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GI vs 한진家]법원·ISS는 왜 한진칼 '손'을 들어줬나⑫'법적 요건 충족 여부·추천인사 능력 유무'가 판단 잣대…분쟁의 불씨는 여전
고설봉 기자공개 2019-03-25 13:27:25
[편집자주]
별다른 대응 전략을 내놓지 않고 '정중동'하는 듯 보이는 한진그룹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연이어 터진 갑질 사태, 국민적 공분, 주요 권력기관의 잇따른 수사, 그리고 "너희들 문제가 많아 행동에 나서겠다"라고 말하는 듯 지분을 매집하고 달려든 한 펀드. 동시에 불붙은 '한국형 주주행동주의' 흐름과 국민연금의 주주관여 움직임. 한진그룹 수뇌부는 비상상황에 있다. 강성부 펀드라고해서 느긋하진 않다. 경제적 이슈를 넘어 정치적 관심사가 됐고 국민적 주목도가 높아졌다. 이 분쟁이 어디로 가고 있고 분쟁 당사자들의 전략은 무엇인지 더벨이 들여다봤다.
이 기사는 2019년 03월 22일 17:4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법원이 KCGI의 '주주권 행사'에 제동을 걸면서 한진그룹과 KCGI 간 주주총회 표대결은 무산됐다. 한진그룹이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와 벌인 대결에서 사실상 판정승을 거뒀다. 양측간 대리전 양상이었던 사외이사 선임안에 대한 격돌을 피하면서 갈등 수위를 높여가던 대결구도가 깨졌다. 한진칼 주총의 긴장감이 완화되는 양상이다.하지만 여전히 불씨는 남았다. KCGI가 펀드 만기를 최장 14년으로 설정한 만큼 매년 주총을 앞두고 이러한 갈등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KCGI가 요구하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등에 대한 '적절성' 여부에 대한 논란도 말끔히 해소되지 않았다.
◇주주제안 없던일로…ISS "KCGI 요구는 근거부족"
서울고등법원은 한진칼이 서울중앙지법의 '안건상정가처분인가결정'에 불복해 항고한 건과 관련해 지난 21일 인용 결정을 내렸다. 법원은 소수주주인 KCGI가 한진칼에 주주제안을 하기 위해서는 상장사 특례 요건에 따라 6개월 이전부터 0.5% 이상의 주식을 보유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오는 29일로 예정된 한진칼 주총에서 KCGI가 제안한 주주제안 7건은 주총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는다.
KCGI는 "금번 서울고등법원 판결로 인해 KCGI는 12.8%의 지분을 보유한 2대 주주임에도 불구하고 사외이사 한 명조차 추천할 수 없게 됐다"며 "이번 주주총회에서 대주주의 전횡을 막기 위해 동료 연기금, 기관 및 소액주주님들께서 노력해 주실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총에서 표심을 변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한계를 이미 노출했다.
KCGI의 요구 자체가 주총 안건에 오르지 못하면서 이번 주총의 갈등 요소는 크게 줄었다. KCGI가 주총 당일 한진칼 이사회 및 경영진 등에 대한 성토를 이어갈 수는 있지만, 기존 예상처럼 각 안건을 놓고 표대결을 벌이는 상황은 연출되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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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이번 주총은 한진칼 이사회가 올린 안건에 대한 동의 여부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한진칼 이사회가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들에 대한 주주들의 판단 여부다. 대다수 주주들의 찬성을 이끌어 낼 경우 향후 한진칼은 KCGI와의 분쟁에서 우위에 설 가능성이 높다. 반면 한진칼이 제안한 안건에 대해 주주들의 찬성률이 저조하다면 향후 한진칼의 동력은 그만큼 상실된다.
다만 주주들의 적극 동의에 대한 가능성은 크게 열려있다. 앞서 세계 최고 의결권 자문사인 ISS는 한진칼 주총을 앞두고, 한진칼 이사회의 손을 들어줬다. ISS는 "한진칼 이사회가 올린 안건에 찬성하고, 그레이스홀딩스(KCGI)가 올린 안건에는 모두 반대하라"고 권고했다. 사실상 표대결이 벌어졌어도, 주주들의 표심은 한진칼로 쏠릴 가능성이 컸던 셈이다.
ISS는 "한진칼 이사회에서 추천한 사외이사는 모두 추천해도 된다"며 "이 후보들은 특별히 알려진 이슈가 없고, 회사 이사회 구성원과 역학관계 등을 고려해 볼 때 문제가 없다"고 권고했다. 반면 ISS는 "KCGI(그레이스홀딩스)가 추천한 모든 안건은 반대하라"며 "반대주주인 그레이스홀딩스(KCGI)는 조재호와 김영민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 후보들은 충분한 검증이 안 됐고, 주주들을 설득할 만큼 KCGI가 추천의 근거를 찾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ISS는 "ISS가 생각하기에 KCGI가 추천한 김영민 변호사는 한진칼 이사회가 추천한 주순식 후보와 법적인 분야에 있어 유사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며 "오히려 한진칼이 추천한 주순식 후보가 한진칼의 지배구조 개선에 있어 전반적으로 더 적절히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ISS는 "조재호 교수는 현재 서울대 교수인데, 그의 경험이 어떻게 한진칼의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 관리·감독의 체계를 개선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의심이 든다"고 밝혔다.
ISS는 "결론적으로 KCGI는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며 이사회 독립성과 회사 경영 전반을 개선할 거라고 주장하지만, ISS는 KCGI가 제안한 후보자들이 어떻게, 그 주장하는 효과들을 거둘 것인지에 대해서 증거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분쟁의 씨앗…ISS, 조양호 회장에 대해선 '물음표'
분쟁의 씨앗은 아직 남았다. KCGI가 펀드 설정기간을 최장 14년으로 한 만큼 이번 주총 이후에 오히려 더 강하게 한진칼을 압박할 카드를 기획하거나, 만들 수 있다. 또 이번 주총에서 준비가 부족했지만 '복기'를 통해 KCGI가 내년 주총을 겨냥할 가능성도 커졌다. 자료를 모으고, 전략을 세울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다.
이 과정에서 ISS의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사장) 및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 대한 평가는 그 의미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ISS가 무조건 한진칼 편을 들어준 것은 아니다. ISS는 석 사장에 대해서는 재선임을 반대했다. 경우에 따라 이번 ISS의 의결권 권고는 향후 KCGI가 새로운 전략을 짜는데 기초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ISS는 "석태수 사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게 좋겠다"며 "왜냐하면 회사의 지배구조 개선이나 신의성실 의무에서 (그가)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사람을 견제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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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가 밝힌 '그'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다. ISS는 "2018년 10월 조양호 회장은 불구속 기소됐다"며 "(조 회장이)횡령, 배임, 탈루 등 다양한 혐의로 기소됐다. 아직 최종 판결이 나오지 않았지만, 그런 문제들의 심각성과 2013년부터 있었던 행동들에 대해 기소가 됐다는 점을 볼 때, 조 회장이 경영에 있어 문제를 만들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심각한 잘못을 저지른 사내이사를 제거하는데 실패한 이사회는 관리에 있어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ISS가 말한 석 사장에 대한 '신의성실 의무 실패'는 조 회장에 대한 견제의 부실에 대한 책임 차원으로 풀이된다. 또 회사 지배구조 이슈 등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못했다고 ISS는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KCGI가 석 사장이나, 조 회장에 대한 문제를 물고 늘어질 경우 한진칼 입장에서도 무조건 무시할 수 많은 없는 상황이 연출됐다.
다만 재계 및 시장에서는 최근 한진그룹이 내세우고 있는 중장기 발전 전략 등에 비춰볼 때, 이런 리스크는 차츰 해결될 것으로 보고 있다. 더불어 최근 조 회장이 2선 후퇴하고,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등이 경영 전면에 나서며 자연스럽게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오너일가 리스크'도 해소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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