보유한 현금성자산은 거의 소진됐다. 글랜우드PE의 CB와 RCPS를 상환하는데 사용됐기 때문이다. 한라시멘트 보유자금만으론 역부족이기에 베어링PEA는 금융권에서 2800억 원을 차입해 상환 재원을 마련했다.

베어링PEA는 한라시멘트 지배기업인 라코를 통해 해당 차입금을 조달했다. 이어 지난달 라코와 한라시멘트의 합병을 단행했다. 이에 따라 라코가 조달한 자금은 한라시멘트의 차입금으로 전환됐다.

베어링PEA는 이에 그치지 않고 이달 말 2000억 원을 금융권에서 추가 조달한 뒤 배당을 통한 자본재조정(Recapitalization, 리캡)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리캡이 완료되면 베어링PEA의 차입금을 제외한 한라시멘트 실 투자금은 3000억 원에서 1000억 원으로 낮아진다.

반면 한라시멘트가 상환해야 할 차입금 규모는 총 4800억 원으로 늘어난다. 1500억 원 이상의 순현금을 가졌던 기업이 1년여 만에 수천억 원의 순차입금 보유기업으로 변모하는 셈이다.

IB업계에선 베어링PEA가 인수후보들에게 한라시멘트 매각가로 기업가치(EV) 기준 7000억 원 이상을 요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분 100% 거래가격은 최소 2000억~3000억 원 수준이 될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시장 예상가로 올해 말 매각이 성사된다면 베어링PEA는 2년이 채 안되는 기간에 투자원금 대비 100~200% 수익을 거두게 되는 셈이다. 차입매수(LBO) 전략을 구사하지 않고 투자금을 모두 자체 자금으로 마련했다면 예상 수익률은 30~50% 수준에 그친다.

인수금융(Loan)을 활용해 투자 수익률을 높이는 '레버리지(leverage) 기법'은 대부분의 PEF가 활용하는 투자법이므로, 베어링PEA가 차입금을 한라시멘트에 전가한 것을 무턱대고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시장 관계자들은 차입금 이전으로 한라시멘트의 재무적 부담을 높인 직후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고 곧바로 매각에 나선 점은 도덕적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PE업계 관계자는 "자본시장에 PEF 제도가 도입, 허용된 이유 중 하나는 PEF가 투자기업의 기업가치를 높이는 역할을 수행해 시장의 발전과 성장에 기여하기 때문"이라며 "단순히 수익만 추구한다면 투자자본이 아니라 투기자본이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라시멘트 실적이 개선된 것은 지난해 시황이 좋아진 덕분이지, 베어링PEA가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기울여 얻은 결과로 보기 어렵다"며 "별다른 기여 없이 투자 1년 만에 대규모 차입금을 떠넘기고 수익을 챙겨 나가기로 결정해 '먹튀' 논란을 자초한 셈"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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