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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의 투자사업 넌센스 [thebell note]

양정우 기자공개 2018-03-13 15:50:33

이 기사는 2018년 03월 09일 08:2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 지난달 A 증권사에서 비상장사 자기자본투자(PI)를 주도한 팀장급 직원이 퇴사했다. 그는 투자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딜소싱을 전담해 왔다. 평소 증권사의 경직된 투자 심의 과정에 답답함을 느껴 왔다. 그간 좋은 대우를 받아왔지만 결국 투자사로 이직하기로 결정했다.

# 최근 B 증권사의 투자 실무진은 임원급 인사에게 강한 질책을 받았다. 투자한 기업의 결산 실적이 오히려 뒷걸음쳤기 때문이다.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내부수익률(IRR)이 20% 이상 예상된 기업이 적지 않다. 하지만 단 1건의 투자 실패로 공식적인 페널티까지 예고돼 있다.

# '초대형 투자은행(IB)'으로 거듭난 국내 증권사는 어김없이 모험자본 투자를 경영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초기 성장 기업의 주식(Equity)과 메자닌(Mezzanine), 프리IPO(상장 전 투자)에 공격적으로 뛰어들어 투자 야성을 드러내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야심찬 각오와 달리 투자 파트 일선에선 날마다 구조적 한계를 절감하고 있다.

IB 비즈니스는 종국엔 모두 사람에 의존하는 네트워크 싸움이다. 모험자본 투자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프로페셔널'을 언급하면서 증권사 조직 문화에 맞춰 투자하라는 건 어불성설에 가깝다. 이런 구조적 한계에 부딪힌 유능한 인재는 회사를 떠날 수 밖에 없다.

사실 증권사와 투자사는 속성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초기 기업을 향한 시각과 의사결정 속도, 리스크 테이킹 정도, 사후관리 및 평가 내규 등 모든 게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제 투자 사업을 키우려고 칼을 빼들었다면 먼저 이런 여건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투자 업무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제반 사항을 최적화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엔 증권사가 상장주관사 자리의 대가로 투자를 해주는 사례가 부쩍 눈에 띈다. 종합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긍정적인 시각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투자가 주관 업무의 들러리가 되는 상황이 초대형 IB의 본래 취지는 아니다. 단언컨대 적어도 투자 역량 측면에서 경쟁력을 키우기는 어려울 것이다.

초대형 IB로서 내실을 갖추려면 실무자가 마음껏 투자에 매달릴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 이 토대가 먼저 마련되지 않으면 어떤 슬로건을 내걸어도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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