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GI vs 한진家]분쟁의 정의…누구의, 어떤 싸움인가?⑤'오너일가' 아닌 '국민' 명분 타당한지 의견 분분…'임직원·투자자'로 전선 확대 가능성
고설봉 기자공개 2019-01-29 11:23:02
[편집자주]
별다른 대응 전략을 내놓지 않고 '정중동'하는 듯 보이는 한진그룹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연이어 터진 갑질 사태, 국민적 공분, 주요 권력기관의 잇따른 수사, 그리고 "너희들 문제가 많아 행동에 나서겠다"라고 말하는 듯 지분을 매집하고 달려든 한 펀드. 동시에 불붙은 '한국형 주주행동주의' 흐름과 국민연금의 주주관여 움직임. 한진그룹 수뇌부는 비상상황에 있다. 강성부 펀드라고해서 느긋하진 않다. 경제적 이슈를 넘어 정치적 관심사가 됐고 국민적 주목도가 높아졌다. 이 분쟁이 어디로 가고 있고 분쟁 당사자들의 전략은 무엇인지 더벨이 들여다봤다.
이 기사는 2019년 01월 24일 07:2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KCGI가 형성한 전선은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다. 단순하게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를 정조준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을 깊이 파고들어가 보면 대결 양상은 다양하게 세분화한다. 조 회장 일가, 한진그룹 경영진 및 임직원, 각 계열사 이사회 구성원, 기관 및 개인 투자자 등이다. 더불어 KCGI가 몰고올 후폭풍의 크기에 따라 비슷한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고, 오너리스크가 표면화된 기업집단 전부로 전선이 확대될 수 있다.
이 가운데 KCGI는 '국민'을 전면에 내세워 본격적으로 세몰이에 나섰다. 총 12페이지에 달하는 '한진그룹의 신뢰회복을 위한 프로그램 5개년 계획'을 21일 발표하며 KCGI는 ‘국민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는 한진'이라는 표어를 내걸었다. 행동주의 펀드를 표방하고 있는 KCGI는 왜 '국민'을 전면에 내세울까.
분쟁의 정의를 위해서는 KCGI라는 이름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Korea Corporate Governance Improvement)라는 이름에는 '기업의 낙후된 지배구조를 개선해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강성부 대표의 믿음이 깔려 있다. 목표를 관철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KCGI는 여론을 우군으로 확보하기 위해 '국민'을 전면에 내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일종의 대의명분 확보 포석으로 보인다.
◇대결구도1, 행동주의펀드 vs 조 회장 일가 혹은 '낙후된 기업문화'
이번 분쟁의 기본 대결 구도는 KCGI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의 싸움이다. 가장 단순하고, 전선이 확실하게 형성 돼 있는 지점이다. KCGI는 조 회장 일가가 독점하고 있는 한진그룹의 지배구조, 경영권, 이사회 등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주주권을 행사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그러면서 KCGI는 "한진그룹을 사랑하고 아끼시는 국민 여러분들의 동의를 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KCGI가 직접 투자를 한 곳은 한진칼과 ㈜한진이다. 이 두 법인은 모두 조 회장 및 자녀들이 직접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한진그룹 다른 계열사들과 차별화 되는 지점이 바로 조 회장 일가다. 한진그룹 계열사 중 상장사는 한진칼, 대한항공, 진에어, ㈜한진, 한국공항 등 5곳이다. 이 가운데 조 회장 일가가 지분을 직접 보유한 곳은 한진칼과 ㈜한진, 대한항공 등 3곳이다.
조 회장은 한진 지분 17.7%와 우선주 2.4%를 보유 하고 있다. 자녀들은 모두 합해 6.88%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2.29%,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2.32%,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2.27% 등이다. ㈜한진의 경우 조 회장의 보유 지분율은 6.87%이다. 이외 자녀 3명이 지분 각각 0.03%를 보유하고 있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 지분을 직접 보유하고 있지만 지분율은 보통주 0.01%, 우선주 2.4%로 미미하다. 이외 상장 계열사에 대한 오너일가의 보유 지분율은 0%이다.
KCGI가 집중적으로 한진칼과 ㈜한진을 타깃으로 한 것은 조 회장 일가와의 대결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풀이된다.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기 위해 오너 경영자의 지배력이 확고한 곳을 타깃으로 삼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조 회장 일가에 대한 여론이 악화한 상황에서 KCGI가 분쟁을 일으켰을 때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오너일가 지분 보유 회사'다. 조 회장 일가가 한진그룹 경영권을 독점할 수 있는 근간인 이들 법인을 표적으로 삼은 것으로 해석된다.
이 양상을 조금 더 확대해 보면 주주행동주의펀드와 '문제 있는 오너일가'의 싸움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KCGI의 전략은 조 회장 일가 및 한진그룹이 처한 상황과 잘 맞아떨어졌다. 이미 조 회장 일가에 대한 국민적 공분은 커졌다. 이 가운데 한진그룹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 직원들의 각종 의혹제기를 통해 한진그룹 내부의 폐쇄적인 조직문화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외부로 확산됐다. KCGI는 마치 이러한 오너일가의 '문제'에 맞서 한진그룹을 구할 일종의 '대안'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워 전면에 등장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을 표어로 일종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를 한 것으로 보인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누가 더 나쁜가'하는 의문을 던졌을 때 행동주의펀드가 우위에 설 수 있는 대상은 조양호 회장 일가"라며 "KCGI는 '문제가 있는 오너일가가 경영하는 그룹 집단에 직접 관여하는 쪽으로 주주행동주의를 실천한 바람직한 펀드'로 시장에 비춰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오너일가로부터 비롯된 문제를 걷어내고, 지배구조 및 경영 투명성을 확보해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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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결구도2, 행동주의펀드 vs 한진그룹 구성원
상황을 더 확대해 보면 KCGI와 한진그룹의 싸움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전선이 확대될 여지는 크지 않다. 한진그룹은 곧 조 회장 일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진그룹이라는 유·무형의 공동체는 KCGI에 대한 어떤한 입장도 내놓지 않는다. 한진그룹 내 각 계열사 노동조합, 조종사노동조합, 새노동조합 등 구성원을 대표하는 어느 조직도 아직까지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한진그룹측도 경계하는 대목이다. 한 관계자는 "오너 일가와의 싸움을 마치 한진그룹 전체와 싸움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한진그룹은 오너 일가와 다르고 한진그룹이 많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비춰져서도 안된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KCGI가 이사회에 진입하거나, 조 회장 일가를 대신해 새로운 경영진을 한진그룹 각 계열사로 들여보낼 경우 양상은 다르게 변할 수 있다. 펀드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자본투자를 통한 수익달성이다. KCGI도 '투자'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KCGI가 만약 한진칼을 위시해 대한항공, 진에어, ㈜한진 등 계열사 등의 경영권에 필요 이상으로 간섭하고 무리수를 두게 된다면 한진그룹 구성원들과의 마찰을 피할 수 없다.
지배구조 개선은 단순히 오너일가를 물러나게 하는 수준의 행동은 아니다. 경영문화 쇄신부터 필요하다면 인적 구조조정까지 다양한 형태의 변화가 한진그룹 내부에서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방관자로 사태를 관망하던 한진그룹 내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은 전면에 나서 목소리를 키울 수 있다. 이 경우 KCGI는 부득이하게 또 다른 쪽으로 전선을 확대할 수 밖에 없다.
◇대결구도3, 행동주의펀드 vs 제3의 투자자
KCGI를 수익을 노리는 펀드로 규정할 때, 이번 분쟁을 이해하는 다른 한 축은 급진 펀드와 기타 투자자들의 싸움으로도 볼 수 있다. KCGI가 한진칼 지분을 인수한 뒤 한진칼의 주주구성은 소폭 바뀌었다. KCGI는 '한진칼의 지배구조를 개선해 장기적으로 기업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투자를 시작했다. 하지만 현재 한진그룹의 지배구조에 별다른 이견이 없는 펀드도 있을 수 있다. 지배구조의 변화는 일종의 변수로 주가에 영향을 미출 수 있기 때문이다.
KCGI의 투자 이후 한진칼의 주가는 급등했다. 이 틈에 한진칼 4대 주주인 크레딧스위스 그룹 에이지(Credit Suisse Group AG)는 지분 1.11% 팔며 시세차익을 거뒀다. 한진칼 주가는 KCGI가 매입을 시작하기 전인 지난해 11월13일 종가 기준 2만2650원이었다. 크레딧스위스 그룹 에이지가 최종 매각을 완료한 지난해 11월19일 종가는 2만8900원으로 뛰었다. 14일부터 19일까지 크레딧스위스 그룹 에이지는 총 78만6642주를 팔았다. 이 기간 동안 평균 매각가는 약 2만7000원이다. 1주당 약 5000원의 시세차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한진칼 3대 주주인 국민연금은 KCGI의 한진칼 지분 투자로 손해를 봤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10월31일까지 한진칼 지분을 1.01% 매각했다. 당시 종가는 1만9300원이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3월30일까지 한진칼 지분을 꾸준히 늘렸다. 하지만 '갑질 사태'로 한진칼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하자 지난해 6월29일부터 계속해 주식을 매각했다. 지난해 3월30일 종가는 2만900원이었다. 그 이전 국민연금이 꾸준히 한진칼 지분을 매집하던 기간의 평균 주가는 2만1500원 선을 유지했다. 결과적으로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KCGI의 돌발 행동으로 투자 판단에 오류가 생긴 셈이다.
결과가 어떻든 기관투자자 입장에서 KCGI는 일종의 돌발변수로 작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펀드의 관점에서 장기적으로 주가의 등락폭이 큰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국민연금의 입장에서는 안정성이 최우선이다. 이런 관점에서 KCGI는 일종의 돌발변수로 볼 수 있다. 각 투자자들이 구상한 투자 기간, 목표 수익률 등을 달성하는 데 있어 KCGI의 독자적이고, 돌발적인 행동은 안정적인 장기 투자를 하는 데 방해 요소가 될 수 있다.
만약 KCGI가 한진칼 이사회를 장악하고, 이를 통해 대한항공과 진에어, 한진 등의 경영에 직접 관여했을 때의 결과는 예단할 수 없다. 실적이 꾸준히 잘 나오고, 재무구조가 안정화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KCGI의 지배구조 개선 실험은 다른 기관투자자 혹은 개인투자자에게는 돌발변수를 일으키는 일종의 도박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현대차그룹과 엘리엇의 경우에서 이러한 비슷한 양상을 엿볼 수 있다. 엘리엇은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의 틈을 파고들어 여러 요구를 펼쳤다. 그러나 엘리엇의 요구로 오히려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시장에서는 엘리엇의 요구가 장기적으로 현대차그룹의 발전에 부정적인 요소라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결국 기관투자자 및 개인투자자들도 엘리엇에 무조건 동의를 표하지 않았다. 엘리엇은 처음에는 현대차그룹 오너일가 및 경영진을 상대로 분쟁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후 수많은 투자자들과도 대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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