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이오벤처의 시작…'럭키' 인맥 [신약개발 맨파워 분석]①1세대 4인방 조중명·김용주·고종성·박순재 필두…항체·화합물·진단 등 다방면 진출
서은내 기자공개 2019-03-11 08:15:35
[편집자주]
제약바이오 산업에 가장 중요한 자원은 '사람'이다. 신약이나 신기술 개발에 10여년이 넘게 걸리는 산업 특성상 안목과 실력을 갖춘 연구 인력을 갖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 바이오 산업에 포진해 있는 키맨들을 통해 제약바이오산업의 현주소와 미래를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19년 03월 07일 14:0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국의 현재 바이오텍들 중 상당 비중이 LG의 리스트럭쳐링(Restructuring) 과정에서 생겨났어요. 과거 LG생명과학에서 신약 연구를 시작한 이들이 2000년대들어 벤처로 향했고 바이오업계에서 하나의 디아스포라를 형성했습니다."디아스포라(Diaspora)는 팔레스타인을 떠나 전세계로 흩어져서도 유대교의 생활습관을 유지하는 유대인들을 뜻하는 말이다. LG 출신 인사들이 바이오 업계를 떠나서도 끈끈한 네트워크를 이어가며 한국 바이오 산업의 근간이 되고 있다.
국내 바이오벤처 대표들 중에는 유독 LG 출신들이 많다. 한국 신약개발 1세대로 꼽히는 조중명 크리스탈지노믹스 대표, 김용주 레고켐바이오 대표, 고종성 제노스코 대표, 박순재 알테오젠 대표 등이 모두 LG 출신으로 2000년대 초반 LG생명과학 시절 임원을 거쳐 창업한 벤처인이다.
지금도 LG 출신 바이오인들은 매년 정기적으로 'Ex-LG'란 이름의 OB 모임을 갖는다. 작년 모임은 최근 오픈한 LG 마곡사이언스파크에서 가졌다. 해마다 그해 혹은 직전해 상장에 성공한 벤처가 모임을 후원하고 있다. 올해 4월 예정된 모임에선 파멥신이 후원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SNS에서도 모임을 형성해 교류하며 업계에서 큰 축을 이룬다.
◇신약개발 불씨 당긴 최남석 전 럭키화학연구소장
LG 출신 바이오벤처인들은 1세대 신약개발자들의 창업과 함께 크게 두 차례에 걸쳐 회사를 나와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벤처붐이 있던 2000년대 초반과 2005년 경 LG가 항암, 항체 관련 사업을 접으면서다. 직접 창업한 이들만 추산해봐도 대략 30여명에 달한다. 창업하진 않고 바이오텍으로 옮겨가 C레벨에 있는 이들까지 합하면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난다.
특정한 인맥이나 선후배 관계에 기반하지 않고 독립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게 LG 출신 바이오벤처 창업의 특징이다. 그런만큼 저분자화합물(Small molecule), 항체 및 단백질 치료제(Large molecule, 고분자), 진단시약 등 다양한 연구개발 분야에 포진해있다.
이정규 브릿지바이오 대표는 "LG에 소속돼 있을 당시 인맥으로 밀어주기 보다는 실력 위주의 분위기가 강했다"며 "개성이 강한 이들이 모여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회상했다. 또 다른 LG출신 바이오벤처 CEO는 "LG 초기 연구진들 가운데 특히 신약개발 자체에 열정이 뜨거운 이들이 많았다"며 "기업에 남거나 다른 곳으로 이직하기보다 자유롭게 연구를 이어가기 위해 창업 행렬이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LG출신들은 LG생명과학 연구의 기초를 만들고 생명과학사업을 개척한 인물로 전 럭키중앙연구소장 최남석 박사를 꼽는다. 또다른 벤처업계 관계자는 신약개발 1세대 주역을 비롯해 이후 창업 세대를 '최남석 사단'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최 박사는 2006년 한국을 빛낸 공학자 5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고종성 제노스코 대표는 "초창기 LG 출신들은 회사에서 1980년대부터 1990년대에 당시 한국에서 시도하지 못했던 신약개발을 제대로 배우고 신기술을 도입해 연구해본 경험이 있었다"며 "최남석 박사는 이들이 창업하고 신약개발에 뛰어드는데 불씨를 붙인 분이며 항상 '이노베이티브(혁신성)'와 '리버럴(자유로움)'을 강조하며 창의적인 연구문화로 다졌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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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미국 법인 럭키바이오텍도 인재 산실
LG출신 초기 바이오벤처인들은 신약개발 1세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연으로 엮여있다. 우선 럭키바이오텍 출신들이 여럿있다. LBC라 불리는 럭키바이오텍은 럭키화학시절 LG가 처음 바이오 연구를 시작하면서 1984년 샌프란시스코에 만든 미국 연구법인이다. LBC의 중심에 있던 이가 2000년 크리스탈지노믹스를 창업한 조중명 대표다.
조 대표를 위시한 LBC 출신 벤처 창업인으로는 박영우 와이바이오로직스 대표가 있으며 임국진 프로테옴텍 대표, 소홍섭 나디안바이오 대표도 모두 LBC 출신이다. LBC는 1994년 경 철수해 국내로 편입됐다. 조중명 대표는 LBC에 있을 당시 단백질 의약품 개발에 주력했지만 국내로 들어와서는 저분자의약품(small molecule)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국내에선 팩티브 등 항생제 계열을 연구한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창업자 김용주 대표가 초기 흐름을 형성했다. 팩티브는 2003년 국내 최초로 FDA 승인을 받은 국산 신약이다. 2006년까지 LG생명과학기술연구원 신약연구소장을 맡았던 김 대표는 이후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를 창업했다.
NRDO업체 브릿지바이오를 창업한 이정규 대표도 1990년대에 김용주 대표와 함께 연구원으로 참여했다. 이 대표는 LG생명과학에서 사업개발을 담당했으며 이후 조중명 대표가 크리스탈지노믹스를 창업할 때 함께 나와 공동 창업에 힘을 보탰다.
김용주 대표와 같은 세대로 고종성 대표가 또 다른 국내 연구의 축을 담당했다. 팩티브 같은 항생제 계열 외에 에이즈 치료제, 바이러스, 메타볼릭, 항암제 등 새 분야 연구를 지휘했다. 당뇨병 약 제미글로가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고 대표는 김 대표 다음순으로 2006년부터 2007년까지 LG생명과학 신약연구소장을 역임하고 2008년 미국으로 건너가 제노스코를 창업했다.
고 대표 아래에서 함께 연구에 참여했던 이들로는 최호일 펩트론 대표, 이승주 오름테라퓨틱 대표 등이 있다. 모두 독립해 벤처로 발걸음을 옮긴 이들이다. 고 대표와 함께 당뇨병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김순하 박사는 지난해 LG생명과학 출신들과 함께 이뮨테라퓨틱스를 만들었다.
조중명, 고종성, 김용주 대표와 함께 초기 LG생명과학에서 임원으로 있었던 박순재 알테오젠 대표는 바이오시밀러, 베터 쪽 연구에 매진하며 2000년대 말 알테오젠을 만들었다. 박 대표와 관계가 깊었던 2세대 창업자로는 남승헌 폴루스팜 대표가 있다. 남승헌 대표는 LG에서 나와 셀트리온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폴루스를 창업했다.
파멥신을 창업한 유진산 대표도 LG생명과학 출신이다. 유 대표는 특히 사업가로서의 기질이 강한 연구원 출신 창업자로 꼽힌다. 2000년대 후반 LG가 항체 연구를 중단하면서 생명공학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2008년 파멥신을 창업했다.
벤처를 창업하진 않았지만 전문경영인으로 벤처로 이직한 김규돈 제넥신 사장도 있다. 김규돈 사장은 삼성전자로 이직 후 종근당 대표이사를 거쳤으며 연세대 화학과 선배였던 성영철 제넥신 회장이 그를 제넥신으로 영입했다. 이병건 SCM생명과학 대표도 전문경영인으로 벤처로 이직한 인물이다.
그 후로도 LG출신 창업자들의 행렬은 꾸준히 이어졌다. 단백질 및 항체 치료제와 같은 고분자(Large molecule) 부문을 주로 연구개발하는 벤처 창업가로는 김건수 큐로셀 대표, 최덕영 인테라 대표 등이 있다.
저분자화합물(Small molecule) 분야를 주로 보는 벤처 창업자들이 고분자 부문보다 더 많은 편이다. 이정규 브릿지바이오 대표를 비롯해 김재은 퍼스트바이오 대표, 노동출 BLNH 대표, 노성구 파이메드바이오 대표, 민창희 비욘드바이오 대표 등이 속한다. 진단시약 쪽으로는 손미진 수젠텍 대표나 김인수 유디피아 대표, 김상웅 한소주식회사 대표가 있으며 CRO 등 서비스 업체를 창업한 이로는 윤문태 대표(C&R 리서치), 김수헌 대표(큐베스트바이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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